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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흔들리는 글로벌 밸류체인…일본은 감당할 수 있을까?

타이완 반도체 업체, "반사이익 기대 아닌 불확실성 우려"

[취재파일] 흔들리는 글로벌 밸류체인…일본은 감당할 수 있을까?
● "화이트리스트 제외하겠다"…지금 상황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추가적인 조치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지난 12일, 양국 실무자 간 양자 협의에서 우리나라를 안보상 우호 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겁니다. 현재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들어간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모두 27개국인데요, 여기서 제외될 경우 거의 전 산업에서 수출규제가 강화됩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모든 전략물자 품목에 대해 개별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전략물자관리원은 일본 경제산업성의 '일본 수출통제 목록'을 분석한 결과, 실제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지게 된다면 첨단소재, 전자, 통신, 센서, 항법 장치 등 1천100여 개 품목이 규제 대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규판 선진경제실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는 "해당 품목에 대한 규정이 매우 포괄적이고 자의적이어서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태"라면서 "현재 거론되는 해당 수출규제 품목으로는 군사 전용이 가능한 첨단소재(화학약품)와 전자부품(차량용 2차 이온전지) 등이 유력하고, 일부 공작기계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예상되는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 위해 이미 외국환 및 외국무역관리법(외국환관리법)에 따른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을 고시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24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각의 후 공포합니다. 그로부터 21일이 경과한 날로부터 우리나라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됩니다. 그대로 진행된다면 일본은 우리나라를 8월 22일쯤부터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결정과 실시까지의 꽤 긴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어떤 '협박성 결정' 같은 것들이 추가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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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를 넘어 흔들리는 글로벌 밸류체인에 대한 우려들

'글로벌 밸류체인'은 제품의 설계, 부품과 원재료의 조달, 생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각 과정이 다수의 국가 및 지역에 걸쳐 형성된 글로벌 분업체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기초과학이 강한 일본이 소재와 부품을 팔면 한국, 타이완은 이 재료로 반도체를 제조해 수출하고 중국, 일본, 미국은 IT 완제품을 만드는 식입니다. 단순화시킨 것이지만 이렇게 여러 나라가 기술과 자원, 비용면에서 각자 유리한 품목을 생산해 상호 교역하는 국제 분업구조를 '글로벌 밸류체인'이라고 합니다. 이는 지난 수십년 동안 효과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해 세계 무역이 확장하는 비결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밸류체인은 동북아 3국, 즉 한국·중국·일본 3개국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지리적 역사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관계로 얽힌 한·중·일 3국은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기술비와 인건비, 자원 등 각국의 비교우위에 따라서 유리한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취사선택하면서 이 사이에 자연스럽게 산업 밸류체인이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각자가 맡았던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은 IT를 비롯한 첨단산업, 해양 및 항공, 원자력 등 분야의 제조용 장비와 소재, 부품 원천 기술에 있어 비교우위를 갖는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주로 소재 및 부품, 제조용 장비 등을 수입해 반도체, OLED, 화학 등 중간재와 자본재를 공급하는데 비교우위가 있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중간재, 자본재를 수입해 조립 및 가공해서 최종재를 수출하는 쪽에 좀 더 주력한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연구원

봉합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최근 미·중, 즉 G2 간의 무역 분쟁 속에서 3국 간의 분업시스템까지 무너진다면 한국 경제에는 상당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슬 안에 있는 일본도 당연히 함께 힘들어집니다. 일본은 부정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글로벌 밸류체인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대한민국 수출규제 시작
● 각국에서 터져 나오는 우려들

미국과 중국의 언론들도 이런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22일 정말 날을 잔뜩 세워 아베를 비판했습니다. 제목부터 강렬합니다. '한국을 상대로 한 아베 신조의 가망 없는 무역전쟁'입니다. 통신은 "일본 지도자는 정치적 분쟁에 통상무기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라면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통상을 이용한 정치 보복으로 판정했습니다. 또 일본이 내세우는 북한 유입 때문이라는 이유도 믿지 않았습니다. 통신은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승리로 많은 사안에 정치적 장악력을 얻었다"면서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본이 이웃 국가 한국을 상대로 시작한 어리석은 무역전쟁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아베가 중국과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쓰는 '약자 괴롭히기' 전략을 모방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아베 총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글로벌 무역 질서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존중의 박수갈채를 받은 지도자로서 특히 위선적인 행태"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블룸버그는 또 수출규제의 부메랑으로 일본이 받는 타격이 아베 총리의 명예 실추 정도의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고객들 중 일부가 대체 공급지를 찾게 되면 일본 수출업체들이 시장과 신뢰를 잃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절차를 계속 이어간다면 한국은 이에 대해 반드시 보복에 나설 것이며 이러한 긴장이 고조되게 될 경우 안보 관계의 근간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며 서둘러 한국과 일본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아이폰XS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글로벌 경쟁기업의 묵직한 한마디…TSMC가 우려하는 것

그런데 밸류체인의 문제에 대해 실제 시장에서 크게 우려하게 된 건 이런 언론 사설이나 유명 경제전문가의 전망이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한국 반도체의 강력한 글로벌 경쟁회사인 타이완의 TSMC 실적 전망이었습니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즉 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 유일하게 삼성전자에 앞서 있는 회사입니다. 2분기 매출은 좋았습니다. 컨센서스를 상회했고, 3분기 매출 가이던스도 우려 대비 견조하다는 평가였습니다. 화웨이 쪽으로 파운드리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고, 5G 산업 발전으로 인한 수요도 꾸준히 상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반도체 업황이 돌아서는 것이냐라는 기대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세계 점유율이 상당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의 규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반사이익까지 기대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TSMC의 4분기 전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3분기 대비 성장할 수는 있겠지만 한일 무역갈등을 정확히 짚으면서 이로 인한 불확실성이 상당히 큰 상황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부분은 언론을 통해 깊이 다뤄지지 않았지만, 거기엔 다음과 같은 속내가 있었습니다. TSMC는 그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었습니다. 일정 부분은 함께 밸류체인에 올라와 있었던 겁니다. TSMC는 미국 애플에 특정 모바일 패키지를 납품합니다. 그런데 이를 만들기 위해 TSMC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통해 모바일 D램 패키지를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이걸 다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셋인 모바일 AP(Mobile Application Processor) 위에 올립니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패키지 온 패키지(Pop)'라 불리는 방식인데, 쉽게는 하나의 칩이 아닌 별개의 칩을 합쳐서 만드는 방식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구조로 납품을 해왔던 TSMC 입장에서는 한국 반도체의 어려운 상황이 반가울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화하면 할수록 이런 상황은 곳곳에서 터질 것이고 결국 글로벌 밸류체인에 문제는 폭발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등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자국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관 직원을 대상으로 일제히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수출규제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대항(보복) 조치가 아닌 수출관리 체제 점검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일본의 의도가 정말 그런 것이라면, 일본은 결과적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게 되어, 세계의 비난이 쏟아지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정말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요? 23일 현재,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가운데 일본 정부의 승인이 난 것은 여전히 0건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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