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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부가 파킨슨병 증세 부린다"…정치권 또 등장한 '병명 공세'

[취재파일] "정부가 파킨슨병 증세 부린다"…정치권 또 등장한 '병명 공세'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계속 고집해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똥고집을 부리는 파킨슨병 증세를 부리고 있다."

84일 만에 국회 본희의가 열렸던 어제(28일), 오전 9시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국회 정상화 합의의 한 축인 나경원 원내대표의 말에 취재진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나온 한 의원의 공개 발언입니다. 이 발언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교섭단체 3당 합의가 성사되고 본회의에서 표결이 진행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 주목받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발언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자유한국당에서 '소득주도성장 폐기와 경제활력 되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장'이란 직함을 맡고 있는 재선의 경기도 하남시 지역구 국회의원 이현재 의원입니다.

● '암세포, 무기력증, 우울증, 약물중독' 그리고 '파킨슨병 증세'

문제의 발언은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이 차례대로 발언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이해를 돕고자 이현재 의원의 발언 전체를 가져왔습니다.

"사람도 중병에 걸리면 건강검진을 통해서 의사의 처방대로 처방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한국경제 위기 지표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을 통해서 한국 경제를 점검한 결과 한국 경제는 심각한 응급상황이고 경제 난국 상태로 점검됐다는 보고를 드립니다.

경제성장률은 노무라 증권이 전망한 바에 따르면 1.8%에 이를 것이다. 그래서 기초체력이 고갈되고 있고 국가부채는 1,700조로 심각한 비만 상태고, 기업투자는 설비투자가 -4.8%로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심각한 심근경색상태다. 최저임금은 2년간 29.1% 인상해서 우리 한국 경제의 암세포가 확산 되고 있다. 수출은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해서 무기력증을 보여주고 있다. 재정투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추경을 반복하는 심각한 약물중독 상태에 이르고 있다.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계속 고집해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똥고집을 부리는 파킨슨병 증세를 부리고 있다. 국민총소득은 2019년 1분기 명목GNI가 -1.4%로 10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해서 한국 경제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들고 있다. 실업률은 5개월 연속 4%로 하락해서 청년층을 비롯한 국민의 실업이라는 고소공포증에 떨고 있다.

따라서 중병 환자가 건강검진을 통해서 병을 치료하듯이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실패를 인정하고 현재 심의 중인 최저임금을 심의위원회가 심의 중인 최저임금을 최소한 내년은 동결해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을 높이는 경제개혁을 단행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부 여당은 자유한국당이 제안한 경제청문회를 통해서 즉시 경제상황을 면밀히 점검해서 적극적인 대책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이상입니다."
(지난 28일,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 중 이현재 의원 발언)

● '실패한 경제정책으로 똥고집 부리는 정부' = 파킨슨병 증세?
이현재 의원 브리핑
이현재 의원은 준비해 온 큼지막한 표를 방송사 카메라에 보이게 한 뒤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회의를 앞두고 미리 만들어놓은 표로 보입니다. 제목은 '한국경제에 대한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 직접 내린 판정은 '총체적 난국 상태'였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그 결과에 대해 자체 진단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 아래 '주요 요인별 평가 결과'라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경제성장률, 국가 부채, 기업 투자 등 각종 요소에 대해 마치 의사처럼 진단을 내렸는데 이 과정에서 '암세포 확산' '약물중독 심각' '파킨슨병 증세'라는 표현을 써 비유했습니다. 정부의 경제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발언은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특정 질병의 이름을 가져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데 가져다 쓴 것은 몇 가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앓고 있는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 중의 하나입니다. 퇴행성 뇌 질환 가운데 치매 다음으로 많이 앓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파킨슨병을 앓게 되면 행동이 느려집니다. 근육이 강직되면서 자세가 불안정해 거동이 불편해집니다. 운동 장애가 진행될수록 걸음을 걷기 어렵고 심하면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말이 느려지고 얼굴 표정이 없어지며 몸에 떨림이 일상화되는 증상도 수반됩니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준 파킨슨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는 우리나라에만 10만 6499명. 갑자기 찾아온 파킨슨병으로 노년을 힘들게 보내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수치입니다.

● 환자와 가족에게 평생의 아픔인 '파킨슨병'...해명 들어봤더니

그렇다면 이현재 의원은 왜 '파킨슨병 증세'라는 표현을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는데 가져와 썼을까요? 직접 물어봤습니다.

"건강이 안 좋으면 몸에 여러가지 병이 생기잖아요? 그것을 하나씩 단순하게 연결시켜서 비유한 겁니다. 병명이야 우리가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경제도 이렇게 중병과 같다고 표현하려고 비유한 거예요. 파킨슨병 환자들을 지칭해 한 말이 아니고 병명 자체를 이야기한 거예요."
(자유한국당 이현재 의원, SBS와 29일 전화 통화에서)

쉽게 말해 '단순한 비유일 뿐 의도가 있는 말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근육 강직 등 파킨슨병의 증상을 고려하고 한 말도 아니라는 해명입니다. 파킨슨 환자나 가족들이 들으면 불쾌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이현재 의원은 이에 대해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대답을 반복했습니다. 해당 발언은 충분히 할 수 있는 표현이었고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의견도 거듭 밝혔습니다. 파킨슨병 환자나 가족들에 대한 사과 또는 유감 표시 의사는 피력하지 않았습니다. 이현재 의원의 이런 해명, 어떻게 봐야 할까요.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최저임금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유한국당 이현재 의원이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파킨슨병은 퇴행성 질환인만큼 완전히 없어지는 경우가 없어 쉽지 않은 병입니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순간이 환자와 가족들 모두에게는 평생 동안 마주할 힘겨운 투병 생활이 시작되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일상생활 도중에도 순간적으로 넘어져 골절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군가 늘 곁에서 보살펴야 합니다. 투병 과정이 환자와 가족의 일상이 되는 병인 셈입니다.

● 국회의원이 갖는 말의 무게…'병명'을 이용한 정치 공세의 저급함

선거로 선출되는 국회의원은 자신이 하는 말의 무게를 특별히 느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란 지위가 주는 권한 모두가 유권자인 시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공세를 위한 비유 등의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언 의도와 관계없이 특정 표현으로 상처받는 시민들이 있다면 자제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하물며 그것이 평생의 투병 생활을 마주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발언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국회
지난달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황교안 대표를 지칭한 '사이코패스' 표현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한센병'을 언급했다가 사과했습니다. 김현아 의원은 "부적절한 비유로 고통 받고 계신 한센병 환우들과 그 가족분들께 심려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제가 여러분의 마음에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저의 진심은 그것이 아니었다고 말씀드린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구절절 해명하지 못함은 행여나 더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남은 의정활동을 성실하고 진실히 해 나감으로써 그 빚을 갚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의 수준을 떨어트리는 '막말'은 늘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특정 질환의 이름을 언급하는 '병명 공세'도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와 관계없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표현을 정치적 공세에 이용하는 것은 정치인의 낮은 의식 수준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때때로 정치는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고 말하지 못해 더 큰 잘못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감 능력을 상실한 정치는 한계가 명확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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