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 국가대표 김현섭 역시 전에 없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개최국의 가장 유력한 메달 후보자였죠. 김현섭이 몸에 이상을 느낀 건 20km 경보 결승을 이틀 앞둔 바로 그 날 저녁이었습니다. 식사 후 선수촌에서 쉬려는데 갑자기 배가 뒤틀리는 듯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상훈 트레이너 등에 업혀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스트레스성 위경련.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첫 세계선수권. 느끼지 못했지만 마음의 부담이 컸던 겁니다.
대회 이틀째인 28일. 김현섭은 출발선 앞에 섰습니다. 몸 상태는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총성이 울렸고 첫발을 뗐습니다. 습도는 85%.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날씨였습니다. 정신없이 걸었습니다. 중반까지는 2위 그룹을 지켰습니다. 14km.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힘이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16km. 경쟁자들이 치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순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는 3km. 선두의 러시아 선수들은 격차를 더 벌렸습니다. 김현섭은 순식간에 메달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무더위 속에 거리로 나온 대구 시민들은 '김현섭' '힘내라'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다른 나라였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스물여섯. 김현섭은 밝게 웃었습니다. 6등. 1993년 대회 마라톤에서 김재룡의 4위 이후 한국 육상 최고 순위였습니다."메달은 못 땄지만 6등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지난 20일, 극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IAAF가 대한육상경기연맹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도핑 테스트 결과 아멜노야프의 동메달을 박탈하고 김현섭을 새로운 동메달리스트로 공식 인정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최악의 조건을 딛고 포기하지 않았던 투혼은 8년이 지나 '한국 육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라는 보상으로 돌아왔습니다.
1985년생인 김현섭은 이제 34살입니다. 전성기가 지났습니다. 남자 경보 20km 현 세계 1위 야마니시는 1996년생, 2위 이케다(이상 일본)는 1998년생으로 모두 20대 초반입니다. 내년 도쿄올림픽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힙니다. 김현섭은 35살이 되는 내년 도쿄에서 마지막 힘을 쏟아낸다는 각오입니다. 부상이 점점 잦아지고, 회복 시간이 길어지지만 마음을 다시 다잡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는 올 테니까."'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제 좌우명이에요. 경기나 훈련 중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늘 되뇌는 말이에요. 8년 전 대구에서 아프다고, 힘들다고, 메달을 놓쳤다고 중간에 포기했다면 한국 육상 사상 첫 메달리스트란 지금의 영광도 없었겠죠. 제가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