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이 소중하고 소중한 스타성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19.06.30 07:20 수정 2019.06.30 13: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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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96 : 이 소중하고 소중한 스타성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된장찌개, 계란말이로 번 돈에다가 대출을 좀 껴서 건물을 세우고 쌈밥집을 차렸다. 그야말로 1년에 딱 한 번 명절 빼고는 쉬지 않고 밥장사만 했다. 그러는 동안 갈비뼈도 나가고, 무릎 십자인대도 다쳤다. 수술을 하고 좀 쉬어야 하는데 바로 김장을 하고 반찬을 무치고 쌀을 지는 바람에 제대로 낫질 못 했다. 그러다 일흔 살이 넘으니까 낫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이냥 저냥 살다 죽는 거구나 했다. 포기했다는 말이 맞다. 어느 순간 내 인생이라는 것을 포기. 그냥 지금 식당 잘 유지하고 우리 딸한테 물려주고 애들한테 피해 안 끼치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박막례)

여기까지는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 상당수가 공유해 온, 우리가 익히 듣고 보고 알아 온 그 삶입니다. 그런데 70년 동안 '그때 그 시절 일어났을 법한 일만 일어나 온' 이 삶이 71년째를 맞으려는 순간, 벼락같은 반전이 찾아옵니다. 아마도 2년여 동안, 방탄소년단을 제외한다면 가장 빠르게 글로벌 인지도를 높인 한국인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의 이야깁니다.

2017년 1월, 할머니를 모시고 단둘이 호주여행을 다녀온 손녀, 김유라 씨가 '우리 할머니 너무 재미있는데 혼자 보기 아깝다'며 한번 올려보기 시작한 유튜브 동영상이 속된 말로 '빵' 터지면서, 이 '벼락출세기'는 시작됐습니다.

유튜브 CEO가 오직 박막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하고, 구글 ceo의 초대를 받고, 세계 각국에서 여행을 와달라며 비즈니스석과 하룻밤 수십만 원짜리 호텔을 제공해 오고, 그래서 훌쩍 가봤더니... 스쳐 지나던 낯모르는 세계인들이 당신을 자기네 나라 TV 뉴스에서 봤다, 당신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있다... 말을 걸어오는 인생.

드라마보다 극적인 이 현실에 함께 기뻐하고 있는 박막례 채널 구독자가 100만 명 가까이 이르는 지금,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김유라 씨가 책을 펴내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맨 처음 본, 그 빵빵 터지는 할머니와 손녀의 호주여행 동영상은 고생만 하며 살아온 70 평생 끝에 치매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박막례 씨를 그대로 놔둘 수 없어서 20대 손녀 김유라 씨가 퇴사를 감행하고 모은 돈을 털어 떠난 여행이었다고요.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매 위험 진단을 받은 날,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인생은 진짜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할머니와 둘이 호주로 떠났다. 다니던 회사는 그만뒀다. 왜 꼭 퇴사까지 해야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일단 그 회사라는 것이 '할머니를 위한 효도여행'이라는 이유로 휴가를 흔쾌히 내주지 않았다. 회사 대표와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 눈물을 쥐어짜내며 내가 왜 우리 할머니랑 지금 당장 둘이 여행을 가야만 하는지에 대해 브리핑을 하는데도 '유라 씨는 참 철이 없네'라는 눈빛을 받아야만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떤 생각에 단단히 미쳐 있었다. 우리 불쌍한 할머니,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손녀 겸 '박막례 채널' 연출자 김유라)

워낙 화제의 인물들이다 보니, <북적북적> 이전에도 여러 미디어에서 이 책을 다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에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실제로든 마음속으로든 이 한 마디를 되뇌어 보았을 이 땅의 –거의 모든- 어머니와 딸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어."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이어야 할 판단과 감정의 무게가 실려있는 말이죠.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상투적인, 그야말로 일반적인 정서이기도 해서,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조차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낯설고도 반갑습니다. "할머니처럼 살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할머니를 보면서 꽤 멋진 70대를 꿈꾸게 된 손녀와 할머니의 이 '실시간 뒤집기 한 판'이요.

