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우리 측 관계자들은 북한 측이 '선수단과 중계방송단, 취재기자단의 입국은 허용하지만 응원단의 방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을 확인하고 그럼에도 '제3국'이 아닌 평양에서 예선을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응원단 파견 여부를 북한에 다시 타진할 계획이지만 북한이 당초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붉은 악마'의 사상 첫 평양행은 이뤄지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럼 북한이 우리 응원단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내 체육계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크게 3가지로 분석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붉은 악마' 응원단이 펼치는 '태극기 퍼포먼스'와 '대한민국' 함성을 용인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당일 김일성 경기장에는 최소 5만 명 이상의 북한 사람들이 입장할 예정인데 이들에게 이런 응원이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란 우려입니다.
신원 확인을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것도 이유로 꼽힙니다. 북한을 방문하려면 입북 비자가 발급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신원 확인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수백 명의 응원단의 신원을 일일이 꼼꼼히 조사한 뒤 비자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번 경기의 생방송을 담담할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의 파견 인원도 크게 제한했습니다. 우리 측은 20명의 중계방송단을 평양에 보낼 계획이었지만 북한은 과거 전례를 들면서 고작 10명만 허용했고 취재기자단도 총 18명으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북한이 이렇게 나올 것이란 것은 이미 일찌감치 예상됐습니다. 그런데도 대한축구협회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 어느 누구도 '제3국' 개최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응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중계방송단을 제한할 경우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제3국에서 경기를 치르겠다고 장소 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측은 결국 그렇게 하지 않고 '평양행'을 결정했습니다. 만약 우리 측이 '제3국' 개최를 요청해 관철했을 경우 가뜩이나 꽉 막혀 있는 남북 스포츠 교류가 완전히 파탄 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대한민국과 약속한 합의를 거의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가을 북한 농구팀이 한국을 답방했어야 했는데 뚜렷한 이유 없이 오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 15일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4개 종목) 구성에 합의해놓고도 지금까지 합동 훈련을 비롯한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여자 하키의 경우 다음 달 최종예선에 출전하기 때문에 북한이 나중에 태도를 바꾸더라도 단일팀이 사실상 무산된 위기에 놓였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미국 뉴욕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만나 2020년 도쿄올림픽 남북 공동 진출과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유치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북한과의 스포츠 교류를 포기하지 않고 인내를 갖고 끝까지 추진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측이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평양행'을 결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됩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