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한 특강 내용으로 며칠째 곤욕을 치르고 있다. 황 대표는 강의에서 자신이 아는 청년 이야기라며 KT에 취업한 아들의 스펙을 얘기했다. 3점도 안 되는 학점, 토익점수 800점 정도였지만 고등학교 영자신문반 편집장 경험과 동생과 인터넷으로 장애인-비장애인 친구 맺기를 해줘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아 5군데 대기업에 최종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이 발언을 놓고 비판이 이어지는 사이 황 대표는 아들의 이른바 '정량스펙(수치화 혹은 점수화가 가능한 스펙이라는 뜻)'을 수정했다. 학점은 3.25, 토익점수 925로 스펙을 높인 게 아니라 낮춰 발언한 것이라 문제 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지만 '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사실은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 황교안 대표 아들이 받은 보건복지부장관 상은 무엇일까? 보건복지부장관상은 주로 오랫동안 병원에서 헌신한 대학교수나 의사, 또는 사회복지사 등이 받는다. 황 대표 강의 내용을 보면 아들이 고등학교 재학시절 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는 말인데, 황 대표 아들과 비슷한 세대 학교를 다닌 기자에게 고등학생이 장관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어떤 일을 했길래'라는 궁금증이 들어 황 대표 아들이 받은 상에 대해 취재해봤다.
지금까지 복지부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어떤 사람들이 장애인먼저실천상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는지 찾아봤다. 2000년에는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봉사회 부회장, 학원 대표, 공기업 과장 등 3명이 받았고 2003년에는 작업치료사, 공기업 직원, 기업 봉사활동가 총 3명이 받았다. 대부분 오랫동안 장애인 활동에 헌신했던 사회인이 받았던 점을 본다면 2001년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동시 수상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황교안 대표의 아들과 딸이 만들었다는 장애우와 함께하는 청소년 모임, '장함모'라는 사이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소년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 사이트였다. 이 사이트를 황 대표의 아들, 딸이 운영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에 추천됐다는 말이다. 사이트를 만든 건 2001년 4월이었고 정식으로 연 건 7월이었다고 하는데, 그해 11월에 이미 상을 받기로 결정되었으니 사이트를 만든 지 4개월 만에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각각 장관상을 하나씩 받은 것이다. 해당 사이트는(www.janghammo.com)현재 운영되지 않고 있어서 과연 그 4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활동이 있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다만 황 대표의 딸이 2004년에 '우리 친구할까요?'라는 제목으로 장함모 사이트에 사람들이 올린 글을 엮어 책을 냈는데, 이 책에 따르면 2004년 12월 기준으로 직접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친구를 맺은 건 10건 정도라고 한다.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이후에도 고등학교에 진학한 황 대표의 딸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주요 일간지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중학교 재학시절 정신지체 장애인 복지시설에 있는 또래 장애인을 집으로 초대해 1박2일을 지내고 난 뒤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는 내용이다. 기사에는 아빠인 황교안 대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당시 서울고검 부장검사로 재직 중이었던 황 대표가 가족회의를 열어 이런 사이트를 만들도록 의견을 모았고, 사이트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도 지원도 했다고 한다. 황 대표는 2015년 국무총리 후보가 됐을 때도 자신의 기부와 봉사경력을 언급하면서 아들과 딸이 장함모 사이트를 개설하는 과정을 지원했고 정기모임을 돕는 등 후원자 역할을 했다고 발언했다.
황교안 대표는 숙명여대 강의에서 "스펙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장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취업할 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점과 토익점수는 불합격되지 않기 위한 조건일 뿐이라는 걸 우리 청년 세대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다만 차별화될 수 있는 '나만의 장점'을 만들 기회가 누구에게나 황교안 대표의 아들, 딸처럼 여러 차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개인의 노력과 아이디어만으로는 현실화시키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스펙이 없어도 좋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는 황 대표의 발언이 상당수 청년들에게 공허하게 들렸던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