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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의사실공표와 내로남불, 그리고 오염된 정당성

[취재파일] 피의사실공표와 내로남불, 그리고 오염된 정당성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하여 긴급출국금지 조치를 취하여 출국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2019년 3월 23일 새벽 0시 3분, 법무부 대변인실이 법무부에 등록된 모든 매체의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한겨레신문이 3월 22일 밤 11시 19분에 "[단독] 김학의 한밤중 타이로 출국하려다가 '긴급출국금지'"라는 단독 보도를 내놓은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법무부가 피의자의 출국금지 사실을 공식적으로 언론에 확인해준 것이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을 10년 가까이 취재해 온 저로서도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출국금지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는 것 자체가 거의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특정 매체 보도가 나온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공식 확인해주는 조치 역시 극히 이례적이었습니다.
지난 3월 22일, 출국금지 당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 공식 발표한 '김학의 출국금지'…공식 논평한 민주당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피의사실 관련 정보를 법무부가 가장 공식적인 방식으로 공표한 23일 당일,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법무부의 '피의사실공표'를 그대로 인용해서 아래와 같은 서면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이 어제 22일(금) 밤 공항을 빠져나가려다 법무부의 긴급출국금지 조치에 따라 되돌아갔다. 김 전 차관이 자신의 성범죄 의혹과 비호 세력 실체에 대한 국민 분노가 치솟자, 해외 도주를 시도하려 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혹이 든다. (중략) 대검 진상조사단은 조속히 증거를 보강하고 김 전 차관을 재소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와 관련하여 배후나 공모 세력은 없는지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다. 법무부에 조기 수사의뢰도 검토한다니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2019년 8월 28일 아침, 동아일보는 조국 법무부 장관(당시 후보자)과 관련 수사 소식을 전하면서 "[단독] 檢, 조국 부인-모친-동생-처남 출국금지"라는 단독 보도를 했습니다. 이 보도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중요 수사 대상에 대해서 압수수색 이전에 출국금지를 하는 것은 수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조치이다. 동아일보가 어떻게 취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찰에서 확인해 준 적이 없고, 확인 취재 없이도 충분히 쓸 수 있는 기사다. 게다가 이번 보도에서 출국금지 대상자로 지목된 인물 중에는 실제로는 출국금지가 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팩트가 틀린 보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의 긴급출국금지 사실을 보도했던 한겨레 기사가 정확하다고 1시간도 되지 않아 공식 확인해줬던 경우와는 달리, 이 기사는 사실상 오보에 가깝다고 기자들에게 즉각 설명한 것입니다.

● '조국 가족 출국금지'는 맹비난…피의사실공표의 기준은?

하지만 이 보도가 나온 8월 28일, 민주당은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졌을 때와는 달리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8월 28일 오전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검찰의 구태 악습, 불법적 행태가 또다시 드러나고 있다"면서 "TV조선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 언론들이 이번 압수수색으로 확보된 문건 내용, 후보자 가족 등에 대한 출국금지 여부, 웅동학원 관련 수사상황 등의 내용들을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라고 출국금지 보도 등을 비판했습니다. "이것이 가짜뉴스가 아니라면, 결국 검찰로부터 새어나간 정보에 의한 보도일 수밖에 없다. 피의사실공표 법 위반 이것은 과거 검찰의 대표적인 적폐 행위였다. (중략)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이다. 검찰은 책임자 확인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후에도 반복된다면 수사 관련 책임자인 중앙지검장이나 특수2부장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8월 28일 오후 전국 원외지역위원장 하계 워크숍에서 "누가 출국금지 되었다는 둥, 부산에 있는 어떤 분이 대통령 주치의를 하는 데 기여를 했다는 둥 벌써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여러 개가 있다"며 "어제부터 나오는 뉴스들은 피의사실 유출이라 볼 수 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금지 사실을 법무부가 공식 발표했을 때 피의사실공표를 비난하기는커녕 이를 인용하며 보다 철저한 조치를 주문했던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검찰이 별건 수사 또는 수사 정보를 유출해 해당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관련 의혹을 확산해 인사청문회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같은 사례를 보다 보면 도대체 피의사실공표의 기준이 무엇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서는 법무부가 야심한 밤에 가장 공식적인 방식으로 출국금지 사실을 발표해도 이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인용하고 논평까지 내며 보도를 확산시켰던 민주당이, 조국 장관의 가족에 대해선 검찰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도 이후 정확하지 않은 기사라고 해명까지 한 내용에 대해서도 "대표적인 적폐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비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검찰이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일부 내용을 부인한) 조국 장관 가족 출국금지 보도가 피의사실을 공표한 행위라면,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메시지까지 돌린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금지 사실 보도는 훨씬 더 심각하고 명백한 피의사실공표 행위가 아닐까요?

