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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② - '특수강간 의혹'과 수사 개시 검토 권고

지난 20일, 검찰 과거사위는 '故 장자연 씨 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논란이 됐던 '특수강간 의혹'에 대한 수사 관련 권고를 하지 않았다. 수사 관련 권고를 하기엔 객관적 근거가 충분하지 못 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과거사위는 故 장자연 씨에 대한 성폭행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나 진술이 나올 가능성을 고려해 사건 기록과 조사단의 조사 기록을 보존할 것을 권고했다. 세간의 의혹이 큰 만큼, 일말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故 장자연 씨 사건 조사팀의 일원이자 조사단 총괄팀장을 맡았던 김영희 변호사는 과거사위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KBS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해 "다수 의견은 성폭행 수사 개시 검토 의견이었는데, 위원회가 그 부분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장자연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사 여부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장자연 리스트, 과거사 진상조사단
● '수사 개시 검토 권고'란 무엇인가

특수 강간 의혹에 대해서 다수 의견이 수사 개시 검토 권고였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우선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특수 강간 의혹에 대한 다수 의견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이라는 수식어를 단 것은 6명의 조사 단원 중 3명의 외부 단원만 '수사 개시 검토 권고'를 냈기 때문이다. 내부 단원인 2명의 검사는 만일의 가능성을 대비한 '수사 기록 등의 보존 권고', 1명의 외부 단원은 '과거사위에 판단 위임'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진다.

특수 강간 의혹과 관련해 주목해 볼 점은 다수 의견도 '수사 권고'가 아닌 '수사 개시 검토 권고'를 했다는 부분이다. 다수 의견도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이 아닌, '검찰이 조사 기록을 넘겨 받아 수사를 할지 말 지를 판단해 보라'라는 권고 의견을 냈다는 점이다. 다수 의견 스스로도 검찰에 '수사 권고'를 하기에는 근거가 부족 하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수사 개시 검토 권고'라는 생경한 말은 과거사위의 출범 배경과 출동하는 부분이 있다. 검찰 과거사위와 실무를 담당하는 대검 진상조사단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과거 수사 기록 검토와 조사를 통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과거사위가 자체적으로 검찰에 수사를 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사 개시 검토 권고'는 불신의 대상인 검찰에 수사를 할지 말 지에 대한 결정권을 넘기는 것이다.

실제 '수사 개시 검토 권고'가 이뤄졌을 때의 현실적 문제점도 있다. 검찰이 조사단의 기록을 넘겨 받더라도 수사 개시를 할지 말 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수사'가 필요한 모순에 직면할 수 있다. 조사단도 수사를 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한 조사 기록을 검찰이 그 기록을 검토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검찰에 강제 수사권을 이용해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한, 검찰의 권한도 조사단과 다를 바 없다.

단지, 검찰이 수사 경험이 많으니 조사단 특히, 외부 단원들이 포착하지 못한 기록상의 혐의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수사 개시 검토'를 한 것이라면, 그것은 조사단 특히 외부단원의 실력 부족을 실토한 것과 다름없다. 그게 아니라면, '수사 개시 검토 권고'라는 이름으로 '수사 권고'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 다수 의견이 주장한 '특수 강간 의혹'의 근거는?

그럼 조사단 내 일부 외부 단원이 '수사 개시 검토 권고'라는 생경한 형태의 권고로 '특수 강간 의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제기한 근거는 뭘까. 검찰 과거사위의 보도자료에 그 근거가 기재되어 있다.

故 장자연 씨에 대한 특수 강간 의혹, 특히 약물에 의한 강간 의혹이 증폭되기 시작한 지점에 윤지오 씨가 있다. 윤 씨는 대검 진상조사단에 "故 장자연 씨는 채 맥주 한 잔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며, "술자리를 먼저 떠난 이후에 故 장자연 씨는 성폭행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사단의 앞선 면담에선 진술하지 않다가, 버닝썬 사태가 터진 마지막 면담 때 제기한 의혹이었는데, 윤 씨가 故 장자연 씨가 약에 취한 것으로 보였다고 지목한 술자리는 객관적 수사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 걸로 알려진다. (참고 : SBS 8뉴스 "윤지오 '약물 성폭행 주장' 은 막연한 추정..신뢰 어려워" )

