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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을 위한 '동물복지'

[인-잇] 사람을 위한 '동물복지'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SBS 뉴스

작성 2019.06.11 11:15 수정 2019.07.04 14: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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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사람을 위한 동물복지
● "동물복지?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동물복지를 언급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반론이 있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동물복지야. 동물복지에 쓸 돈 있으면 어려운 사람이나 더 도와."

맞는 말일 수 있다. 동물복지와 사람복지가 전혀 연관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동물복지는 동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예를 살펴보자.

요즘 마트에 가면 '동물복지 달걀', '동물복지 닭고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명, 동물복지 축산물이다.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소·돼지·닭·오리농장 등을 국가가 인증하고, 해당 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표시하는 제도다.

일반 축산물보다 다소 비싼 가격 때문에 아직 많이 소비되지는 않지만,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 이후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동물복지 축산물을 찾는 소비자가 꽤 늘어났다.

그런데 왜 달걀에서 살충제가 나왔을까. 바로 '닭 진드기' 때문이다. 닭 농장에는 '와구모'라고 불리는 닭 진드기가 있는데, 적절한 온도와 먹이가 풍부하다면, 닭 진드기 한 마리가 12주 동안 2억 마리로 불어날 수 있을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하다. 닭 진드기에 물린 닭은 가려움을 느끼고 빈혈 증상을 일으키며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산란계(달걀을 낳는 닭)는 배터리 케이지(A4용지 크기)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낸다. 날개를 펼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닭 진드기가 자신을 물어도 움직이거나 날개를 펄럭거려서 떨쳐낼 수가 없는 것이다. 자연스레 산란율이 저하되고 농가의 손해로 이어진다. 이 닭 진드기를 죽이기 위해 농가에서 살충제를 뿌릴 수밖에 없고, 그 살충제가 달걀에 남아 사람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밖에 풀어서 키우는 방목 닭들은 모래에 몸을 비비는 모래목욕이라는 것을 하는데, 모래목욕을 하면 닭 진드기를 많이 떼어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살충제를 뿌릴 것이 아니라, 닭들을 배터리 케이지에서 꺼내 방목시키면 닭 진드기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이다.

닭을 방목하면 닭의 복지가 향상되고 닭이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줄어드는 셈이다. 사람도 아프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그만큼 '건강'은 복지의 기본이다. 결국, 동물복지를 신경 쓰면 최종적으로 사람의 삶의 질과 복지가 증진된다.

<동물복지↑ → 동물건강↑ → 사람건강↑ → 사람복지↑>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하나의 건강 'One Health'

이처럼 동물의 건강과 인간의 건강은 서로 영향을 준다. 이러한 개념이 바로 '원헬스(One health, 하나의 건강)'라는 개념이다. 인간과 동물 모두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원헬스 개념에는 환경의 건강도 포함된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만 263명의 목숨을 앗아간 '신종플루(H1N1)'는 원래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였다. 2014년부터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에볼라 바이러스는 최초 감염자가 박쥐로부터 감염됐다. 2015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역시 중동에서 낙타로부터 감염이 시작됐다. 중국, 홍콩 등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으로 수백 명이 죽었다. 사람과 동물이 같은 질병으로 죽거나, 동물을 통해서 사람에게 신종 감염병이 전파되는 일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따르면, 새롭게 생겨나는 사람의 신종 감염병 중 60%가 인수공통 감염병(사람과 동물이 함께 감염되는 전염병)이며, 그중 75%는 동물로부터 온다. 이제 바야흐로 사람을 위해서라도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점점 더 신경 써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처럼 동물복지는 동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동물복지가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동물복지에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어렵지 않다. 조금 비싸더라도 동물복지 축산물을 소비하는 것으로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을 실천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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