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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 방미단은 '국회' 결의안을 들고 갈 수 있을까?

모처럼 국회가 한목소리를 내나 싶었습니다. 강제징용 판결을 두고 나온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비판 목소리를 냈습니다. 대표적으로 각각, 더불어민주당은 일본경제보복대책특별위원회(추후에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로 명칭 변경)를 꾸리고 당청 대책 회의도 열면서 일본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는 데에, 자유한국당은 일본의 조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적절하지 않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긴 하지만,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점에는 뜻을 같이했습니다. 그런 공감대의 연장 선상에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국회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각 당에 제안했습니다. 여야 보수 진보를 떠나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함께 채택하자고 제안한 겁니다.

지난 8일 오전에 나온 이 제안에 하루가 채 가지 않아 화답이 왔습니다. 같은 날 있었던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민주당 이인영,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 겁니다. 3당은, 각 당이 결의안을 준비하고 이번 6월 임시국회 회기 중 국회 차원의 결의문을 채택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국회 차원에서 초당적 외교를 펼쳐나가 해법을 찾아보자는 데도 뜻을 모아 방일단을 꾸리기로도 했습니다. 며칠 뒤 각 당 의원들이 결의안을 발의했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를 앞두고 3당 교섭단체 간사들은, 초당적 협력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발의됐던 결의안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했고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습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문희상 의장(왼쪽 두번째)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자유한국당 나경원,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뜻밖의 채택 거부…대표 회동·본회의 일정 때문?

그리고 지난 17일, 여야 외통위 위원들이 모인 회의를 지켜봤습니다. 결의안 얘기가 당연히 가장 먼저 나왔고 바로 통과될 줄로만 알았습니다. 사전에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던 만큼 안건 상정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당 김재경 간사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의견이 일치돼서 결의안 초안을 만들긴 했지만 다음날(18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5당 대표 간 회동이 있고 또 본회의 일정이 확실하지 않아 논의는 이 정도로 종결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바른미래당 정병국 외통위 간사는 큰 틀이 바뀌지 않는데 시기를 늦출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한국당은 거듭 즉각 채택을 거부했습니다.

외통위에서 당초 예정돼 있던 두 건의 공청회를 먼저 진행하는 동안 여당은 여러 차례 결의안 채택을 촉구했습니다. 무소속 이정현 의원도 "대통령이 어떻게 하든, 각 정당에서 어떻게 하든, 입법부 일원으로서 전부 의견이 일치돼 국회 차원의 결의를 하자고 했으면 국회 입장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외부 다른 요인에 의해 흔들려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당 입장은 완고했습니다. "결의안에 대해 문제를 삼거나 내용을 고칠 생각은 없다"고 하면서도(김재경 의원), "본회의 일정이 잡히면 그 5분 전, 10분 전에도 통과 가능하다"며 일정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봐야 한다, 본회의 일정이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상임위 의결이 중요하냐고 반박했습니다(정양석 의원). 공청회가 끝나가는 오후 6시 반이 넘어서까지 실랑이가 벌어졌고 결국 결의안은 이날 외통위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 대일 결의안 외통위만 통과…본회의 처리는 난망

