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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홍콩, 어린 10대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홍콩행 비행기를 처음 탄 건 지난 6월 11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벌써 세 번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시위가 본격화된 지 90일이 넘었지만, 홍콩 송환법 사태의 출구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요구사항은 송환법 철회에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포함해 5가지로 늘었습니다. 시위 양상은 과격해졌고, 홍콩 경찰의 대응 또한 강경해졌습니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다양한 홍콩 시민들을 보고 만났습니다. 아이를 등에 업고 집회에 나온 가족과 젊은이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나왔다는 노인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우산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의 주역이었던 조슈아 웡, 홍콩 민주파 국회의원들. 물론 가장 많이 만난 시민들은 송환법 시위를 자발적으로 이끌고 있는 10~2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17살에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을 주도했던 조슈아 웡
● 12살 샤오맹의 2019년 여름

앞서 언급한 조슈아 웡은 1997년 7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아홉 달 전에 태어난 '반환둥이'입니다. 조슈아 웡은 2014년 17살 학생 신분으로 우산혁명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그는 앞서 15살이던 2012년 홍콩 의무교육에 애국심을 고취하는 과목을 넣겠다는 '국민교육 계획'에 반대하는 운동에도 선봉에 나섰습니다.
시위 현장서 경찰에 체포된 12살 소년
이번 송환법 반대 집회와 시위에는 많은 '조슈아 웡'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20대 초반 반환둥이들은 물론이고, 10대 초반의 중학생들까지 나서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집회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위험한 시위 현장에서도 어린 학생들을 목격했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밤에는 12세 소년이 시위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경찰의 첫 실탄 경고 사격의 총성이 울렸던 날입니다. 홍콩 경찰은 이 소년이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고, 시위대 선봉에 있다가 붙잡혔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또 이달 초에 화염병을 지니고 있던 13살 소년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진위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이 폭력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우려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어린 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서게 했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깁니다. 단순한 10대의 호기심이나 반항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홍콩 학교의 신학기 시작이자 개학일인 지난 2일 학생들의 동맹휴업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그날 수업을 거부하거나 일찍 학교가 끝난 중고등학생들은 홍콩 도심 센트럴의 에든버러 광장에 모였습니다.
지난 2일 홍콩 송환법 반대 중고등학생 집회 참석한 12살 샤오맹 군
그곳에서 지난달 경찰에 체포된 소년과 동갑내기 중학교 1학년생을 만났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작은 체격의, 앳된 얼굴의 남학생이었습니다. 개학식이 일찍 끝나자마자 집회 장소로 혼자 왔다는 그는 가명으로 샤오맹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것을 부모님께 말했느냐, 집회나 시위에 가본 적 있는 질문에 샤오맹은 "부모님은 알고 계세요. 우산혁명 때도 부모님이 저를 데리고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여러 번 집회에 참석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샤오맹은 "송환법 시위에서 학생들이 많이 희생했기 때문에 나왔다"며 "경찰의 과잉진압을 문책하고, 송환법을 철회해야 한다"고 당차게 말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집회나 시위 현장에 나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고 위험도 있지 않냐는 말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TV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위 현장에 직접 나와보면 학생들이 왜 시위에 나서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저도 동갑내기 친구처럼 붙잡힐 수 있으니 겁이 나죠. 하지만 엄청 두렵지는 않습니다."

● "나의 미래를 위해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나온 중학교 3학년 여학생들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제가 아는 홍콩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홍콩 사회의 미래 기둥으로서 나와서 싸우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돈을 벌어야 하고 생업이 있어서 시위에 나서기에는 부담이 큽니다. 학생들은 부담이 덜합니다. 저는 저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자유와 권리를 위해 나왔습니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사회의 미래 기둥으로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홍콩 학생들의 생각에 대해 중국 언론은 젊은 세대의 반발 심리, 그리고 중국 중앙 정부에 반감을 가지도록 만드는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학생들은 "왜 평화로운 집회에 나오는데도 우리 모두 두려워하며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나요? 이번에 홍콩과 중국 정부가 보여준 행위들을 보지 않았나요?"라며 반문했습니다.

여러 명을 인터뷰하면서 어린 학생들이 홍콩 정부와 경찰이 홍콩 시민들을 위하지 않는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충격은 반중국 정서로 이어지고, 또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송환법 사태가 어떤 결말로 끝날지는 예견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지금 어린 학생들의 경험과 정서, 생각은 추후 '홍콩인'의 특성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 6월 15일과 9월 4일

지난 9월 4일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장관은 송환법 철회를 전격 선언했습니다. 송환법 반대 시민들의 5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를 수용한 것입니다. 캐리 람 장관은 또 시위대가 요구하는 경찰 과잉진압 조사도 독립적인 기구는 아니지만 기존 조사 기구에 외부 인사들을 보강해 철저하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발표 전날 캐리 람 장관이 비공개 석상에서 송환법을 추진한 자신을 탓하고, 사퇴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듯한 녹취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홍콩 행정수반 캐리 람 장관
약 석 달 전인 6월 15일 오후가 떠올랐습니다. 하루 뒤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캐리 람 장관은 송환법의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습니다. 일부에선 '백기를 들었다' '시민들의 작은 승리'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발표 직후 홍콩 정부 청사 근처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한결같이 "연기는 의미가 없다" "법적으로 완전 철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홍콩 시위 역사상 가장 많은 200만 명이 검은 옷을 입고 평화 행진에 나섰습니다.

당시 홍콩과 중국 정부가 무기한 연기가 아닌 철회를 공식 선언하고, 캐리 람 장관의 거취를 결정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중국 정부가 체면을 중시하고,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등 분쟁지역에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고 싶어 하는 만큼 그랬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일찍 철회를 했다면 중국 정부 입장에선 중국 내 다른 도시가 대체할 수 없는 자금 조달 창구이자 무역의 거점인 홍콩이 이처럼 타격을 입지 않고, 자신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직선제 등 민주화 요구까지 번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또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홍콩이 국제적인 관심사항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컸겠죠.
집회에 참석한 홍콩 청년들이 5대 요구를 수용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캐리 람 장관의 송환법 공식 철회 발표에도 "5대 요구, 하나도 빠질 수 없다"라는 구호를 외쳐온 홍콩 시민들은 계속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홍콩 시민들은 '일국양제', 중국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동안 누려온 자유와 인권, 법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국양제의 기한이라고 한 2047년 이후에도 그 가치들이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구 열강에 영토를 빼앗겼던 아픈 기억을 씻고, 홍콩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원하는 중국 정부는 직선제 등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송환법 철폐 발표 이후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란 분석도 나오지만, 시위는 끊이지 않고 예전보다 더 과격한 모습으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홍콩의 2019년 여름은 금방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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