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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상계(相計)'라는 이름의 함정

[취재파일] '상계(相計)'라는 이름의 함정
첫 번째 취재파일에서 하나투어가 현지 여행사들에게 줘야하는 돈, '지상비'를 제때 주지 않는 미지급금 문제를 다뤘는데요. 이번에는, 하나투어가 이런 미지급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 '상계'의 함정

상계(相計)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서로 대립하는 동종의 채권·채무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채권과 채무를 대등하게 소멸하는 의사표시를 일컫는 말입니다. 제가 동료 A에게 줘야할 돈이 10만 원 있고, 동료 A로부터 제가 받아야할 돈이 5만 원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런 경우 양쪽이 10만 원과 5만 원을 각각 주고받는 게 아니라 제가 '(줄 돈) 10만 원에서 (받을 돈) 5만 원을 빼고 빚이 5만 원 남은 걸로 할게요'라고 처리하는 게 상계입니다.

하나투어도 전 세계 현지 여행사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계처리를 종종 합니다. 현지 여행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도난이나 교통 사고가 있으면 하나투어가 먼저 여행객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현지 여행사에 지급해야 할 지상비에서 그만큼 줄여서 송금할 때 상계 합의서를 작성하고 처리하는 식입니다. 서로 줄 돈, 받을 돈이 있을 때 합의하에 이렇게 처리하는 건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투어는 현지 여행사에게 못 주고 있는 돈을 처리할 때 '상계'를 활용했다고 홍콩 현지 여행사는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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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맨 위에 기존 지상비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현지 여행사가 하나투어로부터 받아야 하는 돈이죠. 그런데 왼쪽에 '추가 정산'이라는 항목이 별도로 있습니다. 이건 하나투어가 실제로 현지 여행사에게 보낸 돈입니다. 맨 위에 있는 상품 코드를 보면 원래는 7,740,800원을 현지 여행사에게 줬어야 하지만, 하나투어는 8,240,000원을 보냈습니다. 추가로 500,000원을 더 얹어서 (또는 말아서) 준 것입니다. 그렇게 더 얹어서 준 돈이 저 한 페이지에서만 2백 80만 원이 넘습니다. 저런 방식으로 처리한 돈을 다 합치면 1억 6천만 원 정도가 된다는 게 홍콩 현지 여행사의 설명입니다.

안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요? 그건, 그나마 원래 줄 돈에 정상적으로 돈을 더 얹어서 줄 때 이야기입니다. 하나투어가 저렇게 추가로 얹어서 미친 듯 보내는 돈 뒤에는 덫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은 '특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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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투어 담당자가 홍콩 현지 여행사에 보낸 메신저 쪽지입니다. 캐주얼 10불, 클래식 20불로 미수 상환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암호 같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서는 하나투어의 여행상품 분류를 먼저 알면 도움이 됩니다. 하나투어 여행상품은 가격이 높은 순으로 클래식-캐주얼-이세이브로 분류되는데요. 클래식 즉 가장 고품질 여행 상품에는 1인당 20달러를, 중간 정도 상품인 캐주얼에는 1인당 10달러를 더 얹어서 보내겠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이 가격이 현지 여행사와 하나투어가 최초 협의했던 금액이 아니라는 데서 발생합니다. 어떤 상품을 만들고 여행객을 모아서 보내기 전에 가격은 미리 정해집니다. 하나투어와 현지 여행사간 협의를 통해서죠. 예를 들어 '가'라는 지역으로 가는 캐주얼 여행상품은 1인당 30달러를 하나투어가 현지 여행사에 준다고 정하는 식입니다. 정해진 대로 송금을 하면 될 것을, 중간에 저렇게 따로 쪽지를 보내는 이유는 특별가격 다시 말해, '특가'를 요청하는 겁니다. 원래 1인당 30달러였던 '가'지역 여행상품을 10달러 깎아서 20달러로 하겠다는 거죠.

