[마부작침] '부부 살인' 리포트 ② 남편은 15.8년·아내는 7.6년…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9.10.07 09:02 수정 2019.10.10 09: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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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마부작침] 부부 살인 리포트 ② 남편은 15.8년·아내는 7.6년…왜?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절대적인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로 그 결과가 매우 중하고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는 중대한 범죄로 피고인에게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부가 되어 수십 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유 없는 살인은 없었다. 길게는 35년 징역형부터 짧게는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까지 다양한 선고가 내려졌다. 생명을 앗아갔다는 중대 결과는 다르지 않지만, 판결문의 '그러나' 다음은 각 사건마다 차이가 있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그러나' 이후에 주목했다. 결혼과 혼인신고를 거쳐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서로를 살해하는 비극, '부부 살인' 사건을 판결문을 통해 살펴봤다. 극단적인 결과가 빚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판결문에 나타난 차갑고 건조한 언어를 통해 이면을 들여다보고 비극을 피하고 또 줄이기 위한 방법은 있을지 고민했다.

① 71% 배후에 가정폭력 있었다
② 남편은 15.8년·아내는 7.6년…왜?
③ 58년 함께 살다 '황혼 살인'
④ 37년 시달리다 범행…정당방위 아닌 이유는


● '부부 살인'에 징역 35년과 2년, 그들의 차이

사례 1. "피고인은 한 차례 피해자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후에도 이를 단념하기는커녕... 치밀한 사전 계획 하에 동일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후 병사한 것으로 위장..."

사례 2. "피고인은 약 20년 간 피해자로부터 갖은 인격 모독, 학대 등 가정폭력을 당하였고... 범행 당시에도 피해자가 술 취해 장시간 칼로 위협하거나 모욕적인 언행을 반복하는 등..."

<마부작침>이 분석한 '부부 살인'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가장 중형이 선고된 건 2017년 충남 당진에서 발생한 의사 남편 사건이다.(사례 1) 이 남편은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근육이완제를 주사해 심정지를 일으키게 해 병사로 위장하려 했다. 자신의 의학 지식을 활용한 범죄였는데 넉 달 전에도 같은 수법으로 살인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다시 범행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 사건 피고인에게는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4가지 죄가 적용됐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검찰은 사형을 주장했으나 같은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죄가 매우 무겁다" "인면수심의 행태" "비난 가능성 역시 대단히 높다"면서 "불리한 정상이 너무나 분명하여 상응하는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라고 밝혔다.

역시 '부부 살인' 사건에서 살인죄, 실형 선고였으나 가장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건 2015년 경기 여주에서 발생한 절구공이 아내 사건이다.(사례 2) 술 취해 흉기를 들고 난동 부리던 남편이 넘어지자 아내가 절구공이로 내려치고 넥타이로 목을 졸라 살해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피고인은 징역 2년에 처해졌다. 재판부는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해자의 가정폭력으로 큰 고통을 받아왔고" "피해를 당하던 피고인이 더 큰 피해를 우려하다 우발적으로 범행"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고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9명 중 5명은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남편 살해 7.6년, 아내 살해 15.8년
[마부작침] 부부살인살인 사건 81건에서 남편 살해와 아내 살해는 선고 형량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절구공이 아내 사건 같은 '남편 살해' 피고인은 28명, 의사 남편 사건 등 '아내 살해' 피고인은 53명이다. 양측이 선고받은 징역형은 남편 살해가 평균 7.6년, 아내 살해는 평균 15.8년으로 아내 살해가 두 배 정도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남편 살해에서는 집행유예 선고도 2건 있었으나 아내 살해는 전부 실형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 '아내 살해'는 가중 사유 多, '남편 살해'는 감경 사유 多
[마부작침] 부부살인판결문에는 판사가 형량을 정한 양형 이유가 나와 있다. 법정형 한도에서 양형 기준에 따라 감경이나 가중 요소를 정하고 그렇게 결정한 권고형의 범위에서 다시 판사의 재량에 따라 가중과 감경을 따져 최종 선고 형량을 결정한다.

