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끝내야 끝나니까"…트라우마는 '살처분'되지 않았다

SBS 뉴스

작성 2019.09.28 10:21 수정 2019.09.28 10: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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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살처분 현장에 동원된 수의사나 공무원 등은 어쩔 수 없이 동물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예전에 살처분 현장에 동원됐던 한 수의사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장의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제가 살처분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악몽을 꾼다 해야 되나? (살처분 과정에서) 돼지들이 되게 시끄럽게 있다가 흙이 덮였을 때 조용해지는 진짜 고요한 그 순간이 됐을 때 이거는 내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는 않겠구나 이 기억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겠구나…]

윤리적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처음에는 되게 좀 싫었어요, 한 마리만 죽여도 되게 스트레스받았는데 1분 1초라도 빨리 끝나야 상황이 정리가 되고 질병이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빨리 죽여서 저는 그 기억이 더 트라우마인 거 같아요, 내가 진짜 악마가 돼가는 그런…]

살처분 현장에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건 수의사만이 아닙니다.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이나 노동자들은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동물이 죽는 것도 보고 살아나는 것도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데 일반 공무원들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굉장히 크겠죠, 제가 아는 분도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신데 (살처분에) 동원됐다가 사표 쓰신 분도 있으세요.]

2011년 구제역 발생 당시 가축 살처분에 투입된 축협 직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살처분 참여자 4명 중 3명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었고 4명 중 1명은 중증 우울증 증상을 보였습니다.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사회적으로 살처분 참여자에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고 정부도 나서 대책을 세웠습니다.

트라우마 예방 교육과 심리 치료 지원 등 살처분 참여자의 정신적 회복을 돕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예방과 치료가 살처분 현장에서의 충격을 완전히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동물이 죽어가는 걸 보이지 않아야 된다 이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근데 사실상 불가능하죠. 대신에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거든요.]

사회적 재난에 맞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고민은 계속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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