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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뜨겁고도 시원했던 그 여름, 그 겨울...'펭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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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04 : 뜨겁고도 시원했던 그 여름, 그 겨울 <펭귄의 여름>

"매년 겨울이면 남극에 간다.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따뜻한 남반구의 여름은 동물들이 번식하는 기간이다. 수천 쌍의 펭귄은 좁은 육지에 빽빽하게 들어차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둥지 앞에서 기다리다가 부모 펭귄을 잡아 위치기록계를 부착하거나 새끼가 얼마나 컸는지 무게를 재고 성장치를 측정한다. 내게 남극의 여름은 매일같이 펭귄에게 다가가 궁금증을 해결하려 애쓰는 시간이다."

뜨거웠던 여름이 한풀 꺾였습니다. 저 자신은 뭘 하고 지나갔는지 모르게 훌쩍 흘러간 여름이었는데... 저 멀리 시원한 곳의 여름, 그것도 남극의 펭귄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동물행동학자인 이원영 작가의 <펭귄의 여름>. 오늘 함께 읽고 싶은 책입니다.

작가 소개를 잠깐 볼까요.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동물행동학자, 여름엔 북극, 겨울엔 남극을 오가며 펭귄을 비롯한 동물의 행동 생태를 연구한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가장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습니다. 무려 남극입니다. 그리고 펭귄!!

"비행기 후미의 커다란 문이 열리고 눈으로 뒤덮인 땅이 드러났다. 남극에 왔구나.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오자 남극에 왔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일행 중 남극에 처음 온 사람은 비행기가 착륙하자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작가가 연구자로서 주로 하는 일은 20쌍 정도를 골라 부모 펭귄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관찰하느냐. 눈으로도 보지만 잠수 행동 관찰을 위해서는 펭귄에게 초 단위로 위치를 저장하는 위치기록계를 부착합니다. 방해가 안 되도록 30-40그램 무게의 아주 작은 기기를 등 깃털 속에 방수테이프로 붙여주고 그걸 하루나 이틀 뒤 다시 수거합니다. 어느 바다에서 크릴을 잡아먹었는지 이걸 통해 확인하다는 것.

"짝짓기를 마친 젠투펭귄 부부는 작은 돌을 쌓아서 배를 깔고 엎드리면 딱 맞을 정도의 크기로 둥지를 만든다. 근처에 있는 돌을 쓰기도 하지만 가까운 언덕 비탈까지 가서 부리로 돌을 물어 하나씩 가져온다... 비교적 최근에 버려진 둥지 5개를 골라 돌을 세어보았더니 적게는 400개, 많게는 600개가 넘었다. 둥지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2개의 알을 낳아 암수가 번갈아가며 알을 품어준다."

"부모 펭귄의 육아 부담은 동등하다. 부부는 교대로 바다에 나가서 먹이를 배 속에 담아 오고 그것을 어린 펭귄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조금씩 토해서 먹인다.... 가끔 너무 많이 주려다가 먹이를 흘리기도 하는데 바닥에 흘린 먹이를 담아와 흩트려보았더니 대부분 크릴이었다."

"어제부터 강한 눈보라가 불고 있다. 최대 순간 풍속 초속 27미터였다... 이런 날은 펭귄들도 바다에 나가지 않고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린다... 블리자드가 부는 날은 사람도 쉬는 날이다... 창밖 세상은 온통 하얗다. 육지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은 채 흰색 풍경으로 이어져 있다. 오늘 내가 보고 있는 바람이 이제껏 본 것 가운데 가장 무섭고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면 녀석은 한 걸음 물러선다. 날개를 벌린 채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다. 자칫하면 겁을 먹고 다시 바다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맨손으로 잡긴 힘들어 보여 준비해 간 그물을 꺼냈다... 위치기록계는 잘 고정되어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테이프를 떼어내고 장치는 가방에 넣었다... 어제보다 1킬로그램가량 늘었다. 많이도 먹었군! 녀석의 위장엔 늘어난 무게만큼의 먹이가 담겨 있을 것이다."

"붉은 작업복이 거의 흰색에 가까워졌고 손에는 분변이 딱딱하게 말라붙었다. 몸에서 조류 특유의 분변 냄새가 진동한다. 이런 날은 동료들도 나를 피한다. 괴롭지만 펭귄을 포획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손에 잡힌 펭귄은 긴장해서 상당한 양의 분변을 내보낸다. 가끔 얼굴에 맞는 일도 있는데 오늘은 운이 좋게도 얼굴은 피한 것 같다."

"세종이는 23일 새벽 4시경에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해 남동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나갔다. 그리고 그 부근에서 약 3시간을 머물면서 먹이 활동을 한 것으로 보였다. 다시 번식지로 돌아온 것은 7시간이 지난 오전 11시였다. 바다에 나갈 때와 돌아올 때의 경로는 거의 일치했다. 30초마다 저장된 위성 신호의 점들을 이어보니 일자형 직선처럼 보인다. 녀석은 길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자유롭게 남극 바다를 누비고 있었다."

관찰 중이던 펭귄이 실종되거나 죽을 때도 있습니다.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 섬 말고 근처 다른 섬으로 가서 캠핑을 하면서 펭귄 행태를 관찰 연구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남극의 여름, 펭귄의 여름이 흘러갑니다. 2014년부터 해마다 인간의 겨울에 남극을 방문한 작가는, 세밑과 세초를 줄곧 남극에서 보냈습니다.

"남극은 지구상 어느 국가에도 속해 있지 않은 유일한 곳으로, 오직 과학자들의 연구를 위해서만 체류가 허용된 땅이다. 세종기지에선 모두가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다. 남극에선 물자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진 걸 나누며 서로를 돕는 행위가 당연하다... 1월 1일 0시에 우리는 다 같이 손을 들고 공중으로 뛰며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생각했다. 세상이 남극처럼 바뀐다면 어떨까."

책에 펭귄의 사진은 한 장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대신에 숱한 펭귄들- 젠투펭귄, 황제펭귄, 아델리펭귄, 턱끈펭귄 등등의 그림,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스케치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뒤뚱거리면서 천천히 다니고 어디 모여서 하릴없이 시간 보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 펭귄은 귀여우면서도 대단히 부지런한 동물이었습니다. 가까이서, 세밀하게 보면 알게 되고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게 어디 한둘일까요.

"다들 잘 지내고 있구나, 곧 돌아올 남극의 겨울을 잘 이겨내렴. 내년에 또 보자. 펭귄의 언어로 말을 건네진 못하고 대신 인간의 언어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42일을 보내고 남극을 떠나지만 남극이 다시 여름을 맞이할 때 작가는 돌아갑니다. 2019년 여름이 다시 오지 않겠으나 비슷한 듯 다른, 다른 듯 비슷한 여름이 내년에 또 돌아오겠죠. 앞으로 석 달 뒤면 이 작가는 또 남극의 여름에 펭귄을 보러 가겠네요. 분변을 뒤집어쓸 것만 빼고 다 부럽습니다.

*출판사 생각의힘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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