● 박근혜-우병우-양승태와 조국…이어지는 '내로남불'

김학의 전 차관의 경우에만 이중적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우병우 전 민정수석,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보수 정권과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 정보가 외부에 알려질 때마다 민주당은 거의 어김없이 이를 인용해 수사 대상자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더욱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반면 조국 장관 수사에서 이와 비슷한 보도가 나오면 '피의사실공표'를 지적하며 검찰과 언론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것 역시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12일 검찰이 사법농단 관련 수사를 하고 있을 때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부의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취소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검찰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받은 판사의 진술 내용을 한 매체가 보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이 같은 보도를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라고 비난하기는커녕, 보도를 즉각 인용해 "양승태 전 대법관이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자신의 뜻대로 관철해 취소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관 개개인의 양심은 물론 헌법마저 좌지우지하려 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를 이용해 정치적 욕심을 챙기려 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밀약과 악행이 드러날수록,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는 공식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조국 법무부 장관
반면 2019년 9월 9일 경향신문이 '조국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가족펀드 운용사가 투자한 회사에서 매달 고문료 받았다'라는 내용을 단독 보도하자,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조국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펀드와 관계없는 회사의 고문료다. 관련 없는 걸 자꾸 (검찰이) 흘리고 있다. 일종의 망신주기"라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양승태와 관련된 참고인의 검찰 진술 내용은 인용해서 널리 알려야 할 사실이지만, '펀드가 어디에 투자했는지도 모르고, 펀드 운용사 경영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던 조국 장관의 부인이 펀드 운용사가 투자한 회사로부터 매달 고문료를 받았다는 사실은 "망신"을 주기 위해 검찰이 "관련 없는 걸 자꾸 흘리고 있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도대체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조국 교수'가 주장했던 '피의사실공표의 정당성'

물론 모든 피의사실공표 행위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공익성이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를 달리 볼 수 있습니다. 피의사실공표 자체는 형법에 규정된 죄가 분명하지만, 공익성이 클 경우 처벌되지 않습니다. 공적인 인물이나 기관이 실제로 저지른 잘못을 언론이 밝혀내 실명을 적시해 보도할 경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죄에 분명히 해당되지만, 공익성이 있을 경우 이를 처벌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형법을 전공한 법학 교수 출신인 조국 법무부 장관도 직접 이와 비슷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조국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1년 은진수 당시 감사원 감사위원이 한 로비스트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보도와 관련해 트위터에서 "피의사실공표도 정당한 언론의 자유 범위 안에 있으면 위법성이 조각되어 불벌. 노통 경우와 달리 은진수의 경우 은에게 직접 전달하였다는 혐의이기에 위법성이 조각될 개연성이 높음"이라고 밝혔습니다. 짧은 트윗이긴 하지만 공적인 인물의 혐의에 대한 피의사실공표는 공익성이 인정되어 처벌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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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지면서 이정현 당시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이 일부 정보를 알린 선관위와 이를 보도한 언론을 피의사실공표라는 이유로 공격했을 때도 조국 장관은 이 단장이 '피의사실공표'라고 주장한 행위와 이에 대한 보도를 옹호했습니다. "이정현 공보단장, 피의사실공표 운운하며 선관위와 언론 맹공. 합법적 단속과 취재활동도 마음에 들지 않기에, 이 사건의 파장을 알기에. 공이 이미 높아졌으니, 그만 하시길"이라고 말하며 공적인 인물에 대해 제기된 중대한 의혹에 대해 언론이 수사 중인 사실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두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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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사실공표의 공익성: 국정원 댓글 사건의 경우

실제로 피의사실공표와 이에 대한 보도는 조국 장관의 말처럼 일정한 공익성도 분명히 있습니다. '피의사실공표'라는 말이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비난과 오명을 뒤집어써서, '피의사실 보도'에 공익성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 이치에 닿지 않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피의사실에 대한 취재와 보도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수사기관의 수사에 대한 감시 기능이라는 공익성을 가지고 있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개인적 취재 경험을 조금 이야기하자면, 10년 가까이 경찰과 검찰을 취재하면서 피의사실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취재할 수 있었던 때는 윗선에서 실무자의 정당한 수사를 막을 때였습니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때 윗선의 압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수사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많은 정보를 취재할 수 있게 됩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유명해진 것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검사가 윗선의 허락을 받지 않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고, 국정원의 선거개입 증거인 트위터 게시물을 대량 확보한 사건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윤석열 검사는 팀장 보직에서 해임됐고, 결국 그 유명한 '국정감사 폭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처음에 어떻게 외부에 알려졌을까요? 바로 '피의사실공표'를 통해서입니다. 국정원 직원 체포나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트윗을 새로 발견했다는 사실 등은 당연히 명백한 피의사실입니다. 당시 검찰 지휘부는 이를 감추면서 사건을 축소하고 싶어 했지만, 언론의 피의사실 취재와 보도를 통해 그런 시도가 좌절됐습니다. 피의사실공표의 위험성이나 남용 가능성을 무시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피의사실 보도에도 일정한 공익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앞서 인용한 조국 장관의 과거 발언 역시 이와 비슷한 취지였을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 조국 관련 사건 보도만 '나쁜' 피의사실공표?

