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부가 만든 법, 정부가 어긴 법③ 국토부의 '오래된 습관'이 지속되지 않도록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작성 2019.05.23 19:54 수정 2019.05.23 21:4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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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진 취파용4500명 뽑는데 15만 명이 응시해 경쟁률 30대 1을 넘긴 지난해 국가직 9급 공무원 국어 시험문제입니다. 법령에 따라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때로는 행정 명령을 만들기도 하는 공무원에겐 형식 논리의 엄밀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9급 공무원 시험에도 이런 논리학 문제를 출제하는 겁니다. 오늘도 공무원이 되려는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노량진에서 이런 형식 논리 훈련을 하면서 밤늦게까지 치열한 공부를 합니다.

어제와 그제 8뉴스로 전해드린 보도는 조금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본질은 간단합니다. 위의 9급 공무원 시험을 통과한 젊은이들이 상관으로 모셔야 할, 국·과장급의 고위 공무원들이 저지른 형식 논리상의 기초적 오류 때문에 생긴 일에 관한 겁니다.

'청약 저축 이자율이 6%에서 4.5%로 내리면, 기존 가입자에게도 이자율 4.5%를 적용하겠다.'는 입법의 취지를 실제 법령 조문에서는 '저축 이자율이 4.5%로 내려도 기존가입자는 6%를 받을 수 있다.'고 만들어 놓은, 아주 명료한 잘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청약 저축 이자율과 관련한 재판을 한 법원도, 취재진이 자문을 의뢰한 법률 전문가 여러 명도 모두 '문제의 법조문은 이자율 6%를 줘야 한다는 의미다. 달리 해석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도를 통해 잘못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에도 국토부는 요지부동입니다. 법령 조문은 B라고 써놓고 그 의미는 사실 A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 그 흔한 유감 표명도 없었다

과거의 실수가 다시 불거지면 '법령대로 받지 못한 이자를 돌려달라'는 소송전이 벌어지고, 이 때문에 국민주택기금에 손실이 생길까 걱정하는 건 이해가 갑니다. 국토부는 해명자료에서 반복적으로 '국민주택기금의 건전성'을 언급했습니다. '공익'을 방패삼아 예전의 실수를 덮으려는 게 아니라, 진정 서민 주택 자금의 손실을 우려한, 공직자로서의 충정의 발로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재판 과정에서도 인정된 법령 제정의 잘못까지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국토부는 보도 해명자료에서 '우리가 만든 법령 부칙의 의미는 그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에서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식 주장을 국민 대상으로 다시 한번 하고 있는 겁니다.

기존 가입자들에게 미지급 이자를 돌려주기 어렵다고 해명한 건 국민주택기금 손실을 막기 위한 '우국충정'으로 이해한다 치더라도, 조직 차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대해 최소한의 인정을 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대목입니다. 일본 총리가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긴 싫지만 사과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종종 '유감 표명'을 하곤 합니다. 과거사에 대해 일본 정부로부터 들을 수 있는 수준의 사과도 우리 국민이 우리 정부로부터 들을 수 없었다는 건 조금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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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지난 일입니다.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지금 왜 그러시나요?"

취재에 응한 국토부 담당자들 여럿은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실수'였고, 상황이 종료됐는데 무슨 의도로 이제 와 이 일을 다시 꺼내느냐는 거였습니다. 좀 성가시고 짜증 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짜증 나더라도 문제가 있으면 제기하는 게 기자의 일입니다. 미꾸라지 양어장의 가물치처럼, 감시 대상이 복지부동하다 죽지 않도록 성가시게 하고, 움직이도록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이 취재를 시작할 땐 '과거에 일어났던 사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기초적인 오류로 법령 개정을 잘못했던 것, 시민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일말의 사과 없이 대형 로펌과 함께 소송전까지 벌이며 막은 것 모두 예전 정부 '건교부'와 '국토해양부' 때 일어났던 잘못이라고 여겼습니다. 현 정부 '국토교통부'에선 재발 방지와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또 예전처럼 과오 덮기에만 급급한 국토부의 모습은 이런 생각을 달리하게 합니다. 이것은 과거의 일회적 행위가 아닌, 건교부, 국토해양부, 국토부로 이어진 이 조직의 '오래된 습관'이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뀐다'. 계속된 습관은 인격이 된다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국토부의 오래된 습관이 정부의 '격'으로 고착되지 않게끔 저희는 저희의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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