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숨진 父 5개월 방치'…그날 무슨 일이?

안희재 기자 an.heejae@sbs.co.kr

작성 2019.05.26 09:45 수정 2019.05.26 11: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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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남부서, 숨진 아버지 시신 5개월 방치 아들 사건● 父 시신 5개월간 화장실에 방치한 20대 아들

다섯 달, 아버지 시신과 한 지붕 아래 그가 지낸 시간입니다. 술에 취해 아버지를 때리고, 숨진 아버지가 심하게 부패할 때까지 화장실에 방치한 '패륜아' 이야기는 포털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20대 아들은 악취가 진동한다는 이웃들 민원에 덜미가 붙잡혔습니다. 부자(父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수원남부서, 숨진 아버지 시신 5개월 방치 아들 사건경찰에 따르면 아들 26살 홍 모 씨는 지난해 12월 17일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술을 마시다 다투던 끝에 아버지를 여러 차례 폭행했습니다. 피를 흘리던 아버지가 화장실에 들어가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고 두려운 나머지 신고도 못 하고 생활해왔다는 게 홍 씨 주장입니다.

● 子 "무서워서 신고 못 했다"…존속살해 혐의 구속

글쎄요. 화장실에 누워있던 시신 사진을 봤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복도에 남아있던 악취를 기억합니다. 정상적인 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이었습니다. 그저 너무 무서워 신고도 못 하고 참고 지냈다기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비슷한 생각이었을까요? 그의 말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본 경찰은 23일 홍 씨를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했습니다.수원남부서, 숨진 아버지 시신 5개월 방치 아들 사건그러나 부자만 살던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인 데다, CCTV 영상 등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 그날 무슨 대화가 오갔고 왜 다퉜는지는 사실상 홍 씨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지만, 홍 씨는 술을 마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아버지 시신을 국과수에 맡겨 분석한다지만 시간이 걸리고, 부패 정도가 심각해 그마저도 정확한 사인이 나올지 분명치 않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수사 기관이나 취재 기자나 답답하긴 매한가지. 후속 보도도 거의 없는 걸 보니 여느 충격적인 사건처럼 이번 건도 충격만 안긴 채 잊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사회적 교류 부족했던 父子 '은둔형 외톨이 범죄'?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만큼 예단은 경계해야 하나, 일각에선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 범죄라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옵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부자가 모두 별다른 직업이 없고 5개월이 넘어 악취가 진동할 때까지 누구도 부자를 찾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 교수는 "사회적 연결망이 촘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립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부자 사이 갈등이 있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다투다 사건이 발생했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숨진 홍 씨의 남동생에게 생활비 등을 받아 생활한 부자는 기초생활수급 가정은 아니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찰 관계자는 그나마 남동생과의 교류도 그리 많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홍 씨가 숨진 날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한 데에도 돈 문제가 얽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던 두 사람이 충돌을 거듭하다 비극이 일어났을 수 있다는 겁니다.

돌이켜보면 아들이 어머니를, 딸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짧지 않은 시간 방치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합니다. 별다른 데 의지할 곳 없던 부모 자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며 한 번 더 곱씹게 됩니다. 어쩌면 남의 가정사에 신경 끄는 게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 두 부자는 고립된 건 아니었을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