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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태풍의 길 열렸나…태풍 '레끼마' 서해상으로 북상

제9호 태풍 '레끼마'가 북상하고 있다. 8일 현재 타이완 동남동 쪽 먼 해상에서 북상 중인 태풍 '레끼마'는 토요일인 10일에는 중국 남부 푸저우 부근에 상륙한 뒤 11일(일)에는 상하이 부근을 지나 12일(월)에는 다시 서해상으로 진출할 것으로 기상청은 보고 있다. 아직 진로는 유동적이지만 13일(화)에는 칭다오 부근을 지날 것으로 예상된다(아래 그림 참조). 예보처럼 계속해서 서해상으로 북상할 경우 우리나라가 태풍 '레끼마'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안영인 취파 / 제9호 태풍 '레끼마' 예상진로 (자료: 기상청)
태풍 '레끼마'가 실제로 한반도에 직접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지난 6일 부산에 상륙한 뒤 열대저압부로 약해진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와 지난달 20일 진도 부근 해상까지 북상한 뒤 열대저압부로 약해진 제5호 태풍 '다나스'에 이어 올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3번째 태풍이 된다. 특히 태풍 '레끼마'는 태풍 '다나스'나 '프란시스코' 같은 약한 소형 태풍이 아니다. 태풍 '레끼마'는 현재 중심에서는 시속 170km가량의 강풍을 동반한 매우 강한 태풍으로 발달했다. 태풍이 중국 상하이 부근을 지나 서해상으로 진출한 뒤에도 '강도 중급 크기 중형'의 세력을 유지할 것으로 기상청은 예상하고 있다.

● 뒤로 물러서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

예년 같으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초지만 태풍이 잇따라 한반도 부근을 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태풍의 이동 경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북태평양 고기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태풍과 비교하면 크기가 매우 큰 기압계로 태풍은 보통 북태평양 고기압을 확 밀어내거나 가로질러 뚫고 통과하기보다는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게 된다.

만약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주변을 폭넓게 덮고 있으면 태풍은 한반도로 곧바로 북상하고 못하고 북태평양 고기압의 주변을 돌아 중국이나 일본을 향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일본 쪽으로 물러나 있다면 태풍은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한반도 부근으로 북상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반도로 향하는 태풍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8월 7일 상층 5.5km 높이(500헥토파스칼 고도)의 지오포텐셜고도(Geopotential height)를 보면 북태평양 고기압이 일본 쪽으로 물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아래 그림 참조). 보통 500헥토파스칼 고도의 5880 등치선을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로 보고 있는데 북태평양 고기압이 동해와 일본 쪽으로 물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가 이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북상해 부산에 상륙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뒤로 물러서면서 만들어 준 길을 따라 태풍이 북상한 것이다.
안영인 취파 / 2019년 8월 7일 500hPa 일기도 (자료: 기상청)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초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북동지역까지 폭넓게 확장해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지난해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폭넓고 강하게 발달하면서 한반도에는 태풍 대신 기록적인 폭염이 나타났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지난해보다 상대적으로 약하고 뒤로 일찍 물러서면서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기록적인 폭염 대신 태풍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예년 같으면 폭염이 물러가는 8월 하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올해는 8월 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당분간 이어진다면 또 다른 태풍이 한반도 부근으로 북상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은 늘 변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조금 더 확장하면 북상하는 태풍을 중국 쪽으로 조금 더 밀어낼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지금보다 더 물러선다면 태풍이 일본 쪽으로 북상할 가능성이 커진다.

● 후지와라 효과 가능성은?

제9호 태풍 '레끼마'와 함께 꼭 같이 봐야 할 태풍이 있다. 제10호 태풍 '크로사'다. 태풍 '크로사'는 일단 일본으로 북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태풍 '크로사'가 일본으로 북상한 뒤 열도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 열도를 관통해 동해로 북상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 특히 태풍 '레끼마'와 태풍 '크로사'의 상호작용으로 생각지 못했던 이동 경로를 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른바 '후지와라 효과(Fujiwhara effect)'다.
안영인 취파 / 태풍 '레끼마'와 '크로사' 850hPa 바람장 (자료: earth.nullschool.net)
후지와라 효과는 비슷한 크기의 두 태풍이 1,000~1,400km 이내로 가까워질 경우 서로 영향을 미쳐서 이동 속도나 이동 경로가 보통의 태풍과 다르게 비정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후지와라 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이상 경로는 두 태풍이 마주 보고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형태다.

현재 제9호 태풍 '레끼마'와 제10호 태풍 '크로사' 사이의 거리는 1,500km 정도 된다.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보면 현재는 후지와라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태풍 '레끼마'가 상하이나 서해상으로 북상하고 태풍 '크로사'가 일본 열도 쪽으로 북상하면서 두 태풍 사이의 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으로 두 태풍의 상호작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태풍 '크로사'와 태풍 '레끼마'의 상호작용이 두 태풍의 이동 경로와 속도를 예측하는데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가정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지만 '레끼마'는 서해상으로 북상하고, 태풍 '크로사'는 일본을 관통한 뒤 동해상으로 북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직 불확실한 면이 많지만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한 예측 모델은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태풍 '레끼마'는 서해상으로 북상하고, 태풍 '크로사'는 동해상으로 북상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태풍이 한반도 동쪽과 서쪽에서 연이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동안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은 연평균 2.5개다. 태풍이 가장 많이 북상하는 시기는 8월 하순부터 9월 초순이다. 보통 한반도를 덮고 있던 무더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물러가면서 태풍의 길을 열어주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태풍의 길이 예년보다 일찍 열렸을 가능성이 크다. 태풍의 길이 일찍 열리면서 폭염은 지난해보다 덜하겠지만 태풍의 위험은 커지게 된다.

특히 현재 태풍 발생 지역인 북서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30℃ 안팎으로 평년보다 1℃ 정도나 높다. 태풍에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태풍 발생지역 대기 상하층 사이의 바람 방향이나 세기의 차이[윈드시어, wind shear]도 작아 강한 태풍이 만들어지기 좋은 조건이다.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아 한반도 주변에서는 태풍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올해는 강한 태풍에 대한 대비도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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