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의 교훈

이홍천|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SBS 뉴스

작성 2019.08.08 11:01 수정 2019.08.08 19: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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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술관에서 전시가 거부당한 작품만을 모아서 전시하는 것은 가능할까. 말하자면 불온 미술이나 서적들을 한곳에 모아서 전시하는 것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이런 전시 기획이 허용되는지 여부는 일본 사회가 표현의 자유에 얼마나 관용적인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런 기획이 지난 1일부터 아이치현에서 열리는 국제 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시도됐다. 전시명은 '표현의 부자유·그 후'.

방송에 전시회가 소개되고 참관자들의 인터뷰가 긍정적으로 소개될 때만 해도 일본 사회가 자신들에게 거북스러운 내용일지라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일본 각지의 미술관이나 공공 문화시설에서 철거되거나 전시가 거부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전시품 중에는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한 '평화의 소녀상'도 있지만,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지지 않는다고 명시한 헌법 9조를 소재로 한 하이쿠(일본의 정형시), 쇼와 일왕의 사진을 태우고 발로 밟는 내용의 동영상, 그리고 미군기지와 원전 문제, 인종차별 문제,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 등이 담긴 다양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평화의 소녀상이 부각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쇼와 일왕을 모티브로 한 작품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획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일본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최근의 한일 갈등으로 이런 분위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시회는 그래서 지자체나 정부에 의한 조직적 검열이나 자체 검열로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작품들을 한데 모아서 이들 작품이 왜 거부당했는지를 설명과 함께 전시해 놓고 있다.

전시회 홈페이지에는 2015년에 제작된 '표현의 부자유전'이라는 타이틀이 게재되어 있는데 타이틀 아래쪽에 '지워진 것들'이라는 부제가 포함되어 있다.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일본 사회가 보고 싶지 않은 것, 듣고 싶지 않은 내용들 투성이다. 다시 말해 일본 사회가 지우고 싶은 것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명에 '그 후'가 포함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표현의 부자유는 2015년 이후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번 전시회가 한국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한일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전시회가 3일 만에 취소되었고, 그 이유 중에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2012년에도 도쿄도미술관에서 미니어처가 전시되었다가 미술관 운영 방침에 어긋난다며 작가의 허락도 없이 철거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도 엄청난 반발을 몰고 왔다. 전시회가 방송으로 소개되자 테러를 예고하는 협박성 전화가 400통 이상 걸려왔고 항의성 메일도 1,000건 넘게 도착했다고 한다. 항의 전화는 예술제 주최 측에는 물론이고 아이치현청과 협찬 기업에도 쇄도했다.

트리엔날레 주최 측인 아이치현은 안전한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전시회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오무라 지사는 3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시회를 중지하지 않으면 가솔린 통을 들고 찾아가겠다는 팩스가 왔다'고 전시 중지 이유를 밝혔다. 팩스 내용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반인륜적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겠다는 비열한 경고였다.

이런 협박은 지난 7월 발생한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교토 애니메이션은 일본을 대표하는 인기 TV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인데, 당시 이 회사 주변에 설치된 CCTV 영상에 휴대용 가솔린 통을 이용해서 스튜디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방화범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록돼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보다 정제된 방식이긴 하지만, 전시회를 중단하라는 압박은 정관계 인사들에 의해서도 가해졌다. 2일 전시장을 찾은 고무라 나고야 시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다. 세금을 사용해서 해야 될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행정이 소녀상 설치를 인정하는 것은 위안부에 대한 한국 측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며 전시회 중단을 요구했다. 스가 관방장관도 전시회를 중지하지 않으면 보조금 지급에 대해서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압박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6일자 사설에서 '표현의 부자유전 중지, 용서할 수 없는 폭거'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면서 전시회 중지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했다. 이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검열을 부정하고 있는 일본 헌법 21조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테러를 암시하며 표현의 자유를 막으려는 행위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

'표현의 부자유전'을 둘러싼 이번 사태는 지금의 일본 사회가 '표현의 부자유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편한 진실을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기억하지도 말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과거가 지워지고 역사가 숨겨지지는 않는다.

테러를 암시하는 협박에 전시회가 중단된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표현의 부자유전' 논란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 다만 이를 계기로 많은 일본인들이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을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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