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기후변화는 먼 미래 문제? 지금이 '엑시트' 할 때

김지석│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

SBS 뉴스

작성 2019.09.24 13: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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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믿어줘."

영화 <엑시트> 초반에 남자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유독가스가 위로 점점 올라오는 것을 보고 가족에게 옥상으로 대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하지 못한 채 백수 생활을 하는 용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유독가스를 맡고 용남의 누나가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용남의 말을 선뜻 믿지 못한다. 용남이 답답해하고 있을 때 정부가 보낸 재난 문자가 전달되고 사람들은 문자를 보고 나서야 옥상으로 대피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감정이 북받쳐 울컥 눈물이 났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지구온난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핵 전쟁 수준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을 계기로 20년간 지구온난화를 공부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해온 내 모습이 용남의 모습에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용남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을 살리고 싶다. 가깝게는 이제 막 중학생, 초등학생이 된 내 아이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무지막지한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결국 지구가 너무 뜨거워져 식량이 부족해지는 시나리오에서 '엑시트(exit 탈출)'하게 하고 싶다. 물론 다른 사람, 동물, 식물도 살 수 있게 하고 싶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9월 초 열대 우림에서 발생한 큰불이 계속 확산하면서 의회가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할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앞서 영국 의회는 지난 5월, 캐나다 의회는 6월에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선 기후비상사태가 속속 선포되고 있다. 유엔사무총장도 지구온난화를 막지 못한다면 '완전한 재앙'이 찾아올 것이라며 경고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과거 기후변화는 오랫동안 천천히 진행되다 보니 결국 대응에 실패할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훨씬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대로라면 '나에게 미래가 없다'며 10대 학생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라고 시위에 나서면서 기후변화 대응이 뜨거운 정치 현안으로 부상했다.

산업계에서도 좀 더 직접적인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5년 기후변화가 금융 안정성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던 영국중앙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는 올 7월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기업은 반드시 파산한다고 강조했다.

카니 총재의 발언이 상당히 자극적인 것 같지만 논리는 단순하다. 이대로 가면 식량생산이 가능하게 하는 지구 기후 시스템이 무너진다. 그러면 경제, 자산, 예금, 채권 이런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카니 총재는 현재의 식량 생산과 경제 체계가 무너지는데 일조하는 회사들은 파산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물론 현실은 더 복잡하다. 현재의 식량생산과 경제 시스템은 지구온난화를 촉진하는 석탄(발전, 철강 생산 등 원료) , 석유(자동차, 비행기, 난방 등 에너지원), 천연가스(난방, 발전 등 원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건 전기, 이동수단, 난방수단일 뿐인데, 이를 위해서 반드시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태울 필요는 없다.

전기는 태양광, 풍력으로도 만들 수 있다. 차에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장착하면 아주 조용하고 힘도 좋고 유지비도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이미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한 지 5년, 전기차를 운행한 지 3년째다. "너 혼자 그런다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먼저 하지 않고 남들에게 하자고 권하는 건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기후변화 문제를 먼 미래의 문제, 남의 문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걱정거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정부, 기업, 시민들도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시기가 성큼 다가왔다. '별일 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난주 9월 20일엔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결석·결근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움직임은 환경 문제에 대한 감정적 대응을 촉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냉정하게 상황을 직시해서 함께 끔찍한 위기에서 벗어나 보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라는 끔찍한 재앙 시나리오에서 다 함께 '엑시트'하기 위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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