한국당이 이날 결의안 채택을 반대하며 들었던 이유 중 하나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은 예정대로 다음 날 이뤄졌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고 공동 발표문도 나왔습니다. 일본 조치는 부당한 경제 보복이다, 일본 정부는 외교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 정부와 여야는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 또 범국가적 대응을 위해 비상협력기구를 설치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습니다. 하지만 핵심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그 항목을 발표문에 담으려 했지만 한국당이 예산이 따르는 문제이기 때문에 반대했단 겁니다. 이 부분은 정부·여당이 국회에서 처리시키려는 추가경정예산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추경과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발표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이후 브리핑에서 밝혔습니다.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19일 오후 문희상 국회의장과의 2차례 회동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각각 나오고 있다.
바로 그 추경안 심사는 지금 '올스톱'된 상태입니다. 여당이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3천억 원을 더 추가하겠다고 밝힌 추경이지만 논의도 처리도 지금은 언제 가능할지 요원합니다. 당일 내 추경안 심사를 마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나오던 지난 19일, 여야는 막판 협상을 벌였습니다. 이날은 6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도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은 모여 여당은 추경 처리, 야당은 북한 목선 국정조사와 정경두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주장했습니다. 추경 처리 등을 위해 본회의는 하루만 열면 된다는 여당과, 북한 목선 국정조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정경두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보고와 표결을 위해 본회의 이틀이 필요하다는 야당 주장이 끝끝내 좁혀지지 않으면서 6월 임시국회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다만, 본회의가 아니라 상임위, 즉 외통위 단계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극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당초 논의가 이뤄졌던, 글 첫머리에서 언급된 외통위 회의 날로부터 닷새가 지난 22일, 이 합의에 따라 결의안이 외통위에서 처리됐습니다. 회의 시작 2분 45초 만에 만장일치로 통과가 된 겁니다. 일본 정부가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가 미래지향적 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외교적 해결에 적극 나설 것, 일본 정부와 일부 정계 인사들이 대북제재 위반 의혹 등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중단할 것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윤상현 위원장이 22일 오후 열린 전체회의에서 '일본 수출규제 철회 촉구 결의안' 채택을 의결하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친일 프레임'의 등장…'초당적' 합의는 어디에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계속되고 있고, 선거를 치른 아베 총리는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이 문제라는 식의 발언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국회에서 이 결의안을 가지고 '실질적인' 초당적 협력을 얘기하는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야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엔 며칠 사이 더 가시가 돋쳤습니다. 조국 수석의 잇따른 SNS를 두고 '편 가르기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신(新) 친일'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습니다. 정부의 대일 정책 그리고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대처를 계속해서 비판해 온 한국당을 향해서였습니다. "한일전에서 한국당이 백태클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 준엄하게 경고한다"면서 "우리 선수를 비난하고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그것이야말로 '신(新) 친일'"이라고 이 원내대표는 말했습니다. 추경 처리를 위한 의사 일정에 한국당이 합의하지 않고 강대강으로 나온다면 민주당도 선택할 수단이 많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카운터파트,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일본 통상보복 조치라는 국가 위기마저도 추경 압박을 위해 활용한다"며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야당 탓을 하기 위해 친일 프레임을 가져가는 한심한 청와대·여당"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다음 날도 공방은 계속됐습니다. 다른 모든 이슈를, 친일/반일 프레임이 모두 덮어버린 모양새입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사태가 이어지는 동안 청와대와 여당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국민을 편 가르고 야당을 공격하는 데에만 바빴지 무슨 해결책을 내놓았냐고 공격했습니다. 국민들 가운데 누구도 일본이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데, 청와대와 생각이 다르면 모두 친일파라고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 태도냐는 겁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일본 팔이'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제는 정부, 여당에게 총선만 있느냐며 '일본 팔이'로 무능과 무책임을 덮으려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신(新) 친일'에 이어 'X맨'을 언급했습니다. 일본 경제 보복에 대응하기 위한 추경이 89일째 지연되고 있고 이건 전적으로 한국당 때문 아니냐며,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정부 비판에 골몰하고 백태클만 반복하면 X맨이 되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시기라고는 말하지만, 정작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힘을 모으자는 의미와는 모두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여당 의원들 가운데에서도 그동안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당장 수출 규제 조치를 하겠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간 대일 외교에 있어 미진했던 부분이라든가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판결 이후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는 부분 등을 들어왔다고 말입니다. 어찌 됐든 수출 규제 조치가 일어난 지금 상황에서 당장 야당의 지적과 공세를 끌어안고 대책을 모색해야 할 책임은 정부, 여당에 있습니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이미 부정적인 의미로 고착화된 단어를 상대방에게 들이미는 건, 그들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하는, 다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야당 역시, 초당적 대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에 맞지 않는 행보를 고집하는 건 곤란합니다. 지난 17일 외통위 전체 회의 이후,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는 한국당을 가리켜 여당 내부에선 한국당이 원하는 본회의 이틀을 관철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 결의안을 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정부 정책 방향이 맞는지 항상 점검하고 여당도 견제하는 것이 야당 역할이지만 거기에 합리적인 이유가 읽히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십상일 겁니다.
국회의사당
● "우리 내부 대립 보여주는 게 우리 정치력이냐"

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가 함께 모여 꾸려진 국회 방미단은 24일 미국으로 출국합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26일에 열리는 한미일 의원회의에 참석하고 가장 뜨거운 현안이 되어 버린 일본 수출 규제 등을 두고서 일본 그리고 미국 의원들과 얘기를 나누게 됩니다. 또 국회 방일단 역시 31일쯤 일본을 찾아 일본 의원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선, 그들 손엔 우리 국회의원 모두가 함께 뜻을 모은, 국회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결의안은 들려 있지 않습니다. 그냥 문서일 뿐인 결의안이고 어차피 큰 의미나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혹은 어쨌든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으니 충분히 완전한 결의안이다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평가가 어떻든 간에, 결의안이 처음 외통위에 상정되었던 지난 17일 마지막 의사 진행 발언이었던 한 의원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씁쓸함을 남깁니다.

"이 결의안, 이미 효과를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결의안 취지를 생각한다고 한다면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비춰져야 하는 모습이 어떤 모습이라는 건 초등학생이라도 다 알 것입니다. 일본을 규탄한다고 하면서 전체회의도 아니고 상임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공방을 하고 서로 비난을 하고 욕을 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에서 아주 반성을 하겠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요. 정말 정치력이 다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겁니까. 이걸 꼭 공개적으로 다 떠들고 얼굴 붉히고 서로 간에 우리 간에도 엄청 대립하고 있다는 거 일본한테 과시하고 국민들한테 보여주고 하는 정도가 우리의 정치력입니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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