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일본 외교문서에서 찾은 경제보복의 해법 ②

최호원 기자 bestiger@sbs.co.kr

작성 2019.07.13 09:1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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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일본 외교문서에서 찾은 경제보복의 해법 ②
일본 외교문서에서 찾은 경제보복의 해법 1편에 이은 2편입니다.

1편에선 1) 1월10일 자민당 회의의 비밀 2) 극우 일본회의의 정체 3) 후지-산케이 그룹 4) 경제 보복의 이유 분석 5) 일본의 추가 공격 카드 6) 일본 안전보장무역관리 시스템 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2편에선 일본 기업들이 왜 반발하지 않는지를 시작으로 일본의 외교력와 국내 불매운동의 의미, 그리고 일본 여론을 움직이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7) 일본 기업들은 왜 반발하지 않나?
일본 정부가 발표한 경제 보복조치는 ①고순도 불화수소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세 품목에 대해 7월4일부터 즉각적으로 한국 수출 심사 강화 ② 전체 안전보장무역 관리 시스템 내에서 한국을 화이트국가(현재 한국 포함 27개국)에서 제외한다 입니다. 보복 조치②는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의견수렴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정부에 의견을 표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1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은 굉장히 정부 중심 사회입니다. 더욱이 이번 조치는 정부의 '외교' 정책입니다. 여기에 개별 기업이 반대 의견을 표명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대신 일본은 보통 협회나 단체 차원에서 정부와 협의합니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이 대표적입니다. 게이단렌 회장 부회장들의 파워는 상당합니다. 사라진 우리의 전경련 정도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한국 투자를 많이 한 일본 도레이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전 회장의 경우 게이단렌 회장 시절(2014/6-2018/5) 한일 정부간 가교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일본 대기업들은 일본 전역에 공장을 갖고 있어 지역 정치인들과도 교류가 빈번합니다. 과거의 정경유착은 사라졌지만, 중앙과 지방에서 여전히 정경 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일본 정치인들을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경우 일본 반도체제조장치협회(SEAJ/회장사 니콘)와 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 반도체부회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규제 품목 관련 업체 대부분이 소속돼 있습니다. 지난 8일 SEAJ는 올해 일본제 반도체장비에 대한 수요가 지난해 대비 11%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일본 내 시장 규모도 19.2%나 줄 것이는 전망입니다. 정부의 보복 조치에 반감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협회와 단체를 통합니다.

일본은 70,80대 올드 보이(old boy)들이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나이가 좀 있는 각종 협회장, 기업 회장 사장, 지방 국회의원, 고위 관료들, 정치인들이 물밑에서 만나 서로 의견을 교류하고 결정합니다. 협회 단체마다 모두 정치권과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의 대화 속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과 일본 기업의 어려움이 논의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어제 도쿄에서 열린 한일 과장급 회의처럼 실무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또, 일본은 권력자나 강자가 많은 것을 결정하는 나라입니다. 약자와 서민들은 리더를 따르는 경향이 강하죠. 일본 사람들은 늘 누가 권력자인지, 강자인지를 살핍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나 대기업뿐 아니라 작은 중소 기업에서도 파벌 라인 문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면 묻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 내에서 대일 정책의 키는 누가 쥐고 있나요?" 질문도 매우 구체적입니다. "외교장관입니까? 국정원장입니까? 청와대수석? 총리? 최근 한국 정부 내 이런 일이 있었다는데 그럼 누구가 아닙니까?" 일본 외교관들 한국어 굉장히 유창합니다. 질문이 날카롭습니다. 우리도 일본 정재계의 파워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파악하고 그들과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의 올드 보이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8) WTO에서 한국이 유리할까?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일본의 수출 규제를 추가 의제로 긴급 상정하고 규제 철회를 요청했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WTO가 우리의 손을 들어줄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물론 무조건 WTO 절차는 밟아야 합니다.)

