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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폭스테리어 안락사 논란'이 안타까운 이유

[인-잇] '폭스테리어 안락사 논란'이 안타까운 이유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SBS 뉴스

작성 2019.07.24 11:03 수정 2019.08.23 10:0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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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폭스테리어 안락사 논란이 안타까운 이유
이달 초 한 아파트 복도에서 폭스테리어가 어린 여자아이를 무는 영상이 공개되며 여론이 들끓었다. 2년 전 한 유명 연예인이 키우던 프렌치 불독 사고가 떠올랐다. 당시 피해자는 결국 사망했는데, 유명 연예인 가족에게 강남구청이 단 5만 원의 과태료(목줄 미착용)만 부과하면서 엄청난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엔 강남구청도 어쩔 수 없었다. 주인의 잘못으로 개가 사람을 물었을 때, 개 물림 사고의 피해자나 유가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개 주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도 문제의 프렌치 불독을 안락사 시키라는 주장이 많이 제기됐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폭스테리어의 안락사 여부를 놓고 누리꾼들 사이에 갑론을박을 벌어졌다. 개 물림으로 인한 충격적인 사망사고가 있은 지 2년, 바뀐 게 뭐가 있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바뀐 게 꽤 많다. 일단 관련법이 강화됐다. 이제 맹견으로 분류된 개*를 키우는 보호자는 맹견관리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맹견 출입금지지역도 생겼다. 맹견은 어린이집, 초등학교, 유치원에 출입하지 못하게 됐다. 또 맹견이 주인 없이 기르는 곳을 벗어나면 주인이 처벌을 받는다.
[인-잇] '폭스테리어 안락사 논란'이 안타까운 이유일반 반려견에 대한 규정도 강화됐다. 목줄 미착용 등 펫티켓 관련 과태료가 대폭 상승했다. 목줄 미착용으로 1차 적발될 경우 과거 5만 원이던 과태료는 20만 원으로 높아졌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피해자나 유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사처벌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제 주인의 부주의로 개가 사람을 물어서 다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사람이 사망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피해자나 유가족이 주인의 처벌을 원하든 원치 않든, 동물보호법으로 처벌받는다.

● 개 물림 사고 안락사 논란, 합리적인 기준은 대체 어디에?

이처럼 바뀐 게 많은데, 왜 안락사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일까? 나는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2년 전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개 안락사 논란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다. 1년에 발생하는 개 물림 사고는 무려 2천 건이 넘는다. 119구급대가 2018년 개 물림 사고로 병원에 이송한 환자만 2,368명이다. 매일 6명이 개 물림 사고를 당하고 있다.

그중 이슈화되는 것은 손에 꼽는다. 영상이 공개되고 언론에 보도되는 사고는 극히 소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슈화된 일부 개 물림 사고에 대해서, 영상 하나만 보고 "안락사 시켜라", "개빠들은 개념이 없다", "주인을 당장 처벌해라" 같은 주장이 난무한다. 상황이 이러니 주인도 '안락사 주장'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이번 폭스테리어 주인도 안락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감정적 대응에 휩쓸리다 대안 마련을 위한 진지한 논의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일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소모적 논쟁을 막는 합리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전문적이고 과학적으로 개의 안락사 여부를 평가할 기준과 전문가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동물행동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수의사들과 훈련사들이 한 팀이 되어 개의 공격성을 평가한다. 사물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는 기질검사부터 교상(물린 상처)의 이력, 교상의 세기, 과거의 훈련 경험, 사회화 정도, 개의 품종, 크기, 부모견과 동배견의 공격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다.

교상의 이력도 단순히 사람을 몇 번 물었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물었는지, 그리고 물기 전과 후에 어떻게 행동했는지까지 분석한다. 그런 종합적인 판단 아래 안락사 여부를 결정한다. 한 번 안락사한 동물은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같은 조건의 개라도 주인과 생활환경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개가 똑같아도' 70대 노인 한 명이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는 경우와 4인 가족이 전원주택에서 기르는 경우는 '개의 공격성에 대한 해결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이런 전문가 팀에서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안락사의 필요성을 언급해야 주인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정부는 최근 '반려견 공격성 평가 도입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공격성 평가 방식·절차, 수행기관 등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디 제대로 된 전문가 팀에서 한국 현실에 맞는 평가 방식으로 개들의 공격성을 평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자리 잡아, 더는 개 물림 영상 하나에 누리꾼들이 분열되어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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