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한 달 반 뒤인 지난 4월 중순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에 연말까지 용단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3차 정상회담을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며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보겠다"고 했다. 공을 미국으로 넘긴 셈이다. 그리고는 5월 두 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대답 없는'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은 북이 넘긴 공을 받기는커녕 기존 입장(FFVD와 제재 유지)을 거듭 재확인하고,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압류하며 넘어온 공을 되받아쳤다.
북한이 제시한 '올해 말 시한'은 미국 대선 일정과 맞물려있다. 2020년 11월 대선을 약 1년 앞둔 시점으로 민주, 공화당의 대선 후보들이 치열한 당내 경선을 치르고 있을 시기이기도 하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렸던 것처럼, 미국이 연말까지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하지 않을 경우 도발 수위를 조금씩 높여갈 거란 전망이 많다.
스캇 스나이더(Scott A. Snyder) 미 외교협회(CFR) 선임 연구원은 "북한 문제는 미 대선에서 아주 큰 이슈는 아닌데, 북한이 이런 부분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이 대선을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려고 하겠지만 트럼프는 실제 별로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 국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례로 조 바이든 민주당 경선 후보에 대한 막말을 들었다. 북한은 지난달 바이든 후보가 김정은 위원장을 '폭군'이라고 지칭하자, 그를 향해 "속물", "지능지수가 모자라는 멍청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북한의 이런 행동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며 "당선 확률이 높은 민주당 후보를 비난한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2020년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하든, 북한이 협상을 이어갈 생각이 있다면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도 북한 이슈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고 평가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는 이미 트럼프를 지지할지 말지 입장을 정리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여기까지(핵실험과 ICBM 발사 중단)만 해도 성공'이라고 해도 그 말을 믿으려 할 것이고, 반대자들은 비판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지난달 17일 한미 언론교류 프로그램 토론문을 통해 "북한과 구체적인 비핵화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미국이 선제적으로 제재를 낮추거나 종전 선언에 동의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무런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현재의 상황을 넘어서는 북한과 합의를 무리해서 추진할 정치적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또 미국 민주당과 의회의 견제와 감시가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북한과 수준 낮은 합의를 할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지레 기대를 접을 필요는 없단 취지로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 반대편(싱가포르, 하노이)으로 날아가 김정은 위원장을 두 번이나 직접 만났고, 취임 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현안인 만큼 외교적 노력과 압박을 통한 북한 비핵화를 이제 와서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과 이견을 노출하면서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감싸고 달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기대에 힘을 싣는 요소다.
연말까지 채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워싱턴에서 바라보는 북미 관계 전망은 트럼프의 개인적 성정만큼이나 예측 불가(unpredictable)라 할만했다. 다만, 연말까지 북한이 조금씩 수위를 높여 미국을 떠보려 할 가능성, 긴장이 고조되다가 어느 정도 임계점에 달하면 두 나라가 다시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아졌다. 2017년 평창 이전의 긴장 국면으로 돌아갈 것인지, 하노이 실패를 딛고 비핵화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남은 6개월 한반도 안보는 또다시 중대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