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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6411번 버스 정신을 아시나요?…노회찬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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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01 : 6411번 버스 정신을 아시나요?...<노회찬의 진심>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이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벌써 1년입니다. 2018년 7월 23일, 많은 이들에게 헛헛함과 먹먹함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 그. (저에게는) 아이돌 같던 정치인이자, '말의 성찬'에 그치는 자들과는 달리 진정 낮은 데로 임하고자 했던 그.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그, 노회찬.

맨 첫머리 읽은 글은 2012년 정의당의 전신인 진보정의당을 창당하고 당 대표를 수락하면서 했던 연설, 고인이 떠나고 더 유명해진 그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의 한 대목입니다. 이 연설이 실린 책, 17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 뒤 200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고 노회찬 의원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진보정의당, 정의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올린 난중일기, 노회찬의 공감로그, 페이스북 글 등에다가 그야말로 촌철살인 노회찬 어론까지 엮은 유고산문집 <노회찬의 진심>이 오늘 함께 읽는 책입니다.

"서울구치소, 안양교도소, 청주교도소를 전전하던 시절도 어려웠다. 우리의 만남은 '공권력에 의해'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를 비난하며 그와 결별할 것을 충고하는 민간인들도 있었다. 물론 그와의 이별을 시도해본 적은 없었다. 그와 헤어질 것인지 여부를 고민해본 적도 지난 30년간 한 번도 없었다. 그랬던 그와 두 달 전 헤어졌다. 지난 3월 8일 인천공항에서 파리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박 보좌관에게 라이터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의원실의 재떨이를 치우라고."

"안나 까레니나를 누가 썼냐고 물었는데 자기가 안 썼다고 대답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KGB가 어떻게 활동하길래 이런 답변이 다 나오나?"
... 며칠 후 KGB 책임자가 밝은 표정으로 흐루시초프 앞에 섰다.
"서기장 동무, 지난번 말씀하신 이후 국방과학연구소의 KGB 책임자가 그 젊은 과학자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장시간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 젊은 과학자는 자신이 안나 까레니나를 썼다는 것을 자백했습니다."
... 이 무더운 여름 우리나라의 KGB는 무엇을 하고 있나?


저 같은 헛똑똑이가 볼 때는 노회찬 의원은 좀 답답한 구석도 있는 듯했고 왜 그런 마지막을 택했는지는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유머 한 자락을 놓지 않는 그 성품, 대단히 매력적이었죠. 우리에겐 노회찬이, 특히 그의 재치가 어려울 때 더욱 필요합니다. 저는 저런 스타일의 유머가 참 좋더라고요.

"아내가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선언을 한 날, 돌아오면서 정색하며 내게 말했다. '이제부터 당신이 집안일을 해야 해. 그동안 내가 해온 만큼만 해줘요.'... 어제 들어오며 집 앞 가게에 들러 짜파게티와 너구리 다섯 개씩 샀다. 주인아주머니가 배시시 웃는다. 짜파구리 해 드시게요? 인터넷에서 본 짜파구리 레시피를 되뇌며 집으로 향한다."

짜파구리 재료를 산 날은 노회찬 의원의 부인 김지선 씨가 2013년 4월 치러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날입니다. 여기는 원래 노회찬의 선거구였는데 삼성으로부터 이른바 떡값을 받은 검사들 이름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삼성 X파일 판결로 노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겁니다. 이 선거에서 당선된 건 안철수 전 의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짜파구리 재료를 샀다며 일기를 쓴 겁니다.

사실 책에 주로 실린 건 노 의원의 의정활동 과정에 대한 일기이자 일지입니다. 2004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10명의 의원을 한꺼번에 배출하고 노 의원은 김종필 전 의원을 제치고 비례대표 8번으로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클리셰 같으나 영광은 짧고 고난은 길었습니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말고!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노회찬 서거 1주기를 맞아 "노회찬 정신이 곧 6411번 버스 정신"이라며 "우리 정치가 한 번도 제대로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거명하고 권력 밖으로 밀려난 시민들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데려오는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낡은 정치의 불판을 갈자"며 한참 노회찬이 설득력 있게 주장했던 그 '오래된 미래'가 실현되는 날이 언제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쳐놨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의 손이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사회평론아카데미와 노회찬재단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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