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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목동 사고, 선진시설에서 일어난 후진국형 인재"

전문가들 "목동 사고, 선진시설에서 일어난 후진국형 인재"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배수시설 공사장 수로에 빗물이 대량 유입되면서 작업자 3명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 방재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31일 오전 8시 24분쯤 서울 양천구 목동의 빗물 저류시설 수로의 유지관리 수직구 인근에서 작업자 3명이 고립됐다가 모두 숨졌다.

피해자들은 시설 일상 점검을 위해 지하 40m 깊이 수로에 들어갔다가 폭우로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살에 휩쓸린 것으로 파악됐다.

폭우로 인해 수직구의 수문 2개가 열리면서 터널 안으로 약 6만t의 물이 쏟아져 내렸고 수심은 4m 안팎으로 급상승한 것으로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추정했다.

이들 수문은 하수관로 수위의 50%와 60%가 차오르면 자동개방되도록 설정된 것으로 조사됐다.

폭우가 내리며 수문 개방이 예고됐지만, 작업자들은 미처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수로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방재학과 교수들은 공사장 내 수문 개방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만큼 안전관리에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작업자들이 사고를 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목동 사고는 방재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이 보더라도 명백한 인재"라며 "조그만 실수나 태만이 반복되고 축적돼 발생한 피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작업자가 시설 안전성을 확인하러 내부에 들어갔다면, 들어간 사람의 안전은 외부에 있는 관리자들이 확보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며 "지금까지 수문 개방으로 인한 사고가 없었다고 해서 방심한 것이 인명 피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고로 재확인한 방재시스템의 허점은 기술의 선진화·고도화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창영 한양대 방재안전공학과 교수는 "기술이 과학화·고도화될수록 예기치 못한 각종 재난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비할 재난관리 철학이 부재하다 보니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재난 쪽으로는 심한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며 "경제 강국이라고 해서 안전한 국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손원배 경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는 절대로 시스템이나 기술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제·운영하는 방식 및 태도의 문제"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사고가 발생한 시설을 포함한 각종 건설기술은 우리나라를 따라갈 국가가 얼마 없을 정도로 발달해 있다"며 "그런데도 여전히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목동 사고는 "선진적인 시설에서 발생한 후진국형 인재"로 요약할 수 있다.

손 교수는 이어 "자동화 시스템과 매뉴얼은 전산화돼 컴퓨터 안에 들어 있지만, 현장에서 작업하는 작업자들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자동화 기술이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 보니 시스템을 적용하는 주체인 사람들이 안전문제에 소홀해졌다"고 설명했다.

'위험의 외주화'로 표현되는 하청 구조 역시 재난관리의 허술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 교수는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의 문제는 안전구조의 틀을 저해하는 분명한 요인"이라며 "이번 사고의 경우 협력사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하청·재하청 구조로 인해 구(區)와 시행사, 작업자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만약 직원의 안전관리 책임이 명확한 상태에서 현장에 안전요원이 따로 배치되고 내부 작업자가 로프 등을 착용하고 수로에 진입했다면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다른 부분은 몰라도 안전시스템 유지는 직접 고용을 통해 달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창영 교수는 '위험의 외주화'를 대체할 '위험의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건설 현장에서 많이 나타나는 수직적인 하청구조는 재난관리의 책임을 분산하는 문제가 있다"며 "위험한 작업일수록 안전관리를 직고용된 전문적인 인력이 도맡아 하도록 책임과 권한을 주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단체인 '비정규직 이제그만 1천100만 공동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위험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것이 이번 사고의 주된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폭우가 내리고 수문이 자동으로 열릴 수 있는데도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시설을 점검하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려보냈다"며 "현장에 내려간 비정규직들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튜브 등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현장의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가"라며 "협력업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면서 자기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보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비정규직 현실이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죽인 것"이라고 밝혔다.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준비위원회'도 이번 사고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고(故)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도 하청이어서, 안전하지 않은 설비에서 작업하다 발생한 일"이라며 "외주화·하청화된 위험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지만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됐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는 아직 노동자들에게 보장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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