그렇다면 피의사실공표 자체를 일률적으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좋은 피의사실공표'와 '나쁜 피의사실공표'로 나눠서 볼 필요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등 공익적 목적과 효과가 더 큰 피의사실공표(그리고 이에 대한 보도)와, 공익적 목적과 효과는 별로 없고 수사 대상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만 강한 피의사실공표(그리고 이에 대한 보도)를 나눠서 평가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여전히 조국 장관 관련 사건과 보수 정권 관련 인사들에 대한 사건에 대한 이중기준은 문제가 됩니다. 박근혜-이명박-우병우-양승태가 공적인 인물이고, 이들이 받았던 혐의가 중대해서 이들의 혐의에 대한 보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라면, 검찰 업무를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 또는 그 후보자와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이나 혐의 역시 공익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무부 장관 본인이 아니라 그 부인 등에게 제기된 의혹이라 공익성이 떨어진다는 반론이 나온다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처가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이어졌던 수사와 보도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조국 장관 사건의 경우가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이중기준이 드러나는 특별한 사례는 아닙니다. 피의사실공표 문제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정파적으로 이용되어왔던 어젠다 중 하나였습니다. '상대편'에 대해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언론이 피의사실에 대해 보도할 때는 환호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편'에 대해 검찰이 칼끝을 돌려 수사하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면 "피의사실공표"라며 검찰과 언론을 공격해왔습니다. 이 같은 이중적 태도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도 아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비극적을 세상을 떠난 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은 이후,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 우리편에 대한 수사와 상대편에 대한 수사를 갈라서 이중적 행태를 끊임없이 반복해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해 보완되고 개선되어야 할 진짜 문제들은 한치의 발전도 없이 정파적 논쟁의 소재로만 소모되어 버렸습니다.

● 정파적으로만 소모되는 피의사실공표 문제

'무엇이 공익성이 있는 피의사실에 대한 보도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수사기관이 피의사실공표를 남용하지 않도록 만들 제도적 방안은 무엇인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가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는 행위라고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는 피의사실공표의 구성요건을 손 볼 필요는 없는지', '이 규정대로라면 연쇄살인 피의자를 검거했다는 경찰의 브리핑이나 대형 사고의 책임자를 입건했다는 수사기관의 브리핑 등 일상적 행위도 모두 피의사실 공표로 규정되는데, 과연 이것이 적절한지' 등의 문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현직 법무부 장관이 수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추석 연휴 직후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한 공보 준칙을 신속하게 수정하겠다고 나서는 법무부의 행동 역시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공보 준칙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나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직 법무부 장관인 조국 장관이 피의사실 보도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고 신속하게 피의사실공표와 관련된 준칙을 더욱 엄격하게 바꾸겠다는 것은 피의사실공표라는 공적인 어젠다를 정파적 논란의 소재로 소모하는 것을 넘어서, 형사 피의자로서의 방어권 행사라는 사적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행위라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피의사실공표를 정말 중요하고 공적인 사회적 이슈라고 생각했다면, 현직 장관이 제도적 변화의 첫 번째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공보준칙 변경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설사 정당한 개선방안이 제시되더라도, 현직 장관을 위한 제도 변경이라는 의혹 때문에 이슈의 공적인 성격과 정당성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조국 장관이 첫 수혜자?…정당성 오염이 더 큰 문제

피의사실에 대한 보도가 무조건적인 악은 아닙니다. 공익적 성격 역시 분명히 있습니다. 반대로 피의사실공표가 남용될 위험성도 분명히 있고 실제로 남용된 사례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새로운 기준을 진지하게 논의해 구체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현직 법무부 장관이 수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피의사실공표와 관련된 제도가 현직 법무부 장관 또는 그 가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갑자기 변경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문제는 이런 시점에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이유로 추진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이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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