먼저 가중 사유에서 '죄질이 무겁다'를 보면 남편을 살해한 아내 중에선 92.9%, 아내를 살해한 남편 가운데는 94.3%가 해당했다. 생명 박탈이라는 범행의 결과는 대부분 사건에서 가중 사유로 포함됐다. 피해자 측에서 처벌을 요구하는 것도 가중 사유다. 남편 살해는 절반만 해당했는데 아내 살해는 77.4%였다. 살해당한 아내의 유족이 피고인인 남편을 용서하지 않았던 비율이 저만큼 더 높았다는 뜻이다. 가정폭력 같은 범행 전력이 가중 사유로 거론된 것 또한 아내 살해 쪽이 30.2%로 남편 살해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감경 사유에서는 피해자 측 선처 호소에서나(남편 살해 39.3%·아내 살해 26.4%) 범행 전력 없음(남편 살해 82.1%·아내 살해 56.6%)에서 남편 살해 측이 더 높았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 건 가정폭력 관련한 감경 사유였다. 남편 살해한 아내의 71.4%는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이유가 형에 반영됐고 아내 살해한 남편은 단 5.7%만이 가정폭력을 저지른 적이 없다는 점이 참작됐다.(감경 사유의 가정폭력 부분은 남편과 아내에게 기준을 다르게 적용한 부분이다. 남편 살해에서는 가정폭력 피해가 감경 사유에 포함됐는지를, 아내 살해의 경우엔 가정폭력 전력이 없다는 점이 감경 사유에 포함됐는지를 따졌다. 가정폭력을 언급한 사건 71건에서 남편이 아내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언급된 사건은 2건이었는데 가중이나 감경 사유에 거론되진 않았다.)

범행수법이 잔혹하거나 미리 범행을 계획했거나, 범행 후 시신을 훼손하거나 유기한 경우가 아내를 살해한 남편이 훨씬 많았다는 점도 형량 차이를 부른 요인이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끝에 범행을 저지른 사례1의 남편과, 오랜 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흉기 난동을 부리던 남편을 살해한 사례2의 아내에 대한 선고 형량은 33년이나 차이가 났다.

● '법원의 젠더 편견',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13년 발표한 논문 <살인과 젠더>에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판결문에서 '순간 격분', '우발적', '술에 취하여', '화가 나'라는 문구가 빈번히 등장하며 이 문구는 남성에 대한 매우 중요한 감경 사유가 됐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판결문에는 '격분하여' 혹은 '화가 나'라는 문구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남편이 저지른 폭력이나 외도 등은 여성들의 분노나 폭력 유발의 원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허 조사관은 이를 '법원의 젠더 편견'이라고 규정했다.

<마부작침> 분석에서 감경 사유에 '우발적 범행'(순간 격분, 우발적, 화가 나 등 포함)이 거론된 건 남편 살해 46.4%, 아내 살해 54.7%였다. 논문 <살인과 젠더>에서 분석한 '부부 살인' 판결문이 1990년 이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이고 <마부작침> 분석 판결문은 2014년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법원의 젠더 편견'이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가정폭력이 원인이 된 '부부 살인'이 전체의 70%가 넘는다는 점, 그리고 남편에게 살해당한 아내가 훨씬 많다는 점은 가정폭력이 흘러간 이슈가 아니라 지금 개선해야 할 시급한 문제라는 걸 보여준다.

<살인과 젠더> 논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망치와 칼을 들고 방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남편을 피해 벽을 넘어 베란다로 도망쳤던 여성은 결국 추락사하여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 가해자는 폭행치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벌금 100만 원 형에 처해졌을 뿐이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벽을 넘으라'라고 더 이상 주문하지 말기 바란다. 목숨을 걸어야 하고, 실제 사망에 이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재판부가 합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그리고 중립적이지도 않은 성차별의 벽을 넘고, 성 편견의 문을 열고 나가기 바란다. 그곳엔 중립성의 훼손이라는 사법부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놓여 있는 대신, 인권의 확립, 정의의 실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 벽을 넘어서길 바란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 (hyeminan@sbs.co.kr)
김민아 디자이너
이유림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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