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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정신질환 범죄 무섭다면서…정신병원은 싫다?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인-잇] 정신질환 범죄 무섭다면서…정신병원은 싫다?
대학병원 전공의로 일할 때의 경험이다. 수련받던 정신건강의학과에는 자랑거리가 있었는데, 전국 대학병원 중 유일하게 정신건강 전문병원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의 치료에도, 전공의들의 수련에도 이상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병원의 위치였다. 정신병원을 뜻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언덕 위의 하얀 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퇴근 후에도 갈 곳 없는 전공의들의 낙은 야식을 시켜 먹는 일이었다. 하지만 신중히 메뉴를 고르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했을 때, 가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곤 했다. 거리 때문이 아니라, 무서워서 오기 힘들다는 말.

배달 거부야 웃어넘길 수 있는 해프닝이었지만, 동일한 이유가 만들어낸 큰 문제가 따로 있었다. 정작 치료가 필요한 분들에게도 언덕 위의 하얀 집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이다. 직접 본 적도 없는 정신병원에 대한 공포심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공포심의 존재가 참 안타깝고 슬프고 밉게 느껴질 일들이 많았다.

모든 병이 그렇듯, 정신질환 또한 발병 초기에 치료해야만 한다. 그래야 잘 낫고 후유증도 적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거의 모든 분들은 증상을 심각하게 키운 뒤에 찾아왔다. 정신질환이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심리도 있지만, 정신과에 대한 공포심 역시 한몫한다. 대부분 몇 주 간의 치료로 호전되어 퇴원하는데, 그때 환자분들과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전우애 같다. '참 많은 일들을 함께 겪었고, 힘들었고, 서로에게 고마워 보고도 싶겠지만 여기서 만나진 말자'라는.

하지만 분명히 잘 떠나보냈던 그 전우를 다시 전쟁터에서 만난 일들이 꽤 잦았다. 이유를 들어보면 그 역시 정신과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었다. "정신과 약 계속 먹으면 안 된다더라. 빨리 끊어!"라는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권유. 누구인지 몰라도 참 원망스러웠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알기나 할까. 약의 이름이라도 알기나 했을까.

이러한 경험들은 나와 동기들에게 같은 생각을 심어주었다. 공포는 무지에서 발생한다. 정신질환에 대해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정확한 지식의 전달을 통해서만 사회적 편견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일은 정신질환을 직접 치료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겠다는 생각. 동기들과 함께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만들고 3년째 활동하는 이유이다.

지금은 도심 한가운데 입원실이 없는 작은 의원에서 진료를 한다. 가끔 입원 권유를 할 때마다 그 언덕 위의 하얀 집이 그립다. 이상적인 치료환경도 그립지만, 무엇보다도 빈 병실이 있었으니까. 그곳은 아쉽게도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요즘은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하는 것이 참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입원 병상 자체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없다.

정신병원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는 많은 의사들에게 기존의 입원시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입원치료는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치료진에게도. 그렇기에 가능한 피하고 싶지만, 외래 치료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상황들이 있다. 스스로를 해칠 수 있거나 남을 해칠 가능성이 있을 때가 특히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병실에 자리가 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은 나도 견디기 어려운데, 당사자와 가족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얼마 전 한 지역에서는 국회의원이 나서서 새로 문을 여는 정신병원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는데 일조했다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일반병원이 문 여는 줄 알았다가 폐쇄병동이 있는 정신병원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인근 주민들이 느꼈을 당혹감이 이해가 간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 기사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그분들이 느낄 불안감도 당연하다. 아마 나도 정신과 의사가 아니고 그 지역에 살았다면 비슷하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신질환 범죄 기사들을 잘 살펴보면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치료받지 않거나 치료를 중단한 상태에서 벌어진 범죄라는 점이다.

정신질환은 무서운 병이다. 판단력, 충동조절 능력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위험하다. 그 위험성은 누구보다도 정신과 의사들이 잘 안다. 안 맞아본 사람이 드물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진료를 계속하는 것은 치료받지 못한 환자가 위험한 것이지, 모든 환자가 위험한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이 없어지면 그 지역이 더 안전해질까? 그건 마치 경찰서가 없어지면 그 지역 범죄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과 동일하다. 경찰서의 유무와 상관없이 범죄는 발생하고, 정신병원이 있든 없든 정신질환은 발생한다. 경찰서가 치안을 담당하듯, 정신과 병의원은 지역 주민들에게 발생하는 정신질환의 조기 치료를 통해 그 지역의 안전성을 높인다.

정신질환 범죄 소식들로 인해 사회가 다 같이 불안한 요즘이다. 불안과 부딪히게 될 때 우리는 종종 회피한다. 하지만 회피는 해결책이 아니다. 1%, 2%, 3%, 10%. 대표적 정신질환인 조현병, 조울증, 공황장애, 우울증의 유병률이다. 우리가 애써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서 이 많은 환자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 적극적인 대책과 투자가 해답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성의 힘으로 불안과 공포를 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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