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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극우 부총리가 쏜 '연정 붕괴' 화살…'신의 한 수? 자충수?'

이탈리아 극우 부총리가 쏜 '연정 붕괴' 화살…'신의 한 수? 자충수?'
'서유럽 최초의 극우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정권'. 작년 6월 1일 출범한 이탈리아 연립정부를 두고 외신들이 내린 평가다.

작년 3월 총선에서 과반 정당이 나오지 않자 3개월에 걸친 지루한 협상 끝에 연정이 출범했으나 그 모양새는 다소 어색했다.

기성정치의 해체를 꿈꾸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반(反)난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성향의 '동맹'이 손을 맞잡았기 때문이다.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 두 실세는 중립적 인사로 법학자이자 변호사인 주세페 콘테를 총리로 내세웠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콘테에게 두 당을 이어주는 조율자 역할을 맡기고 자신들은 각각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과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각각 맡아 진용을 갖췄다.

지지 기반과 정치 철학이 워낙 달라 오래 지속하기 힘든 '어색한 동거'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들은 이탈리아를 바꿔놓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연정은 이후 줄곧 파열음을 냈다.

프랑스 리옹-토리노 간 고속철도(TAV) 건설 사업을 비롯한 인프라 구축부터 감세, 사법개혁,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설정까지 모든 핵심 정책 사안에서 부딪혔다.

부유한 북부를 기반으로 한 동맹과 남부 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오성운동은 각자의 지지 세력을 만족시킬 정책에 매몰됐고 이는 필연적인 대립으로 이어졌다 토리노를 중심으로 북부 지역에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갈 TAV 사업을 놓고 극명하게 찬(동맹)-반(오성운동)이 나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말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는 두 당의 희비를 가르는 분기점이 됐다.

작년 3월 총선에서 32%가 넘는 표를 얻어 창당 9년 만에 단숨에 최대 정당이 된 오성운동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17%에 그치는 저조한 득표율로 중도좌파 민주당(PD)에조차 밀려 3위로 전락했다.

반면, 총선에서 17%의 표를 얻은 동맹은 살비니의 강경한 난민 정책이 민심을 파고들며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다.

이를 토대로 유럽의회 선거에선 예상을 뒤엎고 34%가 넘는 득표를 하며 일약 최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기세등등한 동맹 내부에서는 이때부터 연정 파기와 조기 총선론이 당내에서 조금씩 세를 얻기 시작했고, 오성운동과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연정 파국의 발화점은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상원에서 열린 TAV 프로젝트 관련 표결에서 오성운동이 반대표를 던진 것이었지만 이미 양측의 앙금은 이전부터 차곡차곡 누적돼온 분석이다.

이제 관심은 살비니가 오성운동과의 연정 붕괴를 선언하며 쏘아 올린 화살이 어떤 과녁에 꽂히냐에 쏠린다.

특히 20일 콘테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연정 구성, 조기 총선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

40%에 육박하는 고공 지지율을 누리는 살비니는 애초 조기 총선 개최를 염두에 두고 연정 붕괴 카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의회 과반 의석을 점하는 정당이 없을뿐더러 정당 간 역학 구도상 어느 당도 새로운 연정 구성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

연정 붕괴가 곧바로 조기 총선으로 이어질 것이고 현재의 지지율을 고려해 손쉽게 다수당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일단 현재까지는 그의 셈법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서로 앙숙처럼 으르렁거리던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과 오성운동이 '반(反)동맹'을 외치며 돌연 밀착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살비니도 예상하지 못한 경우의 수다.

실제 두 당은 현재도 물밑에서 연정 협상을 벌이며 줄다리기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당에서 합의한 정책을 서면으로 기술하는 독일식 '연정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거론된다.

두 당이 새 연정에 합의해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의 승인을 받을 경우 동맹은 내각에서 퇴출당하고 자연스럽게 살비니도 부총리 및 내무장관 자리를 내놔야 한다.

'적과 동침'처럼 갑자기 서로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취한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모습에 살비니는 당황했고, 현지 정가에서는 '살비니가 지지율에 취한 나머지 자충수를 뒀다'는 관전평까지 흘러나왔다.

현재로선 이번 연정 위기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 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오성운동과 민주당 간 물밑 협상이 끝내 좌초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는 살비니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실제 일각에선 두 당의 과거를 돌아보면 정책적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당 간 연정 구성 논의가 끝내 무산되면 살비니의 의도대로 조기 총선이 현실화하게 된다.

의회 해산권을 쥔 마타렐라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콘테 총리가 이날 사임을 선언하며 "이제 공화국 대통령이 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마타렐라 대통령이 결국 이탈리아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타개할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당분간 이탈리아 국민은 물론 EU의 눈과 귀는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살비니의 연정 붕괴 카드가 '신의 한수'가 될 지, '자승자박'의 결과로 귀결될 지 역시 마타렐라 대통령의 손에 달렸다.

(연합뉴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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