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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속도로 낙하물…언제까지 '운수 좋은 날' 기대하나

[취재파일] 고속도로 낙하물…언제까지 '운수 좋은 날' 기대하나
● 당황스런 도로 위 '지뢰'와 만남

늦은 밤 시속 100km의 속도로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갑자기 도로 위에 널브러진 한 물체가 운전자 눈에 들어옵니다. 순간 차선을 변경해볼까 백미러를 흘끗 보지만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1초가 흘렀을까. 피할 틈도 없이 '쿵!'.

이 충격으로 휠은 망가졌고 차체가 흔들립니다. 고속도로 위에서는 작은 돌멩이도 '총알' 같은 위력을 가지니까요. 결국 운전자는 질주하는 차량 틈바구니에서 시속 40~50km로 1시간 가까이 서행해야 하는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2차 사고를 피하기 위해 비상등은 물론 휴대용 낚시 조명등까지 차 안에서 켜가며 말입니다.

지난 12일 밤 SBS에 제보한 김규동 씨의 경험담입니다. 사고 후 블랙박스로 파악된 물체는 길이 60cm가량의 건설용 목재였습니다.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는 그는 화물차의 짐을 지탱하기 위해 쓰인 목재로 추정했습니다. 김 씨는 다행히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이 사고로 932만 원의 수리비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도로공사 측에 배상을 문의해도 돌아온 건 "판례에 따라 어렵다"는 답변뿐. 김 씨에게 이 날은 그저 '운수 나쁜 날'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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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찰로 감당 안돼…뾰족한 방법 없다"

사실 고속도로 위 낙하물은 '지뢰'로 불릴 만큼 그간 악명을 떨쳤습니다. 지난해 1월에는 중앙분리대 너머에서 날아온 쇳덩어리와 부딪혀 37살 운전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죠. 지난해 10월에는 낙하물을 피하려던 고속버스가 언덕 아래로 떨어져 승객 1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고속도로 관리 주체인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에게도 낙하물은 골칫거리입니다. 이용호(무소속)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도로공사가 최근 5년(2013~2017년)간 수거한 낙하물은 132만2,006건. 연평균 26만4,401건이나 됩니다. 하루에도 고속도로 위에는 700개가 넘는 지뢰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죠.

도로공사 측도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정기 순찰대는 4개 조(2인 1조 구성) 3교대로 운영되는데요. 평균 35km(왕복 70km) 가량을 1시간 30분~2시간 간격으로 하루 10번가량 순찰합니다. 그럼에도 낙하물을 발견해 수거하거나, 교통사고가 발생해 조치에 시간을 보내게 되면 이 순찰 주기가 제대로 지켜지기 힘들다는 게 도로공사의 설명입니다.

또 고속도로 위 CCTV가 2km 간격으로 설치돼 있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특정 장소를 확대해 보거나, 멀리 봐야 해 낙하물을 꼼꼼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결국 순찰대의 낙하물 수거 직후 낙하물이 발생하면 최대 2시간까지 도로 위에 방치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도로공사 직원은 "우리도 치운다고 치우지만 일일이 제거하기에는 너무 많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고속도로 낙하물
● 피해는 고스란히 운전자가

문제는 운전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제보자 김규동 씨가 1,000만 원 가까운 수리비를 그 누구에게도 청구할 수 없는 건 그간 축적된 대법원 판결 때문입니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반대편 차선에서 날아온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한 운전자 측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판결한 적이 있는데요. 도로에 어떤 결함(낙하물)이 있었다면 관리 주체가 그걸 원상복구(수거)할 수 있었는데도 방치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습니다.

여기서 대법원은 당시 사고 전 순찰이 이뤄졌지만 낙하물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점, 넓은 도로 위를 순찰 주기를 더 짧게 가져가도 현실적으로 모든 낙하물을 찾기란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도로공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후 유사한 사례에서도 대법원은 도로공사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해 배상 책임을 면해준 겁니다.

이 판례들이 그간 도로공사의 보상 논리가 됐습니다. 최근 5년간 고속도로 낙하물 관련 사고가 244건이었음에도 도로공사가 보상한 건은 6.5%인 단 16건. 모두 제설, 청소 작업 중 나온 파편 등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시설물에서 나온 낙하물 관련 사고들이었습니다.

결국, 운전자가 이 '운수 나쁜 날' 발생한 사고에서 기댈 수 있는 건 보험뿐인데요. 이마저도 녹록지 않습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자차보험'으로 보상이 가능하긴 하지만 보험사의 약관상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이 숨지는 사고에도 수백만 원에 그친다는 겁니다.

결국 낙하물을 발생시킨 진짜 범인을 찾아야 책임을 묻고 처벌하고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건데 이마저도 쉽지 않죠. 도로공사의 양해를 구해 CCTV를 일일이 확인하더라도 낙하물을 발생시킨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해당 차량을 찾는 건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기보다 어려운 일이니까요.

● "주원인 화물차…단속에 주력해야"

그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명지대 산학협력단이 국토교통부 의뢰로 2017년 작성한 '도로 낙하물 방지 및 피해 최소화 방안 연구'보고서는 고속도로 낙하물 사고의 주원인을 바로 화물차로 꼽았습니다. 연구진이 2012~2014년 낙하물로 인한 교통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고속도로 낙하물 사고 133건 중 약 40%인 53건이 '적재조치불량'으로 인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차량충돌/추돌(16건)'로 인한 낙하물이 두 번째 사고 원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현행 도로교통법상 적재 제한을 초과하거나 추락을 방지하지 못했을 때 따른 처벌은 벌금 5만 원(4톤 이상 화물차 기준)이 전부입니다. 일부러 흘릴 사람이 있겠냐마는 단속도, 처벌도 미미 하다면 지켜야 할 사람도 느슨해지기 십상이죠.

해법은 또렷해 보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사람들이 "유료로 운영하는 도로공사가 책임을 더 질 필요가 있다", "흘리고 가는 화물차를 단속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냈는데요. 종합하면 도로공사 그리고 불법 적재 차량을 단속하는 경찰 등 관계기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겁니다. 낙하물이 발생하기도 전에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화물차를 꼼꼼히 확인해 보자는 겁니다. '운수 좋은 날'을 기대해야 하는 운전자들의 공포. 이제 관계 기관이 힘을 합쳐 없애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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