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뜨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사이

이혜진 | 해냄출판사 편집주간

SBS 뉴스

작성 2019.09.12 10:59 수정 2019.09.13 11: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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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에 북튜버에 도전해보세요."

유튜브 쪽 콘텐츠를 제작해 온 지인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지만 너무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유튜브가 대세라지만 굳이 뭐 나까지.

전문가다운 그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매주 한 편씩 올려서 꾸준히만 하면 6개월에 구독자 몇을 찍고 1년이 지나면 몇 명은 충분히 달성할 거다, 그러면 광고 수익이 얼마쯤일 거라는 이야기에 점점 눈이 커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장 길거리 캐스팅이라도 된 사람처럼 발밑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사실 그날 들었던 더 길고 중요한 이야기, 유튜브에 맞는 콘텐츠를 어떻게 기획하고 채널은 어떻게 운영하고, 제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대신 구독자 수와 광고 수익 액수가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요즘은 꼭 유명인이 아니어도 자신이 읽은 책을 재미있게 소개하거나 다채로운 책 문화나 취향을 공유하는 북튜버들의 활약이 늘고 있다. 그중에는 구독자가 상당해 이미 '연반인'의 대열에 합류한 사람도 있다.

채널들은 북튜버들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다양하고 그에 따른 커뮤니티의 특성도 다르다. 독서 인구도 줄고 책 판매량도 떨어지는 위기의 시점에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창구가 하나라도 더 늘어나면 좋은 것 아닐까, 그러니 나도 이참에 큰마음 먹고 뛰어들어 보면 어떨까.

그날 '유튜브 현인'과의 만남은 실천력 떨어지기로 유명한 나마저도 움칫움칫 춤추게 만들었다. 사놓고 먼지만 쌓여가던 유튜브 제작 책도 펼쳐보고 채널 이름도 생각해보고 필요한 장비도 검색해보고 요즘 '핫'하다는 채널들도 보고….

그런데 무슨 책을 소개하지? 내가 만든 책만 소개하면 그건 그냥 회사 홍보가 될 테니 좀 그렇고, 요즘 뜨는 책을 소개하자니 차별성이 없을 것 같고, 그럼 내가 좋아하는 책을 다루어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책… 그나저나 요새 무슨 책 읽었더라.

부시럭부시럭 몇 권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지만 막상 어떻게 소개할지가 난감했다. 책을 이해하는 것과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닿아있지만 또 다른 영역이란 점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물론 시간을 두고 궁리하면서 채널을 운영하다 보면 달라지겠지만 연식만 믿고 있던 나의 둔감함을 일깨워주었다.

이 작은 소동으로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책 만드는 일이 업이라 당연히 보통 사람들보다는 책을 더 일상처럼 접하니 '경험'과 '매뉴얼'은 쌓이지만 그것이 꼭 나의 '콘텐츠'로 쌓이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어디 책뿐일까. '나름 매력적인 콘텐츠'란 자신의 정체성에서 빚어지는 취향과, 시간, 의도의 축적물일 텐데,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물리적으로 어떤 대상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해도 뚜렷한 결과를 내놓긴 힘들다. 유튜브든 무엇이든 대세라 해서 무작정 쫓아 뛰어가기 전에 일단 세상 밖으로 내놓을 게 내 안에 들어있는지를 점검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얼마 전 한 창작캠프에서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은 한 인기 유튜버의 강연이었다. 파워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어떻게 구독자를 빨리 늘리고 조회 수를 높이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나직한 강사의 목소리가 뇌리에 박힌다.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 우르르 쫓아가는 콘텐츠, 구독자 수만 높이는 자극적인 콘텐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내용의 진정성, 시간과 함께 축적해 가는 신뢰로 콘텐츠를 만들어가면 구독률 증가 속도는 조금 더딜지라도, 더 단단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냅니다. 무엇보다 유튜브 채널은 유튜버 개인의 관심과 정체성에서 출발하기에 뜨는 콘텐츠라서가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강연장을 나오는 뒤통수가 괜스레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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