윤 씨의 주장은 약에 취한 것으로 보였다는 추정과 본인이 자리를 떠난 이후 성폭행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추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약에 취한 것으로 보였다'는 주장을 윤 씨의 목격담이라고 하더라도, '성폭행 가능성'은 막연한 추정일 뿐인 셈이다. 실제 윤 씨는 자신의 라이브 방송에서 "故 장자연 씨가 성폭행을 당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아냐"는 취지로 이야기한 바 있다.
장자연 사건
● "문건에 심한 성폭행 내용 있었다"는 매니저의 진술…근거가 될까

윤지오 씨의 주장은 특수강간 의혹을 제기하기엔 근거가 미약하다. 조사단 내 일부 외부 위원들은 장자연 문건 작성에도 개입했던 매니저 유 모 씨의 진술, 그리고 문건의 내용을 '전해 들었다'는 드라마 PD A 씨의 진술을 근거로 들고 있다.

매니저 유 모 씨는 조사단의 면담에 앞서, "장자연이 처음에 작성한 문서에 심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내가 지우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故 장자연 씨' 특수강간 의혹과 관련한 가장 유력한 진술이다. 그런데 이후 정식 면담에서 유 씨는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고, 장자연이 하소연하듯 그런 비슷한 말(성추행)을 하였는데, 장자연이 '당했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고 진술을 뒤집었다.

정식 면담 전에 나온 유 씨의 진술이 진실에 근접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생존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도 특정되지 않고, 유 씨는 문건이 작성될 즈음 故 장자연 씨를 만났기 때문에 설사 성폭행이 실재했다고 하더라도 현장의 목격자는 아니다. 문건에 장자연 씨에 대한 성폭행 가해자가 명시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남아 있는 문건에 그런 내용은 없다. 매니저 유 모 씨의 진술이 수사의 단서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 "전해 들었다"는 드라마 PD…"그런 얘기한 적 없다"는 배우 이 모 씨

특수강간 의혹의 근거로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것은 드라마 PD A 씨의 진술인데, 앞서 살펴본 대로 '전해 들었다'는 한계가 있다. 소위 전문진술이다. A 씨의 진술은, A 씨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면 자연스럽게 A 씨 진술도 신뢰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A 씨는 배우 이 모 씨에게 "문건에 '술에 약을 탔다'는 얘기가 있다"고 들었다는 사실 확인서를 과거 제출했다. 조사단에는 "배우 이 모 씨로부터 물에 약을 탔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배우 이 모 씨는 "A 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문건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조사단에 진술한 걸로 알려진다.

문건 작성한 개입한 매니저 유 모 씨는 "문건에 '술에 약을 탔다'는 내용이 없다"고 진술했고, 장자연 씨의 유가족은 "문건에 성폭행 피해에 관한 부분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A 씨 진술이 사실이기 위해선 '술에 약을 탔다'는 내용이 문건에 있어야 하지만, 문건 작성에 개입하거나 문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런 취지의 내용은 문건에 없었다는 것이다.

● 막연한 의혹이 아닌 객관적 정황에 근거한 수사

권한을 가지게 되면, 성과를 내고 싶은 건 사람의 생리다. 하지만, '수사'와 '사법 처리'는 엄밀하고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사회적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에 사회적 자원은 합리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 구체적이지 않은 의혹에 대한 수사를 위해 수사력이 투입되면, 그만큼의 공백이 발생되고, 피해는 시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특수 강간 의혹에 대한 '수사 개시 검토 권고' 의견이 성과에 대한 욕심이 아닌 사회적 자원의 합리적 배분에 터 잡은 의견이었기를 기대한다. 또, 과거사위가 특수 강간 의혹에 대한 수사 관련 권고를 하지 않았지만, 조사 기록 보전 등을 권고해 둔 만큼 관련 추후 증거나 진술이 나와 특수 강간 의혹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한 의혹으로 사회적 자원이 낭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국민을 위한 것도, 故 장자연 씨를 위한 것도 아닐 것이다. 故 장자연 씨의 명복을 빈다.

▶ [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① - '장자연 리스트'란 무엇인가?
▶ [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③ - 총체적 부실 수사와 조선일보의 외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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