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직업으로서의 창작은 '괜찮지 않은 일'

윤덕원 |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컬 겸 베이시스트

SBS 뉴스

작성 2019.07.05 11:01 수정 2019.07.05 19:2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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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는 최근 정규 3집 앨범을 발표했다. 꽤 오랜만의 앨범인데, 따져보니 2집이 나온 지 8년 7개월 만이다. 첫 앨범과 두 번째 사이에는 2년 남짓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그 몇 배가 훌쩍 넘게 걸려버린 것이다. 물론 그사이에도 개인 작업을 하고 싱글을 발표하긴 했지만, 작업의 속도가 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 시간의 차이가 좀 극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뭐 대단히 특별한 일은 아니다. 많은 음악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는 편인 것 같다.

우리 팀의 경우는 건강 문제와 출산, 육아 등 개인적인 이유들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어른들의 사정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면 또 다른 근본적인 이유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을 하기 이전부터 쌓아왔던 무엇인가가 소진되고, 그 자리를 새롭게 채워가는 데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새 앨범이 나오기 직전 박준 시인과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3집 앨범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면서 박 시인은 우리에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난 뒤의 폐허와 거기서 무엇인가를 일궈야 하는 막막함'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시인 본인이 작년 말에 두 번째 시집을 발표하고 한창 그 문제로 골몰했었나 보다. 나로서는 막상 그 인터뷰를 할 때는 앨범 작업이 끝나기 전이었기에 맹맹한 답을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폐허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인가 창작해 내는 일은 그런 막막함과의 끝없는 싸움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아주 찰나의 일로, 대부분의 시간은 무엇인가 떠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고, 떠오른 조각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시행착오를 하는 시간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따라서 마음은 더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조급해진 마음은 할 필요가 없었던 시행착오를 더 많이 하게 만들고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이제는 경험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해결책을 아는 것과는 별개로.

소진된 상태로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나가는 건 다 쓴 치약 튜브를 붙잡고 씨름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매번 최대한의 힘과 기술을 이용해서 그것을 쥐어짜 어떻게든 양치를 할 수 있을 만한 양의 치약을 짜내는 데 온 힘을 다 쓰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지친 상태로 일상으로 돌아가느라 새 치약을 사는 것을 잊게 되는데, 그렇기에 다음번 양치는 더욱더 힘들고 고된 일이 된다. 그러다 보면 기상천외한 치약 짜기 기술을 터득하거나 하는 일들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몇 번이나 생길 수 있는 행운은 아닐 것이다.

'그냥 새 치약을 사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그게 잘되지 않는다. 소진돼 비어버린 내면을 새롭게 채우는 일은 쉽지 않다. 하물며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창의적인 결과물들로 그 안을 채워야 한다면, 어디서도 그런 새 치약을 사는 건 쉽지 않다.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 보컬 겸 베이시스트 윤덕원음반이 아니라 싱글을 자주 발매하는 것이 요즘 시대에 걸맞은 창작 방식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도 꽤나 오래됐다. 주변을 둘러보면, 음악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새 결과물을 발표하는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결국 항상 무엇인가를 생산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자주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그럴수록 나는 빈 주머니를 더 자주 만지작거리게 된다. 누군가 우연히 찾았을 때 시원한 물이 가득한 샘처럼 스스로가 충실히 채워져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생활인으로서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도 필요하다.

꾸준하고 왕성하게 창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그렇게 지내왔지만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전업 음악인으로 살아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창작은 점점 더 어렵기만 하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업계의 변화상을 지켜봐도 그렇다. 아, 그래서 어른들이 '기술을 배우라'고 했던 건가.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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