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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리유치원 저승사자'의 직위 해제…그리고 '의원 보고용 설명자료'

'사립유치원 감사 외압 의혹' 연속보도 ①

[취재파일] '비리유치원 저승사자'의 직위 해제…그리고 '의원 보고용 설명자료'
경기도 교육청 감사관실 소속 안태원 상근직 시민감사관. 지난 2년간 경기도 내 사립유치원 70여 곳을 살핀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엔 부패방지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에서 일했고, 국민권익위원회 근무에 이어 한국투명성기구에선 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5일 경기도 교육청으로부터 직위해제 결정 처분을 받았다. 안 시민감사관은 "모든 일은 지난 5월 SBS가 '경기도 교육청에 지역구 의원실과 ㅁ도의원의 감사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 보도 이후 시작됐다"며 "더 엄중한 유치원 감사를 위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SBS 보도 이후 안 시민감사관은 내부 제보자로 지목돼 감사 업무에서 배제된 바 있다.(전국 시도 교육청에서는 시민감사관들을 두고 있다. 교육 현장 감사에 시민사회 전문가들을 투입함으로써 감사 업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 "빼돌린 돈 학부모에게 돌려줘라" 행정처분했더니…"처분 감경하라고 외압"

SBS는 안 시민감사관을 포함해 여러 사람들의 증언 등을 취재한 끝에 지난 5월 지역구 의원실과 도의원이 특정 사립유치원에 대한 징계(행정처분)를 감경할 수 있는 지와 형사 고발 이유를 묻는 등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경기도 수원의 A 유치원과 시흥의 B 유치원은 2014년부터 4년간 각각 20억, 12억 원 정도의 원비를 빼돌린 사실이 지난해 교육청 특별감사에서 적발됐다. 원장이 전혀 다른 이 두 유치원은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 한 업체로부터 교재와 교구를 샀다며 허위로 영수증을 꾸미는 '가장거래' 방식으로 원비를 빼돌렸다. 이들 유치원이 빼돌린 원비 규모는 특별감사에서 적발된 사립유치원 가운데 1,2위를 다툰다. 그만큼 '죄질'이 나쁜 이들 유치원의 비리를 적발한 게 안 시민감사관이었다.

감사 결과를 토대로 이들 유치원에겐 지난해 12월 횡령한 돈을 학부모에게 돌려주라는 환급 행정처분이 결정됐다. 수원 A 유치원은 총 4억 8000만 원, 시흥 B 유치원은 12억 원을 학부모에게 돌려줘야 한다. 문제는 지난 3월 벌어졌다. 안 시민감사관은 "이미 교육감 결재까지 끝난 '학부모 환급' 조치를 '보전' 조치로 바꾸는 게 가능한지 검토하란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보전 조치란 횡령금액을 유치원 계좌로 돌려놓는 것. 사립유치원으로선 훨씬 가벼운 행정처분이다. 안 시민감사관은 "지역구 의원실과 도의원으로부터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며 "행정처분 변경 검토 지시를 받는 자리에는 나 말고도 다른 직원이 함께 자리했다"고 말했다.

● '외압 의혹 증거' 의원 보고용 설명자료

SBS 보도 이후 경기도 교육청은 감사관실 내부 조사 결과를 들며 '외압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감찰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다시 내놓은 입장도 '외압은 없었다'이다. 경기도 교육청은 안 시민감사관에게 통보한 직위해제 처분사유 설명서에 '■언론매체 인터뷰를 통해 허위로 정치인의 외압 의혹을 제기했고, ■교육청 내부 문건을 무단으로 유출했다'고 적었다.

