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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청년, 마을에서 마음을 돌보다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인-잇] 청년, 마을에서 마음을 돌보다
청년 또래 상담을 진행해온 지 어느덧 7년 차가 됩니다. 청년들의 마음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 때문인지, 저나 저희 팀의 존재를 아는 분들도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항상 받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매출이 어떻게 돼요?" "직원이 몇 명이에요?" 두 가지가 대표적이지요. 매번 이렇게 답을 합니다. "매출은 0원이에요." "직원이라고 한다면 0명이고, 팀원은 10명쯤 돼요."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것을 알려드리면서 말이지요.

순수 봉사집단이라서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다들 '목숨을 걸지' 않았으니 오히려 오래 팀이 유지될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평일에는 모두 본업에 충실해야 하므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청년의 수가 한정되어 있기도 한 것이지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상담 신청을 받을 때마다 경쟁률이 높아지곤 하는데, 이 시간이 항상 괴로웠지요. '누구 고민이 더 힘드냐?'를 기준으로 선발을 할 수도 없고, 선착순으로 칼같이 자르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난 뒤 또 한 번 힘든 순간이 오는데, 바로 자기소개 시간입니다. 자주 "어디에서들 왔어요?"라는 질문과 함께 집단상담을 시작하곤 했는데, "김해에서 왔어요." "제주도요." "대전에서 ktx를 타고 왔어요." 같은 답변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상담료를 안 받아도, 교통비와 숙박비로 10만 원 넘게 드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곤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왜 여기까지 왔는지 물어보면 "우리 동네에는 이런 것이 없어요."라고들 답했습니다.

'이런 것'은 뭘까요? 멀지 않은 곳에 심리상담센터도, 정신과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 청년들은 왜, 무엇이 없다고 말하는 걸까요? 저는 이것을 '커뮤니티 케어'의 부재라고 말해볼까 합니다. 커뮤니티 케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회복지나 마을공동체와 관련해 주로 들을 수 있는 단어로, 취약계층을 위해 지역사회 안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 건강'에 있어서도 이 커뮤니티 케어가 필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심리검사, 임상, 상담, 처방을 받을 정도의 상황은 아닌, 포괄적으로 보았을 때 '일상적' 상태의 청년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힘듭니다. 그것은 트라우마나 상처, 우울의 문제는 아니지만, 장기 미취업이나 결혼, 나를 미치게 하는 직장 동료, 학자금 대출 등 일상 속 여러 고통에 기반한 마음의 힘듦이지요.

이것은 분명 질병이나 질환은 아니지만, 또 가만히 혼자 앓다 보면 깊은 마음의 수렁으로 빠질 수 있는 과도기적 마음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씩 느끼는 '허한 마음', '가슴이 턱 막히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내일은 또 분명 나아지기에 우리는 다들 그러려니 살아갑니다만, 분명히 이런 감정들 또한 내버려 두면 마트 적립 포인트처럼 내 안에 꾸준히 쌓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누구 맥주 마시자고 부를 사람 없나? 아, 근데 걔네도 힘들겠지.' '엄마한테 말해볼까? 아, 됐어. 뭔 소리 들으려고.'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음 건강의 커뮤니티 케어가 필요합니다. 같은 생애주기, 비슷한 생활반경 안의 존재들이 서로 마음을 돌보는 것. 쉽게 말해 우리 동네 청년의 고민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예방적 환경이라고 할까요.

서울시 청년 시민의회에서는 지난 8월, 청년의 마음 건강에 대한 청년 시민위원들의 의결에 따라 약 20억의 참여예산이 2020년 서울시 정책으로 반영되었으며, 시의회에서는 청년 기본조례에 정서 건강에 대한 조항을 삽입했습니다. 부산시의회에서는 시민 외로움에 대한 조례를 발의해 화제가 되었지요.

이런 움직임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파지고 나면'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아프기 전에' 케어하는 서비스는 부재했던, 지금의 공공 행정 지원체계만으로는 안 된다는 문제인식이 담겨있습니다.

당사자인 청년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목포의 '괜찮아 마을'이나 경상남도 청년센터가 운영하는 프로젝트 '청년온나',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온라인 또래 상담 프로그램 '마음 친구', 대전시의 마음건강활동가 양성 프로젝트가 다 같은 맥락입니다.

마음 건강은 아직 낯선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아기 단어'이니까요. 그래서 정신과에 가야 할지, 심리상담센터는 무엇을 해주는지도 아직 구분이 잘 안되는데, 커뮤니티 케어는 또 뭐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 건강으로 치환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우리의 몸이 아플 때 의사 선생님도 필요한 존재이지만, 아프지 않을 때도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존재들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같이 달리기를 하는 동호회 사람들, 화학 재료가 들어있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파는 길 건너 식당, 내 늘어난 뱃살을 빼기 위해 매일 함께 고군분투하는 헬스장 트레이너. 이 모든 '이웃'들이 우리의 몸 건강에 기여하듯, 마음 역시도 내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 '예방과 증진'을 위해 돌보는 행위들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몸 건강의 모든 지표가 "사망률만 줄이면 돼"가 아니듯이, 마음 건강 역시도 이제는 '자살률'만으로 판단할 시대는 지나지 않았을까요?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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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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