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태평양 지역 강제 징용 한인 유해, 첫 송환 유력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작성 2019.08.15 21:07 수정 2019.08.15 21: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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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보고 계시는 건 일제시대, 과거 용산역의 모습입니다. 일본은 러일 전쟁 이후 이곳 용산역 주변을 군사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젊은이들을 이곳에서 이런 기차에 태워서 일본이나 일본 식민지에 있던 광산과 군수공장으로 보냈습니다. 1945년 해방 전까지 1백만 명 넘는 조선인이 일본 군함도와 러시아의 사할린, 태평양의 작은 섬들 그리고 호주까지 끌려가야 했습니다. 굶주림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된 일을 반복하다가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금부터는 강제 징용이라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용산역에서 최혜림 앵커가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앵커>

저는 서울 용산역 앞에 나와 있습니다. 방금 스튜디오에서 전해드린 것처럼 이곳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청춘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나야 했던 곳입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서 2년 전 강제 징용 노동자상이 세워 세워졌습니다. 지금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은 아마 오늘(15일) 내린 비를 피하라는 시민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곳 용산역에 동상이 있는 걸 모르시는 분들 참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북적이는 용산역에 종종 와봤지만, 오늘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지친 표정의 동상을 보면서 숙연함도 느꼈습니다.

과거 일제 시대 강제 징용 노동자들은 멀리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외딴 섬, 타라와라는 곳까지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격전지였던 그곳에서 희생된 우리 징용 피해자들이 많은데 최근에 유해 발굴에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의 1구는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올 것 같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임상범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의 작은 섬 타라와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나흘간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5천여 명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요새와 진지 구축에 동원됐던 1천 2백여 명 가운데 대부분은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내몰렸고 128명은 포로로 잡혔습니다.

[美 해병대 영상 내레이션 : 부상을 입고 생포된 일본군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포로는 한국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미 국방부가 타라와에서 진행 중인 유해 발굴 작업에서는 일본인이 아닌 아시아계 유해들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한인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정부는 지난 4월 미 국방부로부터 유해 145구의 유전자 시료를 넘겨받았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최근까지 이 시료들과 유족으로 신고한 184명의 유전자 정보를 대조한 결과 남성 1구의 DNA가 한 유족과 일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과수는 정밀 감식을 위해 지난주 해당 유해의 시료를 추가로 입수했으며 다음 주 안에는 확인 작업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최종 일치 판정이 날 경우 정부는 미국 측에 유해 인도를 요청할 계획인데 이 경우 태평양 지역에서 희생된 한인 징용 피해자가 고국 땅을 밟는 첫 사례가 됩니다.

(영상편집 : 박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