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기생충' '알람충' '스포충'…벌레들로부터 내 영화를 지키는 법?

김영아 기자 youngah@sbs.co.kr

작성 2019.06.27 14:2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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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기생충 알람충 스포충…벌레들로부터 내 영화를 지키는 법?
(주의 : 이어지는 글 속엔 읽는 이에 따라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로 여길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먼저 고백부터 해야겠습니다. 저는 사실 '벌레'입니다. 거리나 사무실, 식당 같은 곳에선 이런 제 본색을 알아채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제 정체성이 드러나는 곳은 영화관입니다.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모두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을 때 중간중간 번쩍이는 전화기 불빛으로 분위기를 깨는 자. 맞습니다. 저는 많은 영화 팬들이 공적 1호로 꼽는 바로 그 '알람충'입니다. '폰딧불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지요.

다른 이들의 즐거운 관람을 방해하고 피해를 주는 건 무례하고 교양 없는 행동입니다. 잘 알면서도 영화관 안에서 전화기를 꺼 버리지 못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통신축선' 상에 있어야 하는 직업 탓입니다. 어쩔 수 없이, 눈부신 LED 등이 반짝거릴 때마다 민망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스스로 면죄부를 주면서 벌레로 살고 있습니다.

'벌레'로 불리는 건 어느 사회에서나 몹시 모욕적인 일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선 유난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충'이라는 한 글자에 담긴 혐오와 경멸에 묻어 있는 '냄새' 탓입니다. 코를 찌르는 그 악취는 주로 '나'와 '그들' 사이에 선명하게 그은 "선" 틈으로 흘러나옵니다.
영화관 좌석 10년에 한번 교체'맘충'같은 예에서 잘 드러나듯, 한국 사회에서 '충'은 꽤 자주 행위 자체에 대한 비난이나 경멸을 넘어 '그들'을 향한 적대와 배타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더 독하고 더 폭력적입니다. 음식 냄새, 담배 냄새, 덜 마른 빨래 냄새 같은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하철 타는 사람들한테서 나는 냄새"처럼.

최근 영화가엔 '알람충' 못지않게 집중포화를 받는 대상이 있습니다. 이른바 '스포충'입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원치 않아도 가끔 남들이 '스포'라고 여기는 것들을 '날릴' 때가 생깁니다. 그러니 스포충도 되는군요.

'스포일러'는 망친다는 의미의 동사 스포일(spoil)에 행위의 주체를 나타내는 접미사 어(er)가 붙은 단어입니다. 무언가를 망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엄격히 말해서 '스포일러'는 영화의 재미나 감동, 의미를 망치는 정보를 주는 사람 혹은 그런 정보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스포일러에 대한 공포가 지나치게 확산하면서 스포일러라는 단어의 의미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모든 정보가 스포일러로 통칭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를 즐기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들마저 자주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죠. 악성 정보는 자제하는 것이 맞겠지만, 스포일러 막자고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건 빈대 잡으려 초가집 태우는 격입니다. 그냥 볼 때보다 정보를 갖고 보면 더 재미있고 의미가 느껴지는 영화들도 많으니까요.
영화 '기생충'예를 들면, 저는 '기생충'을 두 번 봤습니다. 두 번째 보던 날, 집 앞에 노상방뇨를 하는 취객에게 기택 부자가 물세례를 퍼붓는 장면을 보면서 팔뚝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 감독에겐 정말 모든 게 다 계획이 있었구나!"

첫 관람 땐 별생각 없이 흘려버린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후반부를 지배하는 강렬한 '물'의 이미지를 알고 다시 보니 달랐습니다. 그저 분풀이하는 '스토리'가 전부였다면 소금을 뿌릴 수도 있고 쓰레기를 던질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물'을 뿌립니다.

반지하 창문 안에선 그 상황을 딸 기정이 전화기로 촬영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쫓겨난 전 가사도우미가 지하실에서 기택 가족의 비밀을 전화기로 촬영하는 후반부 장면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됩니다. 다시 한번 탄식이 나왔습니다.

"완전 물바다 구먼!" 하며 키득거리는 기정의 모습은 후반부에 펼쳐질 진짜 물바다를 기억 속에서 소환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을 뒤집어쓴 기정의 초라한 모습과 화면 속 웃는 얼굴의 극적인 대비에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역시, 정말이지 감독에겐 모든 게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로구나!"

첫 관람을 통해 얻은 정보들 덕분에 두 번째 관람에선 처음에 놓쳤던 훨씬 더 많은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재미도 더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직 보지 않은 지인들에게 "'물' '카메라' 이런 것들을 주목해서 보면 영화가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보일 거야." 얘기해 주고 싶지만, 요즘 분위기에서 그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기생충우연히 들은 한 방송에서 스포일러 논란에 대한 한 전문가의 분석이 귀에 쏙 박혔습니다. 배경에 '소비자 권리' 의식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관객들이 '스포일러'에 반감을 갖는 건 자신이 구매한 상품을 스스로 온전히 지배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접근인데 꽤 공감이 갔습니다.

이런 분석의 배경엔 영화가 갈수록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고 의미를 짚어보게 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상품'으로 변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영화가 그저 상품으로 전락한 세계에서 관객은 소비자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재미나 이해, 감상, 해석 같은 가치는 소유권이나 지배권, 사용권에 비하면 아주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소유권의 핵심은 배타성입니다. 내 돈 주고 구입한 티켓의 가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대로 사용하고 이용하는 게 지상 목표가 되면 악성 정보냐 양성 정보냐를 나누는 구분은 무의미해집니다. "재미든 이해든 댁의 건 댁이 알아서 찾으시고요. 내 건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 끼어들지 마세요!" 그런 점에서 스포일러 논란에서도 익숙한 냄새가 납니다. '나'와 '그들' 사이에 선명하게 그은 "선" 틈으로 흘러나오는 그 냄새.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나'와 '그들'의 처절한 투쟁이 불러온 비극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기생충'의 홍보 문구를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수백 명이 한 방에 모여 앉아 같은 영화를 보는데, 우리는 왜 갈수록 모두가 모두에게 '그들'로 선을 나누며 너나없이 코를 틀어막는 걸까요? 영화 한 편 보는 일이 왜 갈수록 벌레들로부터 내 권리를 지키는 투쟁이 돼 가는 걸까요. 착잡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