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끝나지 않은 '친일 청산'-친일 재산 환수

정의를 언제까지 지연할 것인가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9.08.17 09:01 수정 2019.08.17 17: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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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마부작침] 끝나지 않은 친일 청산-친일 재산 환수
"이 법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가 그 당시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여 거래의 안전을 도모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 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2005년 12월 29일 공포된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귀속법)의 제 1조 <목적>이다. 이 법에 따라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이하 친일재산조사위)가 만들어졌다. 정부 수립 직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워졌다 와해되고 반세기도 넘게 지난 뒤였다. 친일재산조사위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 간 활동했다. 친일파 168명의 부동산 2,457필지, 1,300만㎡를 환수했다. 공시지가로 1,267억 원 어치였다. 늦어도 많이 늦은 시기에, 활동기간이 길지 않았는데도 의미 있는 성과였다. 무엇보다 '매국'의 대가를 늦게나마 징벌한다는 차원에서 '지연된 정의'를 실현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친일파의 후손들은 승복하기는커녕 소송으로 맞섰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지난 2017년 '친일파 재산보고서' 시리즈로 친일 재산 환수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이번엔 후속 기사로 친일 재산을 둘러싸고 친일파 후손과 정부 간 벌어진 소송 진행 상황과 그 결과를 살펴봤다. 여전히 완수하지 못한 과제인 '친일 청산'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해서도 당시 친일재산조사위 관계자들에게 들어봤다.

● 국가가 되찾은 땅 '4㎡'... 친일파 후손들의 반격
마부작침지난 6월 26일 충격적인 판결이 하나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13부(부장판사 김용빈)는 국가가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서울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에서, 국가가 소유권 이전을 청구한 필지 중 딱 1개 필지, 4㎡만 소유권을 이전하라고 선고했다. 옛날 기준으로 '1평'보다 약간 큰 크기의 땅이다. 국가가 소유권 이전을 청구한 필지는 138개, 면적은 190만㎡였다. 0.0002%만 돌려받은 셈이다. 이우영 회장이 이미 팔아버린 땅에 대한 부당이득을 돌려 달라는 청구에 대해서는 8개 필지의 매각 대금 3억 5천여만 원을 국가에 반환하라는 판결도 함께 나왔다. 원고인 대한민국의 일부 승소라고 하지만 '사실상 패소'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친일파 이해승의 재산 환수에 대해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이미 국가 패소 확정 판결이 났기에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이었다. 2011년 개정된 친일재산귀속법 부칙에는 "확정 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는 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 "한일합병의 공 아니라 왕실 종친이라 받은 재산" 주장

그럼 '그 확정 판결'은 무슨 내용이었을까. 2007년 친일재산조사위가 이해승으로부터 이우영 회장이 물려받은 땅에 대해 국가귀속결정을 내렸는데 이 회장은 이에 불복해 2008년 행정소송을 냈다.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으나 '한일합병의 공' 때문이 아니라 왕실 종친이라는 이유로 받았다는 주장, 그래서 친일재산조사위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주장이었다. 친일재산귀속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반민족규명법상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정의에서 '한일합병의 공으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라는 조항을 겨냥했다.

행정소송 1심에서는 이우영 회장이 졌지만 2심에서 반전이 벌어졌다. 2심 재판부가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해승이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고 판단하고 친일재산조사위 결정 처분을 모두 취소한 것이다. 이 판결 그대로 2010년 대법원에서 국가 패소가 확정됐다. 위에서 언급한 확정 판결은 이것이었다.

확정 판결 뒤 논란이 커지자, 국회는 해당 법에서 '한일합병의 공으로' 8글자를 삭제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로 법 적용 대상을 바꿨다. 그리고 2015년 10월 정부는 이우영 회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항소심은 이 민사소송에 대한 것이다. 그 결과 국가는 행정소송 확정 판결 당시 포함되지 않았던 충북 괴산군의 1필지, 단 4㎡만 환수할 수 있게 됐다. 이우영 회장을 상대로 한 이번 민사 소송은 친일파 후손과 정부 사이에 아직까지 진행 중인 유일한 소송이다. 이 소송의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면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친일 재산 환수' 소송은 마무리된다.

