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봉사집단이라서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다들 '목숨을 걸지' 않았으니 오히려 오래 팀이 유지될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평일에는 모두 본업에 충실해야 하므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청년의 수가 한정되어 있기도 한 것이지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상담 신청을 받을 때마다 경쟁률이 높아지곤 하는데, 이 시간이 항상 괴로웠지요. '누구 고민이 더 힘드냐?'를 기준으로 선발을 할 수도 없고, 선착순으로 칼같이 자르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난 뒤 또 한 번 힘든 순간이 오는데, 바로 자기소개 시간입니다. 자주 "어디에서들 왔어요?"라는 질문과 함께 집단상담을 시작하곤 했는데, "김해에서 왔어요." "제주도요." "대전에서 ktx를 타고 왔어요." 같은 답변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상담료를 안 받아도, 교통비와 숙박비로 10만 원 넘게 드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곤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왜 여기까지 왔는지 물어보면 "우리 동네에는 이런 것이 없어요."라고들 답했습니다.
'이런 것'은 뭘까요? 멀지 않은 곳에 심리상담센터도, 정신과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 청년들은 왜, 무엇이 없다고 말하는 걸까요? 저는 이것을 '커뮤니티 케어'의 부재라고 말해볼까 합니다. 커뮤니티 케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회복지나 마을공동체와 관련해 주로 들을 수 있는 단어로, 취약계층을 위해 지역사회 안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 건강'에 있어서도 이 커뮤니티 케어가 필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심리검사, 임상, 상담, 처방을 받을 정도의 상황은 아닌, 포괄적으로 보았을 때 '일상적' 상태의 청년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힘듭니다. 그것은 트라우마나 상처, 우울의 문제는 아니지만, 장기 미취업이나 결혼, 나를 미치게 하는 직장 동료, 학자금 대출 등 일상 속 여러 고통에 기반한 마음의 힘듦이지요.
이것은 분명 질병이나 질환은 아니지만, 또 가만히 혼자 앓다 보면 깊은 마음의 수렁으로 빠질 수 있는 과도기적 마음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씩 느끼는 '허한 마음', '가슴이 턱 막히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내일은 또 분명 나아지기에 우리는 다들 그러려니 살아갑니다만, 분명히 이런 감정들 또한 내버려 두면 마트 적립 포인트처럼 내 안에 꾸준히 쌓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누구 맥주 마시자고 부를 사람 없나? 아, 근데 걔네도 힘들겠지.' '엄마한테 말해볼까? 아, 됐어. 뭔 소리 들으려고.'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음 건강의 커뮤니티 케어가 필요합니다. 같은 생애주기, 비슷한 생활반경 안의 존재들이 서로 마음을 돌보는 것. 쉽게 말해 우리 동네 청년의 고민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예방적 환경이라고 할까요.
서울시 청년 시민의회에서는 지난 8월, 청년의 마음 건강에 대한 청년 시민위원들의 의결에 따라 약 20억의 참여예산이 2020년 서울시 정책으로 반영되었으며, 시의회에서는 청년 기본조례에 정서 건강에 대한 조항을 삽입했습니다. 부산시의회에서는 시민 외로움에 대한 조례를 발의해 화제가 되었지요.
이런 움직임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파지고 나면'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아프기 전에' 케어하는 서비스는 부재했던, 지금의 공공 행정 지원체계만으로는 안 된다는 문제인식이 담겨있습니다.
당사자인 청년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목포의 '괜찮아 마을'이나 경상남도 청년센터가 운영하는 프로젝트 '청년온나',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온라인 또래 상담 프로그램 '마음 친구', 대전시의 마음건강활동가 양성 프로젝트가 다 같은 맥락입니다.
마음 건강은 아직 낯선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아기 단어'이니까요. 그래서 정신과에 가야 할지, 심리상담센터는 무엇을 해주는지도 아직 구분이 잘 안되는데, 커뮤니티 케어는 또 뭐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 건강으로 치환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우리의 몸이 아플 때 의사 선생님도 필요한 존재이지만, 아프지 않을 때도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존재들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같이 달리기를 하는 동호회 사람들, 화학 재료가 들어있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파는 길 건너 식당, 내 늘어난 뱃살을 빼기 위해 매일 함께 고군분투하는 헬스장 트레이너. 이 모든 '이웃'들이 우리의 몸 건강에 기여하듯, 마음 역시도 내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 '예방과 증진'을 위해 돌보는 행위들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몸 건강의 모든 지표가 "사망률만 줄이면 돼"가 아니듯이, 마음 건강 역시도 이제는 '자살률'만으로 판단할 시대는 지나지 않았을까요?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인-잇 #인잇 #장재열 #러닝머신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