일본 정부는 "유럽도 전략물자 무역에 있어 일본을 포함한 8개 국가에게만 포괄허가 우대를 해주고 있고 한국은 지금도 빠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WTO협정 내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21조에 따르면 '안전보장상' 필요하다고 인정된 무역 제한은 예외조치가 인정됩니다. 후쿠나가 유카 와세다대학 교수는 아사히신문 칼럼에서 "이번 조치는 WTO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안전보장상 예외조치는 당사국의 재량을 대단히 폭넓게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외무성 출신의 오가타 린다로 전 일본 중의원은 "지난 4월 WTO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과거 러시아가 안보상 이유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카자흐스탄 등으로 가는 화물 차량에 위성추적장치를 반드시 달도록 규제를 했다가 WTO 제소를 당했다. WTO는 지난 4월 러시아 측 손을 들어줬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오가타 전 의원은 "이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상황이라는 점 등의 근거가 있었던 것으로 현재 한일 상황과는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한국도 국제통상법 연구를 깊이 하는 나라라며 WTO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쉽게 낙관도 비관도 해선 안 됩니다.

9) 외교문서에서 살펴본 일본의 국제 플레이

WTO에서 가면 이긴다! 진다! 모두 승패만 예측하고 있습니다. 사실 WTO에서 결론이 나는 건 1,2년이 흘러 일본이 충분한 경제보복 효과를 거둘 뒤가 될 겁니다. 그런데 걱정은 일본이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1월부터 준비한 보복조치인만큼 각종 시나리오를 준비해놓았을 겁니다. 한국 내 정부 기업 언론의 반응, 보복 효과가 나타나는 날짜별 흐름, 일본 기업들의 피해 규모, 한국 국민들의 불매운동까지 모두 예측했다고 봐야 합니다. WTO나 국제사회의 반응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1933년 일본은 국제사회가 만주 침략을 비난하자 국제연맹을 탈퇴합니다. 이후 전세계를 상대로 외교전을 펼친 경험이 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엔 미국과 죽고사는 1대1 국가 외교전도 했습니다. 각종 암호전문과 기만 전술도 사용했습니다. 이런 외교술은 한일청구권협정 협상 당시에도 발휘됐습니다.1962년 일본 정부가 미국 측과 한국 정보를 교환한 문서1962년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과가 작성한 위 문서는 '한국문제에 관한 미국 대사관 직원과의 대화의 건'으로 "정보교환을 위해 방문한 주한 미 대사관 000서기관과의 대화 중 주의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일 협상을 미국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핀 겁니다. 미국뿐이 아닙니다. 당시 일본 외교문서를 보면 영국 등 다른나라 외교관들의 의견을 물어봅니다.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주시하면서 여론을 움직이려고 한 것이죠.

지금도 그럴 겁니다. 다른 국가들이 현재의 한일 갈등을 어떻게 보는지 정보를 모우고 WTO 패널국가의 국제법 학자들에게 접근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입장을 전하고 국제 여론전을 시작합니다. 일본이 국제 여론과 국제법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에도 일본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는 문구를 반드시 넣도록 했죠.

10)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의미

불매운동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괘씸하니 일본 제품을 사지 맙시다"라는 말은 반대로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제품을 안 사도 좋아요"라는 것과 비슷합니다.1975년 히로히토 일왕 미국 디즈니랜드 방문그렇다고 불매운동이 전혀 의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1975년 미국 제널드 포드 대통령은 히로히토 일왕을 미국으로 초대했습니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은 16만 명이 숨지고, 24만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연히 반대 데모가 있었습니다. 포드 대통령과 히로히토 일왕을 함께 암살하려던 사람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포드 대통령과 히로히토 일왕을 함께 암살하려고 했던 범죄자일부 미 국민들의 격앙된 반응 속에서도 미국 행정부는 일왕을 초대했습니다. 한때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처벌하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최고의 예우를 해줬습니다. 국민 감정을 넘어 냉철하게 미일 관계의 미래와 국익을 생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미일 외교사를 생각할 때 이번 한일 갈등에서 미국이 한국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예측은 너무 안이하다고 생각합니다.)

불매운동이 우리 정부의 외교전에 힘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마저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정부는 '외교'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참에 새로운 10년, 20년의 한일 관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11) 여론조사의 나라, 일본

개인적으론 불매운동보다 일본 국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여론조사의 나라입니다. 내각제라서 총선에서 승리한 여당 총재가 곧바로 총리에 지명됩니다. 여론이 좋지 않으면 총리는 당 지지율이 더 떨어져 선거에 불리해지지 않도록 즉각 국회를 해산합니다. 그리고 당 지지율이 그나마 유리할 때 다시 선거를 치릅니다. 그래서 자민당은 끊임없이 자체 여론조사를 합니다.
관련 사진1948-98년 사이 총선 직전 내각 지지율의 변화(NHK기준)입니다. 2000년대까지 통계기간을 늘려보면 총리가 교체되는 내각 지지율의 마지노선은 28.5%입니다. 이번 보복조치로 내각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인다면 아베 내각도 큰 부담을 느낄 겁니다.

