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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년 만에 만난 선생님 보복 폭행이 부른 중국의 체벌권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창 모 씨
중국 허난성 뤄양시 루안추완현의 창 모씨는 지난해 7월 길거리를 가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합니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중년의 남성. 창씨는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이내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남성은 중학교 2학년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장 모씨였습니다. 20년 만에 우연히, 그것도 길거리에서 선생님을 만난겁니다.

하지만 창 씨에겐 학창 시절의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특히 장 선생님에 대해선 더 그랬습니다. 학교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체벌을 당한 기억만이 떠오를 뿐입니다. 얼굴이 일그러진 창씨는 장 선생님의 뒤를 바짝 쫒아갔습니다.
창 모씨가 자신의 중학교 때 담임 장 모 씨를 폭행하는 영상 캡처
선생님을 불러 세운 창 씨는 제자의 인사 대신 묵혔던 감정을 쏟아냈습니다. 옛날 자신이 당했던 그대로 갚아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 선생님에게 욕을 퍼붇고, 주먹을 휘둘러 얼굴을 여러 차례 강타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함께 따라온 동료에게 이 과정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게 했습니다.

장 선생님 입장에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 옛 제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참담한 광경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창 씨는 폭행 과정을 담은 영상을 중학교 동창들에게 돌렸습니다. 창 씨가 큰 일을 한 것처럼 뿌듯해하는 사이, 폭행 동영상은 인터넷으로 퍼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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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창 씨는 법정에 섰습니다. 재판부는 창 씨의 폭행은 장 선생님과 가족들의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줬다고 판단했습니다. 사회 도덕적인 준칙과 풍속을 파괴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장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습니다. 초범인데도 이례적인 중형을 선고한겁니다. 창 씨는 상소했습니다. 자신이 학창시절 장 선생님에게 당했던 체벌은 정당한 거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번 폭행의 원인 제공은 장 선생님의 체벌이란 겁니다.

창 씨가 실형을 선고받던 날, 중국 산둥성 르자오시 우롄현의 한 중학교에선 교사 한 명의 중징계가 확정됐습니다. 징계 대상자는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양 모씨. 양 교사는 지난 4월 29일 수업에 지각한 학생 2명을 반성하라는 의미로 복도로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이 기회를 틈타 몰래 운동장으로 빠져나가려다 붙들렸습니다. 화가 난 양 교사는 두 학생을 바닥에 꿇어 앉히고, 교과서로 내리치고, 발로 걷어차는 체벌을 가하며 10여분간 훈계했습니다. 양 교사의 체벌로 학생들의 얼굴과 목, 다리엔 빨간 멍이 들었습니다. 학부모의 신고를 받은 학교측은 즉각 진상 파악에 나섰고, 양 교사를 직무 정지시켰습니다. 또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사과하고, 치료비를 물어주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산둥성 당국은 양 교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사실상 교사직 유지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양 선생님은 또 형사 처벌도 각오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학창 시절 체벌을 이유로 20년 만에 만난 선생님을 보복 폭행한 제자.. 학교생활 규율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했다가 교단에서 쫒겨나게 된 선생님. 공교롭게도 교육과 체벌이란 공통점이 있는 이 사건들이 동시에 알려지면서 중국 사회에선 또 다시 체벌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쓰촨성 다저우시 따주현의 한 초등학교 교장인 션 모씨는 교사의 체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션 씨의 학교는 계척(戒尺), 우리말로 '사랑의 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체벌 도구를 자체적으로 공식화한 학굡니다. 션 교장은 "아이들에게 설교만으론 아무런 교육 효과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후베이대학교의 리 모 교수도 "교사의 체벌은 직업적인 권한"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쓰촨성 다저우시 따주현 초등학교에 배치된 '사랑의 매'
이런 주장엔 중국 사회의 공교육 현실과 고민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습니다. 가정내 소황제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조차 적절한 통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게 지금의 중국 학교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산둥성 우롄현의 양 교사의 중징계 사례를 놓고 중국 교사들 사이에선, 자칫 학생들에 대한 체벌이 지나칠 경우엔 직업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교사들은 학생들 훈육과 선도에 주저하게 되고, 결국 남는 건 학생들에 대한 방관과 교사들의 보신주의 뿐이라고 중국 교육자들은 한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체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체벌은 이유를 막론하고 교육 행위가 아니라는 겁니다. 체벌을 유일한 교육수단으로 내세우는 그 자체가 교육자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받는 대상인 학생들이 체벌에 동의하지 않는데, 교사가 체벌권을 주장하는 건 학생과 교사의 신뢰만 훼손시키는 일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학교에서라도, 또 그것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포장되더라도 학생에 대한 체벌은 사회 폭력일 뿐이라는 게 체벌 반대 논리의 핵심입니다.

이런 교육과 체벌에 관한 논란은 어느 사회에서건  해묵은 논쟁거리일 수 밖에 없지만, 중국 당국은 이제 방향을 잡아가려는 것 같습니다. 당국은 지난 8일 '의무교육 질적 향상에 관한 의견'을 통해 교사들의 체벌을 포함한 징계권을 명확히 규정하기로 하고, 관계 부처가 시행 세칙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시행 세칙을 들어 체벌권의 범위와 정도, 형식, 규범을 구체화하겠다는 얘깁니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쓴소리도 하며 적극적인 교육 활동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했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이 더 크게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과도한 체벌에 대한 우려는 매뉴얼을 통해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풀어가자는 방향입니다. 교사의 체벌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체적인 방점은 인정하는 쪽에 찍힌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체벌이 과도한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건데, 사실 이게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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