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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① - '장자연 리스트'란 무엇인가?

檢과거사 진상조사단, '장자연 사건' 위증 혐의만 수사권고
지난 20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故 장자연 사건' 관련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논란이 됐던 '특수강간 의혹'에 대한 수사 관련 권고가 없어서거나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에 대한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은 아니다. 해당 이슈에 대한 조사단 내 특정 의견의 근거의 부실함, 13개월간 진행된 재조사 결과의 부실함에 때문이었다.

과거사위 발표 이후 '故 장자연 사건' 조사팀의 일원이자 조사단 총괄팀장을 맡았던 김영희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과거사위 결정에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비판의 지점은 크게 2가지다. 조사단이 다수 의견으로 보고한 '리스트는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특수강간 의혹에 대해 수사 개시 검토 권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담하다', '과거사위가 진상 규명을 막고 있다'는 표현을 써 가면 비판하고 있는 김 변호사지만, 주장의 근거는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다. 조사단의 최종 보고서를 공개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내용을 떠나 조사단 다수 의견을 과거사위가 채택하지 않아 문제라는 주장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특수 강간 의혹은 사실상 다수 의견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사위는 지금껏 조사단의 (다수) 의견 대로만 결과를 발표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일례로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 대해 과거사위는 조사단의 결론과 사실상 정반대의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 다수 의견을 과거사위가 채택하지 않아 문제라는 김 변호사의 비판은 그때도 제기됐어야 하지만, 그가 그랬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김 변호사의 비판이 원칙에 대한 비판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고 장자연 씨 사건 재조사
●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전제

10년 간 이어져 온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 관련 의혹. 13개월에 걸친 조사단의 재조사로 해소되기를 바랐다. 변호사와 교수 등 법률 전문가들이 참여해 오랫동안 조사해 왔던 만큼, 세간의 의혹이 해소되고 문제가 있는 사람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능하길 바랐다. 하지만, 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의혹은 해당 리스트가 존재하고, 그 리스트에는 故 장자연 씨에게 성 접대 등을 강요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시발점이다. 그리고 과거 수사에서 성 접대 등으로 처벌 받았던 사람들이 없었던 만큼,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과거사위가 '故 장자연 씨 사건'을 재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 이런 의혹이 핵심 배경이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자연 리스트'의 실물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장 씨도 생존해 있지 않다. '장자연 리스트'에 전제한 의혹을 풀기 위해선 문건의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장자연 리스트'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재구성의 시작은 리스트가 실제 존재했는지에서 시작해, 존재했다면 어떤 이름들이 적혔는지, 그리고 그 리스트는 장자연 씨가 작성한 것이 맞는지, 마지막으로 리스트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확인 작업은 수사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라고 할 수 있다.

●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조사단 다수 의견과 과거사위 결론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다수 의견은 리스트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장자연 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고, 내용은 피해 사실과 관련해서 장자연 씨가 피해를 입게 한 사람들의 명단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피해 사실이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재판 기록으로 제출된 4장의 문건 내용에 비춰 '성 접대' 등과 관련된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리스트가 작성되었다면 장자연의 피해와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로서는 리스트를 확인할 수 없다. 문건을 직접 본 사람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장자연 리스트'가 누구에 의해 작성되었는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재한 문건인지 이에 대해서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한 전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문건의 존재 유무, 작성의 주체, 문건의 성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일까? 김 변호사가 다수 의견의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지 않았으니, 과거사위 보도 자료 내용과 그간의 취재 내용을 토대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우선 리스트 존재 여부에 대한 부분이다.

● '장자연 리스트'는 있었다…그 다음은?

문건 작성에 개입한 걸로 알려진 매니저 유 모 씨의 과거 수사 당시의 진술, 문건을 확인한 故 장자연 씨 유가족의 진술 등에 비춰 보면 사라진 문건에 사람들의 이름은 적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 : [취재파일] 메신저 윤지오의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 故 장자연 )

그런데 이 결론에 다가가는 데 있어, 윤지오 씨의 진술이 걸림돌이 된 걸로 보인다. 윤 씨는 자신의 책 등에서 사라진 문건 속 한 장 반 가까이 되는 분량에 사람 이름이 가득 적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거사위 보도자료에도 나와 있듯, 윤 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런 형태의 문건은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윤 씨 진술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 건데, 이 부분에 있어 김 변호사는 결과에 대한 비판에 앞서 JTBC 뉴스룸 등에 출연해 왜 윤 씨 진술 신빙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발언을 한 것인지를 먼저 해명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변호사의 주장처럼 "이름만 모아 놓은 것이 없어도 어쨌든 문장형이든 서술형이든 결과적으로 이름만 모아 놓은 게 아니더라도 그 이름들은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가능하다고 본다. 매니저 유 모씨와 故 장자연씨 유가족 진술 등이 근거가 될 테다. 하지만, 이는 '리스트'와 관련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일 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문건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그 이름들은 교차 진술을 통해 확인됐는지, 문건의 성격은 무엇인지 등 추가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전제들이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스트가 있냐, 없냐'는 질문은 '리스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신빙성 낮은 윤지오 진술
● 윤지오 씨가 특정하지 못한 정치인 이름이 포함된 13명의 명단

김영희 변호사는 KBS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해 조사단은 사라진 3장의 문건에 리스트에 올랐던 걸로 보이는 사람 13명의 이름을 정리해 보고서에 담았다고 말했다. 13명의 이름이 사라진 문건 속에 확실히 있었다는 취지다.

