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北 단거리 미사일에 美 단발 제재…'팃포탯' 전략

손석민 기자 hermes@sbs.co.kr

작성 2019.07.30 14:39 수정 2019.08.02 16: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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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외교적 분쟁과 관련해 쓰는 표현 가운데 '팃포탯(Tit for Tat)'이란 게 있습니다. 보복, 앙갚음을 뜻하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도 옮길 수 있겠네요. 상대에게 지고는 못 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정(性情)을 잘 반영하는 단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분노를 거둔 지가 꽤 됐습니다. 2017년 화염과 분노 이후엔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까지 3차례 만남을 거치며 자타가 공인하는 아주 좋은 사이가 됐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의 대응이 살짝 묘해졌습니다.

워싱턴 시간 29일(한국시간 30일) 미 재무부가 1장짜리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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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베트남에 기반을 둔 대량살상무기 기관의 대표를 제재한다' 인데요. 내용을 보면 북한인 김수일을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에 올린다는 겁니다. 김수일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도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김수일은 1985년생으로 올해 34살, 북한 노동당 군수공업부 소속으로 2016년 베트남 호치민에 파견됩니다. 여기서 최근까지 북한산 무연탄과 티타늄 광석을 내다팔고, 외국의 원자재를 사들여 북한에 넘겼다고 재무부는 적시했습니다. 북한 정부 소속 해외 무역 일꾼인 셈이죠.
시걸 멘델커 미국 재무부 차관그런데 재무부는 이런 활동이 북한 정권을 위한 외화벌이와 유엔 안보리가 금지한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지원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돈줄을 틀어쥔다고 해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맨델커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북한의 핵과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를 회피하려는 사람을 계속 제재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인 및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게 됩니다. 제재 대상이 기업이라면 미국 시장을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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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사실관계를 정리해봤는데, 이게 왜 처음에 인용한 '팃포탯'과 연관되는지 시점과 배경, 맥락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발표 시점입니다. 지난달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이후 한 달, 그리고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부터는 닷새째 되는 날입니다. 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트집 잡아 차일피일입니다. 대신 '여기 봐라' 식으로 지난 25일 쏜 게 단거리 미사일입니다. 북한은 그러면서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위협한 거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짢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미국 언론과 의회는 "미국에 대한 도발이다" "추가 제재에 나서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재무부가 북한 무역일꾼을 제재 대상에 올린 겁니다.

제재 결정에는 백악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내지는 묵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통상 재무부는 제재 발표 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조율을 거칩니다. 특히 대북 제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챙기죠.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3월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도로 재무부가 북한의 사치품 수입을 도운 혐의로 중국 기업 2곳을 제재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날 트위터로 제재를 취소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일로 혼쭐이 빠진 볼턴과 재무부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북한인에 대한 직접 제재를 허가 받지 않았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재무부, 7개월 만에 북한인 독자 제재그런데 미국은 이번에 북한의 속을 긁으면서 한편으로는 나름 배려한 흔적을 곳곳에 남겼습니다. 제목부터가 북한에 대한 제재라는 말이 없고요, 여러 건을 묶거나 북한 정부를 포함시키지 않고 무역 일꾼 1명만 족집게처럼 뽑아 제재 대상에 올렸습니다. 보도자료 주체도 평소라면 므누신 재무장관일 텐데 이번에는 차관으로 낮췄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론 올해 베트남에서 벌인 불법 수출입 활동까지 다 파악하고 있다고 했고, 이 돈이 북한 정권에 전달돼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전용되고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종합해보면 북한이 지난 5월에 이어 지난주에도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미국에 "셈법을 바꾸라"고 요구한 것에, 미국 역시 단거리 미사일급의 단발 제재로 "딴생각 말라"고 맞수를 놓은 거란 해석이 나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협상용 지렛대일 수 있다"고 평가했는데, 미국 생각에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복귀시킬 가장 쓸모 있는 지렛대가 제재라는 거죠. 북한이 미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려 미사일 발사를 한국 탓으로 포장했듯, 미국도 이번 제재의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려 신경 썼다는 점에서 저강도의 '팃포탯' 전략으로 읽힙니다. (끝)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