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홍콩의 긴장과 불안, 절박함은 진행형이다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9.06.21 14:57 수정 2019.06.21 17: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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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1일)도 홍콩 정부 청사 앞에는 수많은 홍콩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청사와 입법회를 포위하고 문제가 된 범죄인 인도 법안의 철폐와 12일 시위에 대한 '폭동' 규정 철회, 시위 과잉 진압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홍콩 정부가 법안을 추진 안 하겠다며 백기를 들고 시민들에게 사과했지만 홍콩 시민들의 함성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Scene #1 마스크 시위, 두려움6월 12일 홍콩 애드미럴티 지역. 아침부터 정부 청사 앞 도로는 시위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지난 12일 취재진이 찾아간 정부 청사 앞 10차선 도로는 새벽부터 나온 홍콩 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학생들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해 우산과 바리케이드, 헬멧을 분주하게 사다 날랐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 주며 착용을 독려했습니다. 거의 10명 중 9명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보고선 '재갈 물린 표현의 자유' 같은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시민들도, 마스크를 나눠 주는 학생들도 '얼굴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CCTV나 방송 영상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 잡혀갈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지금 중국의 얼굴인식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한 지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도 많은 시민들은 나중에 문제가 될까 봐 거절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홍콩 언론들은 이날 많은 시민들이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 지하철에선 1회용 카드를, 시위 현장 주변에선 현금을 썼다고 전했습니다.
6월 12일 시위 참가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참가자들은 '철회'라는 구호가 적혀진 피켓을 들었다.홍콩 정부는 2014년 행정수반 직선제 등을 요구한 '우산 혁명'을 진압한 뒤 반대 목소리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우산 혁명 참여자들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고,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은 해산시켰습니다. 특히 2015년에는 중국에서 금지한 서적을 판매한다는 이유로 코즈웨이베이 서점 관계자 5명이 중국으로 끌려가 조사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일 100만 시위에서도 100명 이상이 연행됐습니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다는 홍콩에서 두려움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두려움의 강도는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사실상 백기를 들며 어느 정도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16일 200만 시위에선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 Scene #2 "감사합니다", 절박함

"감사합니다!" "파이팅!"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저희에게 많은 홍콩 시민들이 건넨 말입니다. 특히 홍콩 정부 청사로 가는 출입구에서 취재 중일 때 한 홍콩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SBS를 알고 있다면서, 여기에 와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홍콩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줘서 고맙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녀는 "홍콩의 많은 언론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시위대의 폭력성을 오히려 부각하고 있다. 다들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며 절망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홍콩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습니다.
6월 14일 홍콩 정부 청사로 이어지는 통로. 시민들은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 강행과 시위 강력 진압을 비난하는 글을 적어 붙였다.  인터뷰 요청에도 선뜻 응한 그녀는 "한국의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고 있다"며 "범죄인 인도 법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합니다. 이 법안은 중국으로도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중국의 사법 체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또 중국 정부가 반중 인사를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홍콩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6월 16일 200만 '검은 대행진'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도 많았다.200만 시위 때 거리로 나선 시민들 가운데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도 많았습니다.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데려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 부모는 아이들에게 시위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홍콩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그 책임을 지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 Scene #3 최루탄과 '폭도', 분노

12일 오후 시위대와 경찰의 심각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정부 청사 앞에 있던 시위대에 대해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선 것입니다.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며 물대포와 고무탄, 최루탄까지 쏘았습니다. (경찰은 150개의 최루탄을 발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민들은 우산과 바리케이드로 막고 주변에 있던 집기를 던지기도 했지만 경찰의 강력한 진압에 계속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80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경찰들도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SNS에는 경찰이 고무탄을 조준 발사해 시위자가 쓰러지고, 한 명의 시위자를 여러 명이 곤봉으로 때리는 모습이 퍼졌습니다. "어떻게 홍콩 정부가 홍콩인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진압할 수 있느냐"는 성난 목소리가 급속도로 커졌습니다.
6월 12일 시위대를 경찰이 강력 진압하면서 8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캐리 람 장관은 시위에 대해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시위대를 '버릇없는 아이'에 대해 비유하면서 홍콩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200만 시위 이후 캐리 람 장관이 부랴부랴 사과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지금도 시민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캐리 람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 Scene #4 모세의 기적, 성숙

12일 시위, 16일 집회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매웠습니다. 그런데 집회나 행진 도중에 갑자기 함성이 들렸습니다. 심각한 일이 생겼나 해서 부랴부랴 가보니 쓰러진 시위 참가자를 실은 앰뷸런스가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있었습니다. 시위 현장을 미쳐 지나가지 못한 버스가 통행하도록 해 줄 때도 있었습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차량들이 무사히 지나가자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6월 16일 200만 집회 당시 앰뷸런스가 지나가도록 참가자들이 순식간에 길을 내줬다12일 일부 상점들은 문을 닫고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한 음식점은 '홍콩이 병에걸렸어요'라는 팻말을 써 붙이고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월 12일 시위에 많은 상점들이 영업을 하지 않고 동참했다. 문을 닫은 한 음식점엔 '홍콩이 병에 걸렸다'는 글이 붙었다.그리고 시위 참가자들은 집회 현장 곳곳에 물과 음료수 등을 가져다 놓고 무료로 마실 수 있게 했습니다. 시위가 격화될 때도 참가자들은 서로를 챙겼습니다. 마스크나 우산을 나눠주는 것은 물론이고 최루탄 가스에 괴로워하는 참가자들에게 식염수와 물을 나눠줬습니다. 저도 8뉴스 현장 연결 15분 전 바로 옆에서 터진 최루탄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는데, 시민들이 뿌려준 식염수 덕분에 방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숙한 시민 문화는 시위와 집회를 마친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밤늦게까지 시위를 벌인 참가자들은 해산하면서 쓰레기와 떨어진 집회 용품들을 모두 치웠습니다.

● Scene #5 작은 승리와 불안

지난 15일 캐리 람 장관이 범죄인 인도 법안의 무기한 연기를 선언하자 언론에서는 '사실상 백기', '작은 승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은 절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연기가 아닌 철회, 철폐가 돼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다음 날 20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6월 16일 집회에 나선 한 참가자가 '범죄인 인도 법안 연기가 아닌 철회를 원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법안은 자연스럽게 폐기될 것이란 말이 정부 내에서도 나오지만, 친중파가 장악한 정부와 입법회를 시민들은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홍콩 정부가 보여준 모습 때문입니다. 또 5년 전 홍콩 우산혁명이 79일 간 이어졌지만 완전 직선제를 끌어내지 못하고 실패한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때문에 홍콩과 중국 정부가 언제 입장을 바꿔 다시 법안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경계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홍콩 대학생들은 법안 철회와 캐리 람 장관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홍콩 입법회와 청사를 포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7월 1일 홍콩 주권반환일에 대규모 시위를 다시 예고하고 있습니다. 홍콩의 긴장, 그리고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