● 친일파 후손-정부 소송 124건, 승패는?
[마부작침]친일재산
친일재산조사위는 이해승을 포함해 친일파 168명, 정확히는 그들의 후손으로부터 '친일재산' 1,300만㎡ 환수를 결정했다. 친일파 후손들은 반격에 나섰다. 줄줄이 소송을 제기했다. 친일재산조사위 출범을 기준으로 볼 때 친일파 후손과 정부 간 소송은 124건에 이른다.(가처분 제외)

친일재산귀속법에 의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이 9건이다. 행정소송은 92건, 대부분 친일재산의 국가귀속결정 처분을 취소하라거나 친일재산 확인결정 처분을 취소하라는 것들이었다. 민사 소송은 23건,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말소하라거나 부당이득 반환과 관련된 소송이다.

헌법소원 9건 외에 친일파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한 건 93건, 반대로 정부가 원고로 나선 건 22건이다. 친일파 후손들은 주로 친일재산의 국가귀속결정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낸 반면, 정부는 부당이득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냈다. 광복 이후 60년이 지난 상황에서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친일재산으로 파악돼도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매각된 경우가 많았다. 국가귀속해야 할 '친일재산'을 판 대금은 부당이득이니 이를 반환하라는 취지의 소송으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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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전에 가장 많이 참여한 친일행위자는 민병석 후손 측이다. 민병석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고위 관료를, 일제강점기에는 장관과 중추원 부회장 등을 지냈고 한일 병합 조약에 찬성·협조한 '경술국적' 중 1명이다. 민병석 후손 측은 헌법소원 1건, 민사 1건, 행정소송 6건을 냈고 정부는 민병석 후손 측을 상대로 민사소송 1건을 냈다. 고흥겸 후손 측 소송도 9건이다. 고흥겸은 일제 당시 조선귀족으로 백작 작위를 승계받았고 전쟁협력 단체에도 참여했다. 역시 헌법소원 1건에 행정소송 7건을 냈고 정부는 고흥겸 후손 측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소송 1건을 제기했다. 다음으로 많은 건 현재 진행형인 소송의 당사자 이해승 후손 측이다. 손자인 이우영 회장이 제기한 헌법소원 1건과 행정소송 3건, 그리고 정부가 낸 민사소송 2건을 합쳐 6건이다.

이송순 전 친일재산조사위 조사연구관(현 고려대 연구교수)은 "일부라도 선조들의 행위에 대해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약간은 기대했는데 친일 후손들의 98% 이상이 부정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 게 굉장히 씁쓸했다"며 "친일 문제에서 제한적이지만 징벌을 했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재산 환수라는 방식이 유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헌법소원 결과 전부 합헌… 친일파 후손 측 승리도 9건

소송 결과는 어떠했을까. 헌법소원은 전부 합헌이었고 나머지 소송도 대부분 정부가 이겼다.
[마부작침]친일재산
국가승소는 모두 합쳐 114건이다. 승소율 91.9%, 이렇게 보면 압도적인 승리다. 반면 친일파 후손 측의 승리는, 일부 승소 2건을 합쳐도 9건에 불과하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소송, 이해승 재산 관련 소송은 2심대로라면 일부 승소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다.
[마부작침]친일재산
그럼에도 "정의가 온전히 실현됐다"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우선 그들이 찾아간 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친일재산조사위가 환수 결정한 친일재산의 총 면적은 1,306만 9,403㎡인데 친일파 후손 측의 승리로 그들에게 돌려준 땅은 211만 3,337㎡, 전체의 16.2%에 이른다. 이중 대부분은 이해승의 후손 이우영 회장이 받아갔다.

