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인생 바꾼 '위안부 증언'…中서도 끝나지 않은 싸움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9.08.17 21:25 수정 2019.08.17 22:0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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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런 일본의 잔혹한 만행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도 겪었습니다. 일본 강제 노역으로 끌려간 중국인은 4만 명 가까이 되고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8명 남았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해온 중국인들을 정성엽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기자>

산길을 한참 돌아 도착한 산시성 위현의 가오좡촌.

아직도 일본군이 침입했던 1940년대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 시골 마을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공론화된 계기가 된 곳입니다.

이 마을 토박이 66살 장솽빙 씨.

1982년 28살 초등학교 교사였던 장 씨는 마을에서 일본군에 납치돼 끌려갔던 호우둥어 할머니의 비극적인 삶을 처음 듣고 인생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후 20여 년간 산시성 일대에 거주하던 133명의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다니며 증언을 모았습니다.

[장솽빙/中 위안부 피해자 활동가 : (자발적이었다고 증언한 피해자가 있었나요?)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3차례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 법원은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끝까지 해보자며 영화에도 출연하고 책도 출간하며 세상에 알리는 사이, 중국 위안부 피해자는 8명만 남았습니다.

장 씨와 위안부 피해자 소송을 함께 했던 캉젠 변호사는 강제 징용 문제로 항일 전선을 넓혔습니다.

캉 변호사는 잘못 알려진 사실부터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합니다.

지난 2016년 일본 미쓰비시가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면서 중국과 문제가 해결됐다고 알려진 건 사실이 아니라고 힘줘 말했습니다.

[캉젠/中 강제징용 피해사건 변호사 : 우리는 화해 해결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열 명 정도만 돈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사죄도 강제징용한 사실에만 마지못해 미안하다고 한 겁니다.]

피해자 규모도 일본 자료를 샅샅이 뒤져 일본 측 주장보다 10배가 넘는 3만 8천여 명이란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베이징에 소송을 다시 제기한 캉 변호사는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우리 대법원 판결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캉젠/中 강제징용 피해사건 변호사 : 전쟁 시기의 개인의 피해에 대한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려줬습니다.]

수십 년간 일본의 전쟁 범죄에 맞선 두 사람에게 일본 정부는 어떻게 비쳐 졌을까?

[장솽빙/中 위안부 피해자 활동가 : 시종일관 타국을 침범한다는 태도와 원칙은 변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캉젠/中 강제징용 피해사건 변호사 : 사과의 뜻을 표시하지 않는 한, 일본은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영상취재 : 최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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