우리 국민들이 일본 여론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일본 내 지각있는 국민들과 지식인들이 나서줘야 합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일본의 보통 시민들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보복조치 지나치다. 아베 총리 안 되겠네" 그런데, 국내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여론을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잡지 '분케슌주' 4월호 후지제록스 전 회장 기사
다카스키 노부야 후지제록스 전 회장은 일본 유력잡지 분케이순쥬(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가 일본 기업에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 정부 자문위원을 지낸 다카스키 전 회장은 네 가지 반대 이유를 들었습니다.

① 6월 말 G20 의장국으로서 자유무역을 중요성을 말하지 않았나? ② 한국 반도체산업의 생산력을 낮추면 국제사회 전체의 반도체 보급에 영향을 끼친다. ③ 일본 기업에게도 피해가 발생한다. ④ 한국이 결국 대체품 조달을 시작할 것이다. 이런 의견들이 더욱 일본 사회에 퍼져야 합니다.

일부에서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금지 확대를 거론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후쿠시마 현민들은 아무 죄도 없이 지진해일과 원전 파괴라는 엄청난 재난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동북 지역민들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감정은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국가간 분쟁으로 그 사람들에게 추가적 피해를 입히는 일은 아베 내각이 아닌 국민들을 적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12) 당장의 해법이 없지 않냐?

맞습니다. 없습니다. 최근 수 년동안 대일 외교에 손을 놓았는데 이제와 대응책이 있을리 없습니다.

중국은 지금도 일본과 치열한 외교전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어가 유창한 중국 외교관들이 도쿄 밤거리에서 수시로 일본 관료들과 기자들을 만납니다. 우다웨이 전 중국 한반도문제 특별대표의 경우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습니다. 주일 대사 당시엔 일본 외무성에 들어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중국어로 중국 정부의 항의문을 읽은 뒤 카메라가 빠지면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 측과 환담을 하고 나왔습니다.

일본 군사기지 주변 지방대학에 뜬금없이 중국 유학생들이 몰려듭니다. 일본 방위성 간부들은 도청을 우려해 방위성 인근 중식당을 피할 정도입니다. 반면 두 나라는 교류도 엄청나게 합니다.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의 경우 시진핑 중국주석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중국통입니다.
니카이 도시히로, 시진핑 중국주석우리는 어떤가요? 청와대 고위급 가운데 일본 고위인사와 통역없이 한 시간 이상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요? 외교전은 국민 앞에서 하는 쇼가 아닙니다. 총력전입니다. 상대의 인물, 심리, 대화기법, 조직문화, 커뮤니케이션 루트까지 파악해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의 외교전문 전달 과정을 장소와 시간 단위로 파악하고 도청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한국 연구는 깊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연간 매출 20조원 이상 기업은 한국은 26개, 일본은 70개입니다. 상당수 기업들이 삼성경제연구소 급의 연구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참고하는 종합연구소만 24개입니다. 여기에 정부 소속 연구자들과 대학 교수들까지 모두 각자의 인맥을 통해 한국을 연구하고 또 연구합니다.

차라리 이번이 기회입니다. 대일 외교를 기초부터 다시 점검합시다. 대화 통로를 더욱 확대하고 또 깊게 사귀어 둡니다. 최종 결정권자와 그 조언자들도 파악해둡시다. 최종 결정 회의에 앞서 각 파트의 이해관계를 미리 조율해놓는 '네마와시'(나무를 옮겨심기 전 잔가지를 정리해놓은 것에서 유래) 문화도 기억합시다.

그 전에 대통령과 청와대는 대일 외교의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대일 외교의 철학은 첫째도 국익, 둘째도 국익입니다. 역사 교육을 충실히 받은 우리 국민들에게 반일을 내세우는 것은 가장 손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미래 세대에겐 한일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차단하는 일이 아닐까요? 갈등의 해법을 찾지 말고 이런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탄탄한 한일 협력의 토대를 만들어 놓는 것이 10년 앞을 바라보는 진정한 외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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