'전반전'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책의 전반부엔 유튜브 스타가 되기 전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이 압축적으로 서술돼 있습니다. 어쩌면 그 동년배 중에서도 평균 이상으로 신산하고 고되고 억울한 삶을 70 평생 이어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박 스타님'은 그 삶에 지지 않고, 유머와 웃음과 거침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유연한 사고에의 창문을 열어두는 것, 세월에 빛바래지 않은 열정과 호기심 가득한 마음만으로 젊은이들의 롤모델로 거듭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어제가 끔찍했다 하더라도, 오늘이 행복할 수 있고 내일이 두근거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유튜브가 만든 스타임에는 분명하지만, 유튜브라는 그릇 안에 담아 내놓은 그 내용물은 분명 박막례 할머니만의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많은 어머니들도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형언하기 어려운 마음이 드는- 특별함입니다.

"할머니한테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게 오늘의 하이라이트인데 못 보고 가면 너무 아쉬우니까. 아, 근데 우리 할머니는 스노클링 때문에 이미 바닷물에 정이 뚝 떨어진 상태였다.

"예약까지 했는데, 안 할 거야? 진짜 안 할 거야?"

재차 물었지만 안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즐겁자고 하는 일을 강요해서도 무리해서도 안 되니, 그냥 하지 말자고 했다. 말은 그래도 아마 내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을 거다.

할머니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비장하게 일어섰다."
(유라)

"자꾸 나를.... 꼬시더라고.

결심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 죽으면 내 보험금 니가 타먹어라!"

오메, 안 들어갔으면 진짜 후회할 뻔했시야?

그 가이드 아저씨 말이 맞았시야?

세상천지 그렇게 큰 물고기 처음 봤다!

진짜 숨쉬기도 편하고, 사진 찍기도 편하고, 내 안방같이 바닷속을 걸어다녔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런 바다가 있고, 이런 물고기가 있고....

나는 진짜 바보였구나."
(막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걸 봐도 할머니는 껍질 색깔이 어떻고, 꼭지가 어떻고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사소하게 여기고 눈여겨보지 않은 것들을 할머니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수없이 먹어본 파스타지만 할머니는 먹을 때마다 맛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세심하게 잡아냈다.

나이가 많으니 세상에 무뎌졌을 거라는 내 생각은 틀렸다. 손끝은 무뎌졌을지 몰라도 할머니의 감각은 초롱초롱 빛났다. 모든 것에 반응하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했다.

할머니보다 훨씬 적게 살았으면서 나는 뭐가 그리 익숙했을까.

뭘 다 안다는 듯이 살았을까.

할머니 덕에 나도 '처음'이 주는 설렘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은 언제든 초면이 된다."
(유라)

박 스타님과 김 피디님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엄마들, 우리 할머니들의 삶을 강하게 긍정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분들의 영상을 보고, 책을 찾아 읽는 행위의 한구석에는, 우리 엄마들도, 할머니들도, 이제 고생하지 않고, 소외되지 않고, 구석으로 밀려나지 않고, 존재가 무시당하지 않고, 매순간 이렇게 행복해 달라는 우리 마음속의 소망들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몇 살이더라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더라도, 나에게 기대되는 앞으로의 날들이 얼마나 뻔하고 뻔해 보일지라도... 내가 삶과 나 자신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나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박막례 할머니의 진정한 스타성입니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실은 모두 이런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져요.

"할머니 멀미 안 해?"

"나는 차를 타도 멀미를 안 하고 비행기를 타도 멀미를 안 하고, 이런 배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여행할 사람이었어야. 이 파도도 즐길란다."