경기도 교육청이 무단 유출을 지적한 교육청의 내부 문건. 이 문건은 안 시민감사관이 상급자의 지시를 받고 직접 작성한 문건이다. '가장거래유치원 ○○○ □□□ 의원보고용' 이란 제목의 이 문건에는 안 시민감사관이 비리 사립유치원들의 행정처분 변경이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한 결과가 적혀있다. 이 두 사립유치원들이 횡령한 돈을 학부모에게 돌려주는 '환급' 대신 유치원 교비 계좌로 복구시키는 '보전'이 가능한 지에 대한 검토 결과다.
'190308_사립유치원처분진행상황(가장거래 유치원 ~의원 보고용)' 제목의 파일이 안 시민감사관이 작성한 설명자료다.
해당 문건(보고서)은 ■감사 경과진행상황 ■처분 내용 ■고발사유 ■가장거래 현황 ■재정상 조치에 대한 판단(환급조치의 보전조치 가능여부, 보전조치금액의 감액 가능여부 등) ■경기도 교육청의 사립유치원 매입계획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문제의 핵심인 재정상 조치에 대한 판단 부분을 보면 '보전금액을 탕감하거나 학부모 환급을 유치원 교비회계로 편입하는 보전조치로의 변경은 관련 근거가 부존재하여 불가'라고 적혀 있다. 실제 경기도 교육청 내부적으로 행정처분 변경 검토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지방의 한 교육청 관계자는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는 지시 없이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며 "직원 혼자 판단해서 만들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고 말했다.

안 시민감사관은 "학부모들에게서 교재와 교구를 사겠다면서 받은 돈을 빼돌린 것이기에 보전 조치는 불가했다"며 "특히 학부모를 속인 '사기 혐의'로 유치원 원장들을 형사 고발해야 하는데, 보전 조치로 행정처분을 변경하는 것은 사기 혐의로 형사 고발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안 시민감사관이 작성한 '의원 보고용 설명자료' (2번째 페이지 확대 CG) <7월 15일 8뉴스 中><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 data-captionyn="Y" id="i201337743"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90724/201337743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 교육청, 설명자료 존재 지속적 부인…출력물 형태로 공개한 뒤 곧바로 회수

경기도 교육청은 그동안 이 두 페이지짜리 문건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부인해 왔다.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인 송치용 정의당 도의원에 따르면, 교육청 관계자들은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질의에도 일관되게 이 같은 문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이 같은 내용은 경기도의회 회의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송 도의원은 "해당 문건이 존재한다는 제보를 듣고 교육청에 수차례 문건 제출을 요청했지만, 교육청으로부터 '그런 문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다른 도의원 몇 사람도 문건 제출을 요청하자 그제서야 존재를 시인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교육청은 해당 문건의 존재를 뒤늦게 시인하면서도 '재정상 조치에 대한 판단' 부분은 안 시민감사관이 외압이 있었다고 지목한 시점보다 더 나중에 따로 추가됐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SBS 확보한 자료 등에 따르면 이 문건은 안 시민감사관이 작성한 그대로가 맞고, 수정하거나 보완된 부분 없이 보고됐다.

마지못해 문건의 존재를 시인했지만 경기도 교육청이 도의원들에게 문건을 제출하는 것을 꺼려한 듯 보이는 정황도 있다. 보통의 경우 의원 측이 요청한 자료는 PC 파일 혹은 출력된 문서 형태로 '제공'되는데, 경기도 교육청은 해당 문건을 출력물 형태로 '잠깐 보여주는' 이례적인 방식을 택했다. 송치용 도의원은 "교육청 직원이 문건을 보여주면서 바로 돌려줄 것을 신신당부했다"면서 "외압 의혹의 중요한 물증이 될 수 있는 이 문건을 그냥 돌려줄 수 없어 사진으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송 도의원은 설명자료를 촬영한 사진 파일을 SBS에 제보했다.

● "직위해제 처분 사유 이해 어려워…매우 지나쳐"

내부제보 실천운동의 김형남 변호사는 "경기도 교육청이 내세운 안 시민감사관에 대한 징계 처분 사유는 모두 팩트로 확인된 것들이 아니다"며 "여전히 실체적 진실을 다툴 수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교육청이 내세운 안 시민감사관에 대한 직위 해제 처분 사유들은 중징계 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공무원이 직위해제 처분을 받는 경우는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가 대부분"이라며 "공무상 비밀 보호성이 있는 내용에 대해서만 조심을 하면 되는 것이지 언론에 제보를 했다고 중징계를 하는 건 전형적인 내부 고발자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내부제보 실천운동은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에 맞서 내부의 진실을 고발하는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재작년 출범한 단체다.                  

▶ [취재파일] 정정보도문은 '전화의 행위'에 국한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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