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 중단은 누가?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는 일본 최대 규모의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전체 행사 가운데 기획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체의 실행위원장은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입니다. 8월 1일 개막된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체 행사 가운데 '표현의 부자유전'의 전시 내용에 대해 일본 내에서 우익들의 협박과 전시 중단 요구, 심지어 관객과 전시장에 대한 테러 미수, 예고가 잇따랐습니다. 스가 관방장관은 8월 2일 정례기자회견에서 "(행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 교부 관련 사실관계를 조사하겠다"고 말해 실행위원회 측에 긴장감이 감돌았고,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망언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체 행사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실행위원장 오무라 지사는 8월 3일에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 중단을 결정합니다. 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인 쓰다 다이스케와 협의를 한 결과라는 걸 강조했습니다.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가 불과 사흘 만에 중단되자 전시회 실행위원회(트리엔날레 전체 실행위가 아닙니다) 측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을 만든 작가들도 물론 마찬가지였습니다.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라는 전시회 자체가 그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일본의 여러 공립미술관, 갤러리에서 '거부'당한 작품들을 모아 전시한 '표현의 부자유전(2015)'의 '속편' 격인데, 역시 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이번 '속편' 역시 전시를 중간에 거부당했기 때문입니다. 전시회 실행위원회 측은 즉각 트위터 등 SNS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시의 '재개'를 요청하는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진영은 양측으로 나뉘었습니다. 전시회를 중단한 오무라 실행위원장과 쓰다 예술감독이 한쪽에, 전시 재개를 요청하는 실행위원회와 작가들이 다른 한쪽에 섰습니다. 아이치현 지사인 오무라 실행위원장은 정례 기자회견으로, 실행위원회는 나고야와 도쿄, 그리고 서울을 오가는 기자회견으로 맞섰습니다.
지리한 공방이 이어지던 중, 실행위원회 측이 '법적 수단'을 동원합니다. 지난 9월 13일, 전시 재개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나고야 지방법원에 제출한 것입니다. 전시 중단이 일본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한다는, 명료한 발상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실행위원회는 그 이후에도 SNS 등을 통해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를 비판하고 전시 재개의 논리를 강화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왔습니다. 단순히 전시 내용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 자체를 우려하는 각국 예술인들의 서명 운동도 이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트리엔날레 전체의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지사는 이 사이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존재 방식을 검증하는 위원회'를 가동했습니다. 검증위원들의 '소녀상' 등에 대한 사전지식 미비 등이 문제로 지적됐지만, 검증위는 (이를 무시하고) 지난 9월 25일 중간보고를 발표했습니다. 검증위원회는 전시를 중단한 것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이 아니라고 판단해 오무라 지사 측, 그러니까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측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전시 자체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다만 그동안 전시회 실행위원 측으로부터 제기된 비난을 의식한 듯 '전시 방식'을 바꾼다면 재개도 가능하다는 권고를 동시에 냈습니다. 자질이 의심되는 검증위의, 그나마도 애매한 결론이었지만 오무라 지사는 "조건을 갖춘 뒤에 재개를 목표로 하고 싶다"며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전시회 실행위원회 측은 물론 검증위의 중간 검증 결과에 대해 "검열이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개입"이라는 굳은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3. 상황 변화의 계기는?
가처분 신청에 따른 심의가 오늘(9월 30일) 오전 11시 15분에 나고야 지방법원에서 예정돼 있었습니다. 심의가 시작되기 약 3시간 전인 오전 8시에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측으로부터 전시회 실행위원회 측으로 문서가 메일로 전송됐습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 전시회 실행위원회에 재개 준비를 위한 협의를 요청한다
* 재개 시점은 가처분 신청에는 10월 1일로 요청되어 있지만 아래의 조건에 비추어 6일부터 8일로 상정한다
- 재개에 임해 범죄와 혼란을 유발하지 않도록 쌍방이 협력하고, 회장뿐 아니라 현청 경비에 대한 경찰의 협력을 얻어 만전의 태세를 기한다
- 안전유지를 위해 (전시회장) 입장은 사전예약을 통한 정리권(번호표) 방식으로 한다
- 중지됐던 전시가 재개되는 것이므로 당초의 큐레이션과 일관성을 유지하되, 필요한 경우 교육 프로그램 등을 별도 운영한다
- 관람객으로부터 재개 후의 전시내용과 중간보고 등의 질문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현청은 관객들에 대해 중간보고의 의미와 내용을 전달한다
심의 직전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측이 전시 재개를 전제로 전시회 실행위원회에 이런 제안을 해 온 겁니다. 이에 대해 전시회 실행위원회는 다음 사항을 확인한 뒤, 재개를 위한 협의에 합의했습니다.
* 재개 시점은 6일부터 8일을 전제로 양측이 성실하게 협의한다
* '큐레이션의 일관성'에 대해서는, 전시공간에서 전시의 위치, 방법 개선 가능성을 포함한다는 취지로 해석한다
* 검증위원회의 '중간보고'에 대해서는, 현청이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양해한다
경위를 정리해 드린 대로, 아이치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와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실행위원회가 앞으로 구체적인 협의를 하게 됩니다. 물론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진다면 10월 6일부터 8일 사이에 전시가 재개되고, 재개된 전시가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끝나는 14일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가 아이치 트리엔날레 행사 전체의 성공을 좌우하는 '주목받는 전시'가 된 마당에 전시가 중단된 채로 트리엔날레가 끝나 버리는 상황에 대한 오무라 지사의 부담이 반영된 부분이 큽니다. 전시회 실행위원회 입장에서도 투쟁의 대전제인 '표현의 자유'를 지켜냈다는 성과를 냈으니 전시 재개는 일단 '승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오늘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 변화'가 일단 '전시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같은 지점에서 우려도 피어납니다. 협박을 통해 전시를 중단시킨 우익 세력이 어떻게 나올지가 일차적 관건입니다. 또 양측이 서로의 '필요'를 인정한 상황에서의 전시 재개가 과연 참여 작가들이나,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전적으로 두 실행위원회의 협의에 달려 있습니다. 단적으로, 전시회 실행위원회는 그동안 관객들이 전시 내용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SNS 등으로 공유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이에 대해 검증위원회는 전시회와 관람객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죠.)
전시회 실행위원 가운데 한 명인 이와사키 사다아키 씨는 오늘(30일) 오후 SBS와의 통화에서 "SNS 게재의 제한 여부 등도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측과 앞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시회 실행위원회는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의 내용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여전히 공유하고 있지만, 만약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측이 이 조건에 대해 검증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난색'을 표명한다면 전시 재개를 향한 양측의 협의가 제대로 흘러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핵심적 가치에 대해서는 아직 양측이 서로에 대한 설득도, 양보도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이 앞으로 협상의 과제로 남게 된 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