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동일본 대지진의 교훈 "재난에 신속히 대비하라"

이홍천|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SBS 뉴스

작성 2019.07.11 11:00 수정 2019.07.12 16: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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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가 다음 주 일본에서 개봉한다. 신카이 감독은 <너의 이름은>, <언어의 정원>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너의 이름은>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을 아우르는 테마는 '날씨'인데, 특히 '비'는 영화에서 저임금 노동력으로 도시의 저변에서 살아가는 소년의 어두운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신카이 감독이 영화의 모티브를 얻은 것은 2016년 여름이라고 한다. 영화 <너의 이름은>이 공개된 뒤 프로모션을 위해 전국을 순회할 때 자주 올려다본 여름 하늘에는 거대한 적란운이 있었다. 일본 여름을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다.

무더위로 도시가 뜨거워지면 거대한 구름 기둥인 적란운이 하늘 끝을 향해서 치솟아 오른다. 적란운은 구름이 만들어지는 한계 높이에 달하면 옆으로 커져 거대한 접시 모양을 만든다.

신카이 감독은 이런 적란운을 보면서 적란운이 만든 구름 접시 위에서 뛰어놀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굳이 적란운은 아니더라도 구름 위에서 뛰어노는 상상은 누구라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구름이나 비 같은 날씨와 관련된 현상은 일상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먼 하늘에서 벌어지는 기상 현상은 개인의 일상과 기분은 물론이고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비'는 일본인들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상 현상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강우량도 많고 비 오는 날도 많다. 그래서 비에 대한 용어가 유독 많다. 내리는 시기나 정도에 따라서 비와 관련된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비와 관련된 단어가 4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용어는 '사납고 맹렬하게 내리는 비',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 '은혜의 비', '기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사납게 내리는 비'는 귀신 비(鬼雨), 심하게 내리치는 비(飛雨)로,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는 산적 비(山賊雨), 백우(白雨), '은혜의 비'는 설해우(雪解雨), 감우(甘雨), 희우(喜雨), 곡우(穀雨)로, '기타'로는 세차비(洗車雨), 고양이 털 비(猫毛雨) 등이 있다.

비에 대한 정보를 소홀히 했다가는 일본에서는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만큼 여름철에는 예기치 않은 비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도심에서도 침수, 누전으로 인한 정전, 급류로 인한 사망사고 등 도시형 수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 기상청은 날씨의 위험성을 제대로 전달하면서 사람들이 신속하게 피난하도록 하기 위한 용어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다. 폭우나 기습 소나기 같은 용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용어들로는 갑작스럽게 내리는 폭우의 위험성을 강도 높게 경고하고 서둘러 피난하도록 유도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2008년까지만 해도 도시형 수해 상황에서 국지적인 호우, 대포 호우, 격렬한 뇌우 같은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면서 위험성을 알리는 통일된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국은 매체에 따라 위험하다는 이미지를 다르게 사용하면 사람들이 가장 약한 메시지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일본 사회는 특히 3.11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이런 교훈을 더욱 뼈저리게 얻었다.

그래서 이런 도시형 수해 피해를 경고하는 용어로 등장한 용어가 '게릴라 호우'다. 여름철이면 '게릴라 호우 예측 불능', '관동 지역 게릴라 호우'라는 제목이 심심찮게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날씨 예보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한다.

'게릴라'라는 표현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폭우의 위험성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예보를 듣고 바로 대처하지 않으면 생명이나 재산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가 포함돼 있다.

'게릴라 호우'라는 단어가 정착되면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재시설의 기준도 강화됐고 게릴라 호우로 내린 비를 가두기 위한 저수지와 거대한 지하 방수로도 수도권 인근에 건설됐다. 도쿄의 북쪽에는 <반지의 제왕> 속 모리아의 거대 지하도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지하궁전(수도권 외곽 방수로)도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없던 게릴라 호우의 잦은 등장은 일본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도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일이 더 빈번해지고, 정도도 더 심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상 기상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기후변화 탓에 기상재해가 일상이 될 거란 얘기도 나온다. 달라진 기상조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적절한 대비가 어디서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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