결국, 1인당 30달러였던 게 10달러 깎아서 20달러가 되면 10달러라는 차액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10달러는 하나투어가 현지 여행사에 줘야할 돈을 갚는데 쓰입니다. 캐주얼 10불, 클래식 20불로 미수를 상환한다는 이야기는 결국 원래 협의했던 상품 가격에서 각각 10달러, 20달러를 깎고 그 돈으로 '미지급금'을 갚겠다, 이런 소리인 겁니다. 하나투어가 현지 여행사에 줘야할 돈과, 상품 가격을 (비자발적으로) 깎아주면서 생긴 돈을 상계처리하는 겁니다. 현지 여행사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입니다. 하나투어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는 미수 금액이 쌓여있는 것도 억울한데, 이걸 내가 정상적으로 받아야 하는 상품 가격을 깎아서 변제해야 하니까요. 내 돈으로 하나투어 빚 갚는 꼴이 되는 셈입니다.

미지급금을 속전속결로 털어낼 수 있었던 건 한마디로 '특가'라는 옷을 입은 '상계처리'라는 게 홍콩 현지 여행사 사장 부부의 주장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현재 하나투어와 현지 여행사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돈을 갚은 게 아니라 이렇게 '상계'를 통해 줘야할 돈을 장부상에서만 없애 버렸다는 현지 여행사. 합의를 통해 가격을 낮췄고, 얹어 주는 방식이었을지라도 돈을 갚았다며 줄 돈은 현지 여행사가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하나투어가 맞서는 상황입니다.

● 이거 받고 끝내자

하나투어가 미지급금을 털어내는 또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이른바 '탕감'입니다.

저희 취재진은 유럽에서 10년 넘게 현지 여행사를 운영하며 하나투어로부터 여행객을 받았다는 사장을 만났습니다. 사장은 영국 런던에 있는 하나투어 유럽 법인과 체결한 합의서를 보여줬는데요. 아래 사진이 바로 그 합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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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합의서는 2009년 4월에 작성됐습니다. 합의사항은 몇 줄 없습니다.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 간 하나투어 본사와 거래하면서 생긴 미지급금 중에 일부를 탕감해서 12만 유로, 우리 돈 1억 6천만 원을 하나투어 유럽 법인이 사장 회사에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얼마를 탕감한 것일까?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각서 쓸 때 내가 약 38만 유로인가 45만 유로인가, 다 탕감하고 내가 이 액수 받기로
하고 사인한 거예요.]


받아야 할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탕감해주고 끝이 났다는 겁니다. 탕감해준 게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 4억 원인데 받은 돈이 1억 6천 원이니 탕감해준 게 배나 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이런 합의서를 써준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하나투어로부터 계속 여행객을 받으려면 합의하는 것 말고 길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걸 받고 내가 일을 해야 되니까. 제가 그 다음에 몇 년을 더 했잖아요.]

취재 중에 연락이 닿은 또 다른 여행사 사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저도 못 받은 돈이 있었는데 합의했어요. 저쪽(하나투어)에서 그러더라고요. 공문을 보내라, (미수금) 안 받는 걸로 해서 도장 찍어서 보내라 해서 보냈죠.]

[거래를 위해서 그랬죠. 거래 정지가 됐거든요. 팀을 안 주는 거래 정지가 되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당장 행사를 치러야 하는데 방법이 없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가 더 그랬어요. 합의서 보냈는데 여행객도 안 보내고.]

다른 여행사 사장은 주기적으로 하나투어에 작성해서 보낸다는 확인서도 보여줬습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미수금이 없다는 내용으로 확인서를 보내달라'는 하나투어 담당자의 쪽지를 읽으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하나투어는 여행업계의 '삼성'이자 '하나님'이라고 현지 여행사 사장들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저렇게 요청해 오면 '못 받은 돈 있어요!'라고 써서 보낼 간 큰 현지 여행사가 있긴 할까요.

'탕감'에 대해 하나투어에 처음 물었을 때 하나투어는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런던 법인이 자체적으로 거래한 행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라는 이유입니다. 말을 뒤집으면 본사에 보고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정리한 미지급금은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저희 보도가 나간 후 한 시민단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하나투어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하나투어가 외부 회계 법인에 맡긴 조사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여행업계에서 반복되어온 이런 악습이 끊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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