그럼 13명의 이름은 사라진 문건 3장 속에 있는 것이 확실시되는 사람들일까? 문건을 본 사람들의 교차 진술에 의해 확인된 이름들일까?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그 이유는 김 변호사의 인터뷰 내용 속에 있다. 김 변호사는 KBS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해 리스트를 봤다는 사람들인 진술을 ' 취합'했더니 13명이었다고 말했다. 문건 목격자의 교차 진술로 '확인'된 명단이 아니라 '취합'된 명단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본 문건에 40~50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주장했던 윤지오 씨는 해당 문건에 정치인 이름도 있었다고 조사단에 진술했다. 다른 문건의 목격자들은 그 이름을 본 적 없다고 밝혔지만, 윤 씨는 문건에 이름을 올렸다는 정치인을 실제 만난 적도 있다고 진술한 걸로 전해진다. 하지만, 윤 씨는 실제로 만난 적도 있다는 그 정치인을 사진으로 특정하지 못했고, 그 정치인의 대표적인 특징과 배치되는 진술도 한 걸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 정치인의 이름도 윤지오 씨가 문건에서 봤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김 변호사 밝힌 13명의 명단에 포함됐다.

또, SBS 취재를 종합하면, 과거 수사 내용 등에 비춰 볼 때 김 변호사 주장한 '故 장자연 씨가 당한 피해'와는 거리가 있는 사업가의 이름도 13명의 명단에 포함됐다. 이 역시 윤지오 씨가 문건에서 그 사업가의 이름을 봤다고 진술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김 변호사가 말한 13명의 이름은 사라진 3장의 문건에 확실히 이름이 올랐던 사람들일까?

● 윤 씨 진술로 흔들린 문건 작성의 주체, 그리고 문건의 성격

과거사위는 '장자연 리스트' 작성의 주체, 리스트의 성격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영희 변호사 등 조사팀 다수는 동의하지 못 한다는 입장이지만, 과거사위 결론의 근거는 보도자료와 과거 수사 기록 등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과거사위는 보도자료에서 '윤지오 씨가 조사단에서 명단(리스트)이 누가, 어떤 의미로 작성하였는지 모른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장자연 리스트'로 명명된 문건의 유일한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윤지오 씨가 '리스트를 누가 작성했는지', '리스트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우선, 리스트 작성 주체와 관련해 윤 씨는 과거 경찰 수사 당시, 문건을 소각할 때 매니저 유 모 씨로부터 문건을 건네받은 故 장자연 씨의 유가족이 "장자연 씨의 글씨체가 아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윤 씨 역시 조사단에서 "자신이 본 문건의 글씨체는 장자연 씨의 글씨체가 아니었다"며, "장자연 씨의 성격상 리스트를 썼을 것 같지는 않다"는 취지로 진술한 걸로 전해진다. 윤지오 씨의 진술을 토대로 하더라도, 문건 작성 주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문건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윤 씨는 조사단의 1차 면담 당시 이름만 적힌 리스트 상단에 "성 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2차 면담에서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고 종전 진술을 번복했다. '장자연 리스트'가 성 접대 강요자 명단이라는 추정이 윤 씨의 진술로 흔들려 버린 것이다. 문건 작성에 개입한 매니저 유 모 씨는 과거 경찰 수사 당시, 이름이 적힌 문건은 "故 장자연 씨 소속사 대표와 싸우면서 조심해야 될 사람들을 적은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檢과거사 진상조사단, '장자연 사건' 최종 보고
● 대검 진상조사단 운영의 한계…조사가 검사 중심으로 이뤄진 이유

김영희 변호사는 과거사위가 조사팀의 다수 의견을 채택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검찰의 과오를 확인하기 위한 재조사 과정에서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어야 하는 검사들의 의견이 채택됐다고 비판한다. 원론적으로 김 변호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검찰의 과오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을 검사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 아니겠는가.

하지만, 대검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검사들 위주로 이뤄진 이유에 대한 솔직한 자기 고백이 있어야 했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조사단의 태생적 한계에 더해 조사단 운영상의 한계를 김 변호사는 고백했어야 했다. (참고 : [취재파일]검찰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의 불편한 진실 )

김 변호사의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김 변호사는 다른 어떤 외부 단원보다 검찰의 과오를 확인하기 위한 재조사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조사팀의 역량이 제한되어 있다면, 제한된 이슈에 집중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문질러 버렸다'는 평가까지 받는 과거 검경의 총체적 부살 수사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과거사위가 사실이라고 밝힌 조선일보의 외압과는 연관성을 없었는지에 제한된 역량을 투입했다면 좀 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13개월에 재조사에도 불구하고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진상 규명에 실패한 대검 진상조사단. 시간이 오래됐고 과거 수사는 총체적으로 부실해 진상을 규명하는데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혹의 실체에 다가서려 한 조사단의 노고는 평가해야 할 일이지만, 특정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비판의 화살을 다른 곳에 겨누는 것 의혹을 오히려 확대하는 것이다. 자기 확신과 신념은 진상 규명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자기 확신과 신념이 지나치면 진실에 다가서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 [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② - '특수강간 의혹'과 수사 개시 검토 권고
▶ [취재파일] 장자연 재조사 ③ - 총체적 부실 수사와 조선일보의 외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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