우리 할머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할머니가 이렇게 긍정적인 분이라는 걸 전에는 미처 몰랐다. 성격이 화통하다고만 생각했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식당에서 손님과 멱살 잡고 싸우는 걸 본 적 있다. 어떤 회사에 밥을 대줬는데 대금을 못 받은 것이다. 할머니 혼자 덩치 큰 아저씨 멱살을 잡고 싸우는 걸 보고 '우리 할머니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진짜 억세고 무섭구나'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도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할머니 말로는 할아부지를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단다. 할아부지가 하도 '나쁜 놈'이어서 집을 나갔고 할머니 혼자 삼남매를 키워야 했다. 어릴 때부터 엿장사, 떡장사, 안 해본 게 없었다. 그러면서 성격도 바뀌었다. 그렇게 변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나 혼자 자식새끼 셋을 키울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여행이 거듭될수록 할머니는 잊고 살던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으로 가득 찼던,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그 시절의 자신을.

일주일 동안 매일 파티를 하는 세상에서 꿈을 꾸다 온 것 같았다. 특히 할머니에겐 더 그랬을 것이다.

"난 내릴 생각 없시야. 유라 너 혼자 가그라, 집에."

안 돼, 가야 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곳이 더 많으니까."
(유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눈물이 펑펑 나는데 정작 할머니는 응급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덤덤했다. 눈물을 닦으며 반성하는 날 보고 할머니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야, 다친 것도 추억이여. 이런 건 영광의 상처다. 내가 도전하려고 했다가 생긴 상처라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할머니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직접 타봤으니까 계모임 친구들에게 이게 왜 X 같은지, 왜 타지 말아야 하는지 설명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해봤으니 그걸로 만족이라고 했다.

"만약 안 탔으면 나는 밑에서 저 카트가 무서운지도 모르고 부러워만 했을 거 아녀. 저거 X 같은지도 모르고!"

그러고는 탈탈 털고 일어나 할머니는 먼저 길을 나섰다."
(유라)

김유라 씨의 콘텐츠 기획력이나 할머니와 삶에 대한 태도에도 경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뉴미디어 채널 기획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김유라 연출이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특히 궁금하겠죠. 그 얘기도 물론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박막례 채널의 여정에서 (앞으로도 쭈~욱 뻗어나가실 박 스타님 커리어에서 아마도 1막 정도의) 클라이맥스를 찍은 유튜브 CEO나 구글 CEO와의 만남 뒷얘기도 물론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북적북적에서는 오롯이 박막례 할머니의 소중한 스타성, 할머니의 목소리와 표정들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습니다. 위의 이야기들은 책을 통해서 확인해 주시면 좋겠어요^^ (팔딱팔딱 활력이 넘치는 사진들도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박막례 할머니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이 관심을 갖는 클라이맥스가 아닐 거라고 감히 생각해 봤어요. 손녀와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의 무수한 초청과 찬사를 받고.. 새로운 삶을 경험하던 할머니가 어떤 마음에 이르시게 됐는지, 제게는 살짝 벅차기까지 했던 말씀들이 있습니다. 꿈 같은 반전 인생의 초입에서,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같이 들어봐 주세요.

"그게 뭔 감동이냐고? 나이 들면 말 걸어주는 게 감동이여. 무슨 말인지 몰라도 자꾸 나를 신경 써주는 것 같아서 좋았던 거여!"

"내가 물어봤다. 우리 통역사한테!

저 할머니는 도대체 몇 살인데 여기서 알바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미국은 자기 능력만 되면 한단다. 나보다 나이 많은 백발 할머니도 앞치마 둘러매고 일하니까 내 기분이 다 이상하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감동'이라는 것 같어.

나도 혹시 여기서 일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와버렸다.

.......

구글 I/O 행사장에 모인 이 사람들은 어디서 다 모였을까?

다들 세상 돌아가는 거에 관심이 많구나. 나만 아무것도 모르고 된장찌개만 끓이고 살았구나.

뭔가 욕심이 생겼다.

나도 세상 돌아가는 거,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겠단 마음이 드는 거야."
(막례)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김유라 씨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는 이 책에서, 박막례 할머니 부분은 할머니의 사투리가 섞인 입말을 살려 쓰였습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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