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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인-잇]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결국 꼰대' 3편: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팀장은 팀원들이 어떤 성향의 소유자인지, 무슨 생각을 하며 회사를 다니는지, 그리고 당장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연합하여 팀의 성과를 최대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팀장이 된 나는 한동안 팀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행동하는지 꼼꼼히 관찰했다.

그 결과 우리 팀원들 장점이 많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상당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우려스러웠던 건 다소 이기적이고 개인 플레이에만 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직 팀원들과 본격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기 전이었지만, 가볍게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고 그들은 계속 '뿔 없는 악마'처럼 행동했다. 각 팀원의 문제점은 이와 같았다.

김 대리는 팀 내 선임이었다. 그런데 자기 일만 했다. 보다 못해 김 대리에게 전체 업무를 조율하고 후배 직원을 챙기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지만 결국 공염불이 되었다.

곽 대리는 내가 뭘 하자고만 하면 "안 된다"부터 말했다. 이것은 뭐 때문에 안되고 저것은 뭐 때문에 안 된단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굴면 당신만 손해 본다고 좋은 말로 타일러도 바뀌지 않았다.

박 사원은 2년째 같은 업무만 했다. 그래서 그 친구 능력을 제고할 목적으로 추가 업무를 부여했더니 실수인 척하면서 그 업무를 펑크 내는 것이 아닌가.

윤 사원은 항상 칼 퇴근이다. 그래, 칼 퇴근 좋다. 그런데 맡은 일은 해야 하지 않는가? 요청한지 상당 기일이 지났어도 팀 비용 항목과 사용내역 보고가 안 되었다.

막내 직원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아니다 싶은 일은 절대 안 했다. 누군가 그런 일을 시키면 불쾌한 티를 얼굴에 얼마나 내는지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할 정도였다.

계속 이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집합시켜 각각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얘기해 볼까, 아니면 개인별로 일 대 일 면담을 하면서 교화시켜 볼까. 둘 다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내 목적한 바를 달성하려면? 그래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 각각 팀원들이 본인의 업무를 나에게 보고할 때 혹은 어떤 사건이 생겨 내가 나서야 할 때 담당자와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 그들의 문제점을 깨닫고 고치게끔 말이다.

때마침 윤 사원이 지시한 지 일주일 만에 우리 팀 비용 항목과 사용 내역을 갖고 왔다. "드디어 왔네. 어디 좀 봅시다. 어, VOC 벌과금 환원이 몇 개월 동안 0원이네. 무슨 이유가 있어요?"

윤 사원은 침묵했다. "그래서 가맹점장들이 회사가 도둑이냐는 말을 나한테 한 거였네요." 내가 에둘렀지만 가시 있는 말을 하자 윤 사원은 머뭇거리다가 침묵을 깨고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로 답변했다. "재심 건수가 너무 많습니다. 혼자 하기 벅찹니다."

"그래요. 음, 어디 보자. 하루에 평균 20건 정도네요. 적지는 않지만 많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한 건 재심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죠? 재심도 다 매뉴얼화 되어서 특별히 꼬여있는 건 아니면 금방 할 수 있을 텐데. 전에 이 업무 김 대리가 담당했지. 김 대리 몇 분 정도 걸리지? 그렇지. 평균 10분 정도지. 맞아, 그럴 거야. 고마워. 윤 사원 혹시 다른 업무가 많나요?" (실제로는 별로 없다.)

'팩트'를 내밀며 반문하자 당황해하며 입을 닫는 장면이 몇 번 반복해 연출되었다. 그러면서 불편한 진실이 밝혀졌다. "결국 정시 퇴근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업무가 누락된 것이었네. 이거 안 좋은 업무 태도인데요."

그러자 윤 사원은 업무를 누락시킨 것은 잘못이지만 규정 근무시간 이외의 개인 시간은 보장받고 싶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며 자신을 합리화했다.

나는 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좋아요. 그런데 윤 사원은 근무시간에 근무만 하나요? 개인 전화는 왜 받고 인터넷 서핑이나 SNS는 왜 하죠? 가끔 지각도 하는 것 같은데 그 시간만큼 더 근무하나요?" 윤 사원은 뭔가 대꾸하려 했지만 본인도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요즘 친구들 개인 시간 침해받는 것 싫어하는 줄 알아요. 하지만 중요한 업무는 밤을 새우더라도 해야 하지 않나요? 쓸데없는 야근이 문제지 정말 피치 못할 상황 발생으로 좀 더 근무를 해야 한다면 당연히 해야죠. 그것을 안 하겠다? 그러면 곤란한 상황이 생깁니다. 극단적인 예로 소방관이 불을 끄다가 퇴근시간 됐다고 손을 놓는다면 말이 되나요? 크든 작든 세상의 모든 일이 이와 같은 겁니다."

결국 윤 사원은 "죄송하다. 앞으로는 업무 누락시키지 않겠다."라고 했으나 어쨌든 지적을 받아서 그런지 안 좋은 얼굴로 풀이 죽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반면 나는 약간 '업'되었다. 이 힘든 대화를 잘 이끌었다고 '자뻑'하면서 이 정도면 윤 사원이 잘 알아들었을 것이라고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머리도 식힐 겸 잠시 인터넷 뉴스를 서칭했다. 그런데 이런 제길, 이 과거 기사는 뭔가? 전자상거래의 거물 마윈 회장이 "알리바바에서는 하루 12시간 일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편하게 하루 8시간 일할 사람은 필요 없다."라는 말을 했다가 중국 젊은이들의 분노를 일으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는 내용의 기사다.

어, 그럼 나는? 나 역시 옛날 캐릭터란 말인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는 윤 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았다. 퇴근시간이긴 했다. 얼떨결에 "알았어요." 했지만, 속으로는 '지금까지 난 뭐 했지?'라는 허탈감과 '이런 친구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일할까?'하는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 다음 편에 계속 -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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