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北 '조종방사포' 미스터리 "이것은 미사일인가, 방사포인가!"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8.04 09:42 수정 2019.08.04 09:4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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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北 조종방사포 미스터리 "이것은 미사일인가, 방사포인가!"
"지금까지 이런 발사체는 없었다. 이것은 미사일인가, 방사포인가!"

1천 6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에서 등장한 대사를 살짝 비틀면 북한이 지난달 31일과 지난 2일 쐈다는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을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북한이 쏜 발사체를 두고 한미 군 당국은 신속하게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는데, 북한은 다음 날 신형 방사포라며 사진의 모자이크를 조금씩 벗겨내고 있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으로 봐서는 영락없는 다연장로켓(MLRS · 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즉 북한식 명칭으로는 '방사포'가 맞습니다. 하지만 한미 군 당국이 밝힌 비행속도와 비행방식은 기존 방사포보다는 미사일에 가깝습니다. 지난 5월 2차례, 그리고 지난달 25일 북한이 쏜 북한판 이스칸데르 즉 KN-23 단거리 탄도 미사일처럼 속도가 빨랐고 하강하다가 재상승하는 풀-업(pull-up) 기동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종합하면 북한 발사체는 방사포의 모습을 한 채 미사일처럼 날아다녔습니다. 방사포든 미사일이든 괴이한 발사체임에 분명합니다. 사실, 이런 방사포는 가까운 중국에서 이미 개발됐습니다. 사천항공우주산업공사 SCAIC(The Sichuan Aerospace Industry Corporation)의 A-300이라는 방사포입니다. 비행방식은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똑같습니다. 속도는 미사일보다 좀 느립니다.

북한이 A-300 기술을 카피해서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를 개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한발 더 나아가 방사포의 속도를 미사일 급으로 높였습니다.

● 이스칸데르처럼 풀-업(pull-up) 기동하는 방사포

대단히 전문적인 미사일 공학 용어가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풀-업(pull-up)입니다. 항공기 조종사가 조종간을 힘껏 당기면(pull) 항공기의 기수는 급격히 상승(up)합니다. 즉, 미사일의 풀-업은 동체가 하강하다가 갑자기 치솟는 비행을 말합니다.

미사일은 발사되면 치솟다가 최고 정점을 찍은 뒤에는 하염없이 낙하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풀-업 기동 기능이 장착되면 떨어지다가 풀-업 즉 재상승한 뒤 최종 낙하합니다. 보통 미사일은 상승-하강으로 끝나는데 반해, 풀-업 미사일은 상승-하강-재상승-최종하강의 비행 패턴을 보이는 겁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단거리 탄도 미사일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달 31일과 지난 2일 쏜 발사체에서도 풀-업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미 군 당국이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보고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고 속단한 근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풀-업 기동은 미사일의 전유 기술이 아닙니다. 중국 SCAIC의 A-300 대구경 방사포도 뚜렷하게 풀-업 기동을 합니다. SCAIC가 공개한 A-300 동영상에는 보란 듯이 풀-업 궤적을 그려놓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방사포를 비롯한 다양한 군사기술을 북한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SCAIC는 중국 방사포의 메카와 같은 기업입니다. 그리고 북한 방사포의 화수분입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책임분석관은 "북한의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는 회피기동 성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수출형 A-300과 비슷한 비행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모종의 경로를 통해 중국의 풀-업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300mm KN-09 방사포와 이번에 발사한 신형 대구경 방사포(신종우 분석관 비교)● 방사포 같지 않은 빠른 속도의 비밀

한미 군 당국은 지난 2일 북한 발사체의 최고속도를 마하 6.9라고 밝혔습니다. 단거리 미사일의 비행속도입니다. 방사포는 이렇게 빠르지 않습니다. A-300의 최고속도도 마하 4.5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방사포는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최고속도는 마하 5 안팎입니다.

한미 군 당국이 어제 발사체를 미사일이라고 단정한 데도 바로 이 속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마하 6.9면 방사포로는 엄두도 못 낼 속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공개한 사진 속 무기체계의 모습은 미사일이 아니라 전형적인 방사포입니다. 무슨 수로 방사포의 속도를 높였을까요?

북한의 KN-09 신형 방사포와 중국의 A-300 방사포의 구경은 300mm입니다.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의 구경은 400mm까지 확장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종우 분석관이 300mm KN-09 방사포와 대구경조정방사포의 사진을 같은 비율로 비교해봤는데 대구경조정방사포가 확연히 두껍고 길어 보입니다.

북한이 더 크고 강력한 1, 2단 엔진을 개발해 장착하고 탄두 중량과 디자인도 새롭게 조정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사일처럼 빠르고 회피기동을 하면서도 방사포처럼 다량의 포탄을 퍼붓는, '방사포도 아니고 미사일도 아닌' 또는 '방사포이기도 하고 미사일이기도 한' 신형 무기체계가 탄생한 것 같습니다.

지난 5월에는 북한이 분명히 이스칸데르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서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는데도 우리 정부는 '탄도 미사일'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불편했던 것인지, 불상의 발사체, 미상의 발사체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종류이긴 해도 방사포를 쐈는데 한미는 유례없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탄도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북한이 사진을 공개하자 안절부절입니다. 전자는 알면서도 모른 척, 후자는 모르면서도 아는 척했다가 망신당한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