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공정하지도 못하면서, 노력하라고 해서 미안해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SBS 뉴스

작성 2019.08.02 11:23 수정 2019.08.02 20: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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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채용 비리'라는 단어 앞에 목소리를 높인 두 국회의원이 있었습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딸아이에게 '파견 계약직'을 권하고 청탁하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있을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청소년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조작은 명백한 취업 사기이자 채용 비리입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 위해 문자 보낸 팬들을 기만하고 큰 상처를 준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 두 사람 말 모두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요. 각기 다른 느낌으로 말입니다. 한 명은 자녀에 대한 부정 채용 청탁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눈물을 보였고, 한 명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 과정'에 대한 시민의 공분입니다.

김성태 의원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딸에 대한 부성애를 강조하며 채용 비리 의혹을 필사적으로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말은 해명으로는 적절치 않아 보였습니다.

그분은 많은 취준생이 왜 '파견 계약직'으로라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말도 안 되게 좁아진 정규직 채용 '바늘구멍'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한발이라도 떼어 놓아야 정규직 전환이 되든 이직을 하든, 직업인으로 다음 단계를 그나마 모색이라도 해볼 수 있는 청년들의 사정을 말이지요. 안타깝지만 이제는 파견 계약직이 하나의 '입구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차선이나 차차선인 셈이죠.

그런 현실 속에서 파견 계약직은 '청탁하고 권할 정도 수준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담아 자신을 필사적으로 방어하려 한 그분은, 그것이 불러온 더 큰 공분을 예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파견 계약직으로 일하는 청년들, 또는 채용 현장에서 파견 계약직 입사를 위해서 면접을 보고 있는 청년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그들의 부모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부모로서 권할만한 일자리도 아닌 그 고용 형태에서 일하는 내 자녀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됐을까요. 자기 자신의 의혹을 방어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는지 알고 계실까요.

마음에 대못이 박힌 사람들은 또 있습니다. 하태경 의원이 말한 '그 오디션 프로그램'의 팬들입니다. 총 투표수에 자꾸만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현상에서 시작한 이 논란에 대해, 제작진은 반올림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사과문으로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하 의원은 "득표율에 소수점 둘째 자리가 0과 5 밖에 없다는 것 자체에서 단순히 반올림 실수는 아니다. 이는 로또 두 번 연속 당첨보다 낮은 확률이다"라며 반박했습니다.

이 과정을 보며 저 역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투표한 연습생이 탈락해서만은 아닙니다. 상담가라는 직업을 통해 아이돌 연습생을 상담한 적도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절박함이나 두려움 앞에서 언제나 다독이며 하던 말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우리 노력의 결과가 언제 꽃 필지는 우리가 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했다고 착각하지만, 생에서 언젠가는 각기 다른 형태로 보상받을 것을 의심치 않았으면 한다"라는 말이었지요.

하지만 그 간절했던 아이들에게 가장 큰 동아줄이었을 수도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조차 공정하지 않다는 의혹이 불거진 지금, 제 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걸까 자괴감이 듭니다. 데뷔가 확정된 아이들은 축복받지 못하고 떨어진 아이들은 좌절하는, 누구도 웃을 수 없는 레이스는 정작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어른인 상담가가 따스한 말로 달래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고작'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에 다들 왜 이렇게 난리냐, 다들 한가하냐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 한 네티즌이 남긴 '사이다 댓글'이 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고작 오디션 하나에 난리가 아니라, 고작 오디션 하나조차도 공정하지 못한 사회라서 문제인 겁니다."

지난 7년 상담 일을 하며 수많은 수험생과 취준생을 만나고 때로는 연습생도 만났습니다. 그들이 들어가려는 문은 언제나 좁았기에 상처가 가득한 친구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지요. 언제나 저는 그들을 위로하고, 또 용기를 불어넣고자 애쓰곤 했습니다. 그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래서 오늘은 지면을 빌려, 위로나 용기보다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문을 말도 안 되게 좁게 만들어 놓고, 너희가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해놓고, 심지어 그 문조차도 공정하지 않은 사회라서 미안하다고. 그 불공정에 맞서 막아내지 못한 힘없는 어른이라서 미안하다고. 정작 그 불공정을 만들어낸 어른들은 절대 사과하지 않을 테니, 이런 세상을 막아내지 못한 다른 어른들의 입으로라도 사과하고 싶다고. 공정이라는 기본조차도 담보하지 못한 세상에서, 너희에게 노력을 말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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