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국정원 수사팀과 환경부 수사팀…'좌천 인사'의 평행이론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9.08.04 09:52 수정 2019.08.04 12: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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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월 10일,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은 대구고검 검사 발령을 받았다. 같은 날, 부팀장이었던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은 대전고검 검사 발령을 받았다. 명백한 좌천 인사였다. 좌천 이유는 분명했다. 청와대가 강하게 반발했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밀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정권의 정통성과 관련해 청와대가 민감하게 생각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의견을 굽히지 않은 점,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직원 체포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공소장 변경을 강행한 점, 국정감사장에서 검찰 윗선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것을 폭로한 점 등이 이유였던 것으로 해석됐다. 윤석열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수사 결론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검사들에게 정권이 인사로 보복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19년 7월 31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의 2인자였던 권순철 차장검사는 서울고검 검사 발령을 받았다. 이미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이 사의를 밝힌 이후였다. 같은 날,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실무 책임자였던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안동지청장 발령을 받았다. 명백한 좌천 인사였다. 좌천 이유는 분명했다. 청와대가 강하게 반발했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밀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비교 사례로 들며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강행한 점, 대검찰청의 여러 차례 보완 수사 지시에도 불구하고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 대한 기소 의견을 굽히지 않은 점, 환경부 블랙리스트뿐 아니라 산업부 블랙리스트 등 이른바 김태우 전 수사관 관련 사건 수사를 계속해서 이어간 점 등이 이유였던 것으로 해석됐다. 한찬식 검사장-권순철 차장검사-주진우 부장검사, 이 3명은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
경찰통제 미흡 검찰 개혁 역행● 국정원 수사팀-환경부 수사팀…좌천 인사의 평행이론

하지만, 이상하게도 2014년 국정원 수사팀에 대한 좌천 인사 때와는 달리 2019년 환경부 수사팀 검사들에 대한 인사와 관련해서는 '좌천 인사'라는 분석을 극구 부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아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던 부당한 행동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반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어떤 관점에서 검토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정원 수사팀은 좌천 발령을 받고도 대부분 사표를 내지 않고 버텼지만,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팀은 좌천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부당한 좌천 인사에도 불구하고 공판 과정에서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직하지 않고 버텼던 윤석열 검사의 처신은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검사의 행동이 훌륭했다고 해서 사표를 제출한 환경부 수사팀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직장 내에서 갑질을 당했지만 참고 버티면서 내부에서 용기 있게 갑질을 폭로하고 부당한 제도를 바로잡은 사람이 훌륭하다고 해서, 갑질을 당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숨죽이며 지내는 피해자가 부당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좌천 인사의 당사자가 참고 버티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자 자격이 모자라다고 부를 수는 없다.

고검 검사든 소규모 지청 검사든 국민 입장에서는 중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중요한 공직인데, 이를 좌천 인사로 여기는 것은 오만하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대로라면 국정원 수사팀에 대한 좌천 인사 역시 비판할 수 없다. 2014년에 윤석열 검사가 발령받은 대구고검 보직 역시 국민 입장에서는 중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중요한 공직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직이 국민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당연하고 귀천 역시 있을 수 없지만, 내부 경쟁이 치열한 조직이라면 어디에나 요직과 한직의 구분이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고검 검사 발령을 좌천으로 여기는 것이 오만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팀 일부 검사가 과거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점을 좌천 이유로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요직에 배치된 검사 중에도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다. 나아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부당한 행위에 개입했다는 근거가 없는 한, 직업 공무원인 검사가 인사 발령을 받고 과거 정부의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비난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좌천 인사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핵심 피의자인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기 때문에 실패한 수사고, 따라서 이번 인사는 수사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단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수사로 규정하는 주장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건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이번 인사가 수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란 주장은 궁색해진다. 강원랜드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강원랜드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권성동 의원에 대해 검찰 수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1심 재판에서 무죄까지 선고됐다. 그러나 강원랜드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양부남 검사는 좌천이 되기는커녕 이번 인사에서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으니 강원랜드 수사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강원랜드의 경우에만 비춰봐도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팀이 인사 책임을 질만 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수사팀의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청와대 또는 여권이 원하는 수사를 했고, 다른 한쪽은 청와대와 여권이 강하게 반발하는 수사를 했다는 것뿐이다. (※ 사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기소한 지 3달이 넘었지만 공판준비기일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청와대● 검찰총장은 의견만…인사권자는 청와대