● "극히 일부만 환수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설사 정부가 소송에서 전부 이겨 환수 결정한 친일재산 전체를 가져왔더라도 그게 친일 재산의 극히 일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파 상당수는 친일재산조사위 활동 이전에 이미 재산을 매각해 제3자의 소유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이었다. 친일재산이었다고 확인하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환수는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거다. 부동산 외에 현금 같은 다른 재산은 더더욱 추적이나 확인할 수 없었다. 이준식 전 친일재산조사위 상임위원(현 독립기념관장)은 "해방 이후 바로 했어야 할 일을 60년이 더 지나 했다는 게 안타깝다"면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친일파가 소유한 재산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는데 일부 남아있는 재산만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었다는 게 한계라면 한계였다"고 아쉬워했다.

환수 결정된 친일재산의 83.8%를 국가에 귀속시킨 건 분명한 성과인데도 '미완의 과제'가 된 건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 아직도 '이완용 땅'은 남아 있었다
마부작침'을사오적'은 을사늑약에 찬성했던 '매국노' 5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미칠적'은 을사늑약 체결 2년 뒤인 1907년 체결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찬성한 7명을 이르는 말이다. '경술국적'은 한일 병합 조약에 찬성·협조한 8명이다. 이 '적'들에 공통으로 포함된 인물은 단 1명이다.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매국노라는 데 이견이 없는 그, 이완용이다.

<마부작침>은 2년 전 친일재산조사위의 비공개 보고서를 통해 이완용의 땅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걸 확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위가 파악한 이완용 부동산의 규모는 2,233만 4,954㎡, 옛날 기준으로 676만 평에 이른다. 서울 용산구 전체 크기보다 약간 크고 종로구나 마포구보다는 약간 작은 규모다. 친일재산조사위가 환수한 친일재산 전체 1,300만㎡보다도 이완용의 땅이 1.7배나 크다.

그럼에도 환수할 수 있었던 이완용의 땅은 단 0.05%, 1만 928㎡에 불과했다. 이완용은 갖고 있던 땅을 해방 전 대부분 팔아서 현금으로 바꿨다. 친일재산조사위 활동 즈음엔 후손 명의로 남아 있는 땅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친일재산조사위가 환수한 땅 말고도 남은 땅이 더 있었다.

<마부작침>은 2017년 경기도 용인에 이완용 후손이 자기 명의로 498㎡의 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2년이 지나 2019년 8월에 다시 그 땅의 임야대장을 확인해봤더니 그대로 이완용 후손, 증손자의 명의로 남아 있었다. 2년 전 그대로였다. 이완용의 증손자는 30년 전 캐나다로 이민 간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 재산으로 인정된다면 국가귀속, 환수가 가능한 땅이다. 친일파 후손 명의로 된 땅이 더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 "마지막 1필지까지 추적해 환수하겠다"던 정부의 다짐

광복 70주년인 2015년 10월 26일, 법무부는 '이해승 후손 친일재산 관련 재심 및 민사소송 제기'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재심을 청구하고 민사소송을 내면서 법무부는 "친일재산에 관한 민원을 접수하고 있으며, 국민의 참여 하에 마지막 1필지의 친일재산까지 추적하여 환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음"이라고 자료를 끝맺었다.

2006년 출범한 친일재산조사위는 4년간 활동을 마감하고 2010년 10월 해산했다. 그로부터 10년, 법무부는 조사위가 진행하던 소송을 넘겨받아 관리해왔으나 정부 주도로 친일재산을 추가 조사하거나 환수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조사나 환수를 담당하는 기관이 없기에 더 이상의 진전도 없는 상황이다.

이준식 전 친일재산조사위 상임위원은 "특별법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친일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일은 지금도 할 수 있다"면서 "상설기구를 만들어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단체인 광복회의 정철승 고문변호사는 "독일과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2차대전 때 나치 전범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단죄를 70, 80년 지나도록 하고 있다"면서 "친일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그런 조치는 영원히 끝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 (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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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이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