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아직도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라고 말하는 분들께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SBS 뉴스

작성 2019.08.07 11:01 수정 2019.08.07 14:3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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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의 크기, 문을 열고 자리에 앉기까지의 속도, 반갑게 인사하는 목소리 톤과 얼굴 표정,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관찰되는 생각의 흐름까지. 10일 전의 A 씨와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의 A 씨 모습에서는 그 누구도 두 달 전 병원에 처음 찾아왔을 때의 그를 상상해낼 수 없을 것이다.

늘어난 업무량 속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석 달 전, A 씨는 이전에 경험한 적 없을 정도로 우울해졌고, 밤새 최악의 시나리오만 상상하며 뜬눈으로 지새웠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쉬기 힘든 느낌에 내과에 들러 봤지만 별다른 이상 소견은 없었다.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쓸모없게만 느껴졌고, 모두로부터 비난받는 느낌에 결국 퇴직 후 마치 시체처럼 누워 지냈다.

우울증 치료 후 두 달, 우울감은 상당히 호전되었으나 지속되는 의욕 저하를 타깃으로 지난번 진료 시 약을 추가하였고, 그는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신기하게 의욕이 살아나 운동을 시작했다는 간증을 듣고 있는 이때가 의사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다. 모든 치료가 성공들로 차 있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잘하고 있어!'라고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은 내게 매우 소중하다.

우울증은 '휘어진 터널' 같은 질환이다. 분명히 끝이 있지만 직전까지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환자뿐 아니라 치료자에게도 길이 잘 안 보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성공의 경험들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믿고 환자분을 끌고 앞으로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짧은 환희의 순간은 그의 다음 말로 인해 바로 깨졌다.

"부모님께서 이제 약을 그만 먹고 빨리 일을 시작하라 하세요. 의지가 약하고 게으른 것이지, 무슨 우울증이냐고요." 자주 듣는 상황이다. 어쩌면 저렇게 다들 똑같이 말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 오해가 있는데,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라는 말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1915년 작 '변신'에는 이런 상황이 나온다. 가족 부양을 위해 몇 년째 열심히 일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몸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출근 시간을 놓친 것에 대해 걱정한다. 그리고 결근 사유를 알아보러 집까지 찾아온 지배인은 '몸이 좀 불편한 것쯤은 열정으로 극복해야 된다'라는 말을 남긴다.

아, 오늘날의 꼰대는 저 때부터 있었구나. 그나마 그 지배인은 변신한 주인공을 보고선 그냥 돌아갔지, 우리나라가 배경이었다면 정말 변신한 것이라는 진단서를 받아 갔을 것이다. 아니, 진단서를 내도 분명 출근하게 되었을 그 스토리를 쓰기 위해 카프카의 상상력이 더 동원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소외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먼 나라의 100년 전 이야기는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현실인 것일까.

정신질환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질환이라는 것은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입증이 되었다. 우울증에서는 뇌의 전전두엽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것이 뇌 영상 검사를 통해 확인되며,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호르몬 수치 저하 또한 확인된다.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가 부족하여 발생하는 당뇨병과 다를 것이 없다. 우울증과 당뇨병 두 질환 모두 그 변화가 직접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며, 잘 치료·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나 방치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가 생긴 위치와 그로 인한 증상만 다를 뿐. 발병 장기를 내가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뇌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만 이토록 차별을 받는 것일까.

현대 과학, 그리고 그 과학 기술들을 응용한 현대 의학은 한 개인이 그 원리를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발전해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아예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정신질환들에 대해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밝혀진 지금에도 '우울증은 마음먹기 달린 거야'라고 말한다면 무지를 드러내고 있기에 부끄러울 일이고, 그 무지가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있기에 사죄할 일이다.

잘 모를 땐, 그냥 참견하지 마시라. 굳게 마음먹고 그대로 행동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마시라. 그게 안 되니까 병인 것이다. 약 먹지 말고 좋은 음식 먹고 운동하면 저절로 회복될 것이라는 책임지지 못할 말들, 함부로 하지 마시라. 의지로 혈당과 혈압을 낮출 수 있고, 고열을 내릴 수 있으며, 부러진 뼈를 붙게 하는 분이시라면 자랑스럽게 말씀하시어도 된다.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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