하지만, 좌천 인사와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 검찰총장에게는 인사권이 없다. 검찰청법 34조에는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검찰총장은 인사와 관련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뿐 제청 권한도 임명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신과 가까운 검사들을 요직에 배치하겠다는 의견을 상대적으로 많이 반영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윤 총장에게 청와대를 수사한 검사들을 한직으로 좌천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스스로 부당한 좌천을 당했던 경험이 있는 윤석열 총장이 좌천 인사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작다. 인사권이 없는 검찰총장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청와대의 뜻을 거부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정면으로 겨냥했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팀에 대한 좌천 인사는 검찰총장이 아니라 명실공히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청와대의 의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법적으로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니 검사들에 대한 좌천 인사를 문제 삼기 어렵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인사권에는 폭넓은 재량이 허용되기 때문에 청와대를 겨냥했던 검사들을 좌천시킨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윤석열 검사가 좌천당했던 2014년까지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마 전 중대한 사정 변경이 생겼다. 바로 안태근 사건이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은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 아니다. 물론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 본인의 폭로뿐 아니라 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여러 사람의 진술을 종합해봐도 안태근 전 검찰국장이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안태근 전 국장은 성추행 혐의 처벌을 피했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이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혐의는 직권남용, 즉, 서지현 검사에 대한 보복성 좌천 인사 혐의였다.
안태근 전 검사장● 안태근 사건과 적폐청산 이후의 새 기준

1심과 2심 재판부는 보복 인사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과 보복 인사를 지시받은 적이 없다는 인사 담당 실무자 A 검사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안태근 전 국장이 직권을 남용해 서지현 검사에게 보복성 좌천 인사를 한 것이 사실로 보인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견디기 힘든 좌천 인사를 냄으로써 서지현 검사가 사표를 내도록 유도해 조직 내에서 자신에 대한 추문이 번지는 것을 막고자 했던 범행 동기가 있었고, 서지현 검사의 통영지청 발령은 부치지청(주: 부장검사는 있지만 차장검사는 없는 소규모 지청)에 근무한 경력검사(주: 3개 검찰청 이상 근무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검사)를 다음 인사 때 우대한다는 인사원칙을 깬 이례적인 것이었으며, 서 검사의 인사 배치가 마지막 순간에 수정됐는데 이는 당시 검찰국장으로서 인사를 담당했던 안태근의 지시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 등이 1심·2심 재판부가 밝힌 유죄 근거였다. 아직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안태근 전 국장에 대한 1심과 2심 판결은 인사권자가 법적인 권한을 행사해 검사를 좌천시킨 경우에도, 그 동기가 부당하고 인사 원칙에 위배되는 권한 행사였다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번 검찰 인사 이후 60명 가까운 검사가 검찰을 떠났다. 평상시의 2배가 넘는 인원이다. 갑작스러운 업무 공백 때문에 법무부는 인사 발표 이틀 뒤 대규모 추가 인사를 발표해야 했다. 물론 사표를 낸 검사 모두가 좌천 인사를 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중에는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좌천당한 검사들도 분명히 있다. 예전의 검사들이었다면 청와대가 반발하는 수사를 한 뒤에 좌천을 당하는 것 정도는 부당하지만 감내해야 한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직자의 권한 행사, 특히 최고 권력인 청와대의 권한 행사에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적폐청산의 시대, 직권남용의 시대 이후의 인사권 행사 다른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서지현 검사의 사표 제출을 유도하려고 좌천 발령했다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혐의가 유죄라면, 실제로 위협이 됐던 수사를 한 검사들에게 사표를 받는 데 성공한 좌천 발령의 최종 권한 행사자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적 잣대를 떠나서, 윤석열 검사처럼 살아 있는 권력을 정면으로 수사한 검사를 또다시 좌천시키는 것에 대해, 자신이 지지하는 살아 있는 권력은 항상 선하다고 믿는 사람들 외에는, 누구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