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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왕정국가 유력자에 대한 '국가적 환대'

[취재파일] 왕정국가 유력자에 대한 '국가적 환대'

정부는 국빈급 의전…삼성·현대차 등 5대그룹 총수 총출동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작성 2019.06.27 14:07 수정 2019.07.01 12: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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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와 재계의 이목은 온통 사우디아라비아 부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에 쏠렸습니다. 일본서 열릴 G20 회의에 가는 길에 잠깐 들렀을 뿐인데도 정부는 국무총리가 공항 영접을 나가는 등 국빈급 의전으로 그를 맞았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대로라면 그가 방한에 맞춰 주도한 양국 간 경제협력(MOU) 규모만 83억 달러(10조 원)에 달합니다.

'돈 보따리' 앞세운 중동 실세를 재계도 환대했습니다. 어젯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단독 만찬을 끝낸 빈 살만이 삼성 영빈관 승지원을 전격 방문한 겁니다. 이 자리엔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총수들이 먼저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따로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이례적입니다. 사우디 측 요구로 성사된 이 자리에서 총수들은 빈 살만과 차를 마신 뒤 돌아갔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빈 살만과 따로 20분간 더 만남을 가졌다는 후문입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빈 살만을 환대한 건 그를 통해 제2의 '중동 특수'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산업화 시절 중동에서 벌어들인 달러로 성장한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빈 살만은 사우디의 석유 의존 경제를 첨단 기술 중심으로 바꾸려는 7천억 달러(808조 원) 규모의 국가 산업부흥 프로젝트 '비전2030'을 주도하고 있으니 기업들로선 중요한 '고객'인 겁니다. 재계에선 삼성 이 부회장이 얼마 전 삼성물산을 찾았던 것도 5천억 달러(578조 원) 규모의 사우디 북서부 해안 신도시 '네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양해각서 체결식의 문재인 대통령-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진=연합뉴스)정부와 기업이 돈 벌어보겠다고 왕정국가 유력자를 대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어딘지 '낡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구 언론에서 이름 머리글자를 따 MBS라는 약칭으로 부르는 빈 살만의 별명은 '미스터 에브리싱'입니다. 모든 걸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무서운 의미죠. 2017년 무력으로 사촌형을 감금해 왕세자 자리에 오른 뒤 차례로 사촌 왕자들을 숙청한 그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별명입니다. 여성운전 허용 같은 '개혁적' 모습을 서방세계에 어필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자를 남의 나라에서 엽기적으로 살해한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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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앞에 '윤리'나 '가치'는 좀 뒷전으로 미룰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최근 사우디 경제실적을 보면 세계 기업인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7년 사우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14억 달러(1조 6,100억 원)에 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빈 살만이 의욕적으로 비전2030을 발표했던 2016년 75억 달러에 비해 초라한 수칩니다. 언론인 살해 직후에만 800억 달러가 빠져나갔습니다. 왕정국가의 비밀스런 권력자 '빈 살만' 존재자체가 리스크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겁니다. 실제로 빈 살만은 지난해 8월엔 캐나다가 인권문제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캐나다 내 자산을 회수하고 자국민을 철수시키는 이해 못할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21세기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를 두는 국가와의 교류·협력이 때로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는지는 지난 '사드 사태' 때 지독히 겪었습니다.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정부 간 교류와 기업의 투자에도 원칙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국격과 글로벌 기업의 세계적 평판은 그렇게 좌우됩니다. 이번 '국가적 환대'가 "권력자만 어떻게 구워삶으면 되겠지"라는 지나간 시대의 발상에서 비롯된 게 아니길 바랍니다. 당장의 '사우디발(發) 돈 보따리'라는 것도 MOU에 불과한 만큼, 낭패 볼 일 없게 냉정함을 유지하며 실리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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