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지촌의 사회학②] '기지촌 필리핀 여성'과 '인신매매'의 상관관계

김민정 기자 compass@sbs.co.kr

작성 2019.05.21 14:01 수정 2019.05.21 14:25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기지촌의 사회학②] 기지촌 필리핀 여성과 인신매매의 상관관계
▶ 가수로 들어와 강제 성매매…악몽이 된 코리안 드림
▶ 범죄자가 된 피해자…인신매매의 덫 '준 연예인 비자'

지난 주말 당직을 서는데 회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얼마 전 SBS 8시 뉴스에서는 노래나 춤 공연을 하는 직종에 취업하는 조건의 비자, '준 연예인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온 두 필리핀 여성의 사연을 다뤘습니다. 가수의 꿈을 품고 한국 땅을 밟았지만 유흥업소로 보내져 성 학대와 노동 착취를 당하게 됐다는 사연이었는데, 해당 여성들을 고용했던 업주가 연락을 해온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항변이었습니다.

요지를 옮기면 이렇습니다. "가수나 밴드로만 고용해야 하는 '준 연예인 비자'로 여성들을 데려와서 접대 일을 시킨 건 잘못이다, 하지만 해당 필리핀 여성들도 어느 정도 이런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감금한 것도 아닌데 접대 일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도망치지 않은 게 그 증거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본인 잘못도 있지만, 필리핀 여성들도 언론이 편들어 줄 만큼 '순수한 피해자'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 업주는 여성들에 대해 성매매 알선과 강제추행,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업주가 말한 '피해자의 순결성'. 기사에 대한 즉각적 반응의 대다수이기도 합니다. 피해 사실이 있음에도, '당할 만하니까 당한 것 아니냐'며 피해자의 의도에 질문을 들이대는 건 분명 폭력적인 잣대입니다. '돈 벌러 온 외국인'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으니 질문은 더 가혹할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 피해 사실을 예측하지 못해야 '순결한 피해자'라는 건지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놓인 처지와 의도를 검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안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유효하게 던지고 있다면, 이번 취재파일에선 이 피해자들이 '진짜 피해자'냐는 업주의 주장을 한번 따져보고자 합니다.

● 국제사회 "한국의 '준 연예인 비자' 제도, 인신매매 피해 우려 커"

UN에서는 지난 2011년, 2012년 연달아 우리나라의 '준 연예인 비자'를 콕 집어 많은 인신매매 및 인권침해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매년 발간하는 '인신매매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준 연예인 비자'가 국가 간 인신매매의 길을 제도적으로 열어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됐습니다.

2000년 채택된 UN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따르면, 인신매매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된 정의는 노동력, 성 등의 착취를 목적으로 상대방을 기망(속임수)하거나, 상대방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해 사람을 모집하고, 인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방을 기망하거나, 상대방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여'라는 부분입니다. 하게 될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누락하거나 경제,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대의 위치를 이용해 현저하게 부당한 조건을 제시하고 데려와 착취했다면, 상대방이 모집에 응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신매매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UN은 심지어 성산업이나 성매매에 종사하게 될 거라는 사전 인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노동의 조건과 정보를 정확하게 고지받지 못했다면, 이 역시 기망에 의한 모집, 인신매매로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UN 인신매매방지의정서 제3조는 상대에 대한 기망, 취약한 지위의 이용 등 수단이 어느 하나라도 사용된 경우 '피해자의 동의는 인신매매 성립에 관계가 없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길 가던 여성을 봉고차에 태워 납치하는 것만을 인신매매로 보던 과거에 비해 더 정교하게 인권을 보호하는 기준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성매매 부추긴 '준연예인 비자'● '준 연예인 비자' 모집 과정에서 '근로계약 기망' 빈번

'준 연예인 비자'로 들어온 필리핀 여성을, 국제사회는 왜 대부분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고 있는 걸까요.

여기서 '준 연예인 비자'의 역사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비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게 해 주기 위한 시혜적 제도가 아닙니다. 철저히 국가 필요에 의해 생겨난 제도입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문화 진흥을 위해 예술계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공연, 조각 등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연예인 취업 비자'가 생겨났습니다. 1990년대에는 새로운 수요가 생겨납니다. 국내 여성 인권이 신장되면서 미군 기지촌의 유흥업소에서는 일할 여성을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업주들 연합인 '한국특수관광협회'는 한국 여성이 빠져나간 자리를 외국인 여성으로 채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생긴 것이 지금의 '준 연예인 비자' 제도입니다. 예술계 종사하는 외국인에게 주는 취업 비자를 세분화해 호텔, 유흥업소 등에 취업해 공연할 수 있도록 한 비자입니다. 처음엔 공연 계약을 허가받은 업소만 이 비자를 통해 외국인을 직접 채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1990년대 후반 여러 업소와 파견 계약을 맺은 인력업체가 외국인을 데려올 수 있도록 제도가 완화됩니다. 7개뿐이던 인력업체가 2002년 157개로 급증했고, 일손이 필요하던 기지촌 유흥업소에 외국인 여성이 쏟아집니다.

'기망과 취약한 지위를 이용한 모집'이 이후 폭증합니다. 인력 파견업체(공연기획사)가 필리핀 등의 인력 파견업체를 통해 여성을 모집하기는 쉬워졌지만,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에 있어서 여성들이 노동 조건을 충분히 고지받았는지, 여성이 일하게 될 업소의 노동 환경이 어떤지, 근로계약서와 실제 근로 환경이 일치하는지 등에 대한 검증엔 구멍이 뚫렸습니다. 여성의 오디션 영상이 우리나라 영상등급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 비자를 발급받는데 큰 무리가 없는 게 '준 연예인 비자'의 핵심입니다.

인터뷰에 응했던 필리핀 여성들은 "클럽이나 호텔의 무대에서 노래하게 될 거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습니다. "계약서는 한국어로 써 있거나, 서류 겉장만 보여주고 제대로 읽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손님이나 업주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고, '할당'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손님에게 술을 팔아야 하거나, 성매매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비자 취지대로 호텔이나 클럽에서 밴드 가수로 활동하다가 돈을 벌고 돌아오는 사례가 종종 있고, 또 한국 정부에서 오디션 영상을 검증해 비자를 내주는 만큼, 큰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여성들의 처우는 본인이 동의했다고 보기에 실제로 많이 열악했습니다. 입국하기 전 안내받은 대로라면 월급이 130만 원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50만 원만 받고 나머진 1만 원짜리 술을 한 잔 팔 때 1천 원씩 쳐서 수수료로 주는 식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외국인 여성을, 노동 조건과 관련한 중요 정보를 누락한 채 모집해, 그들에 대한 부당 대우를 통해 발생하는 추가 이윤을 인력업체와 업주가 나눠 가지는 셈이니, 국제 사회에선 충분히 '준 연예인 비자'로 들어오는 많은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 피해를 우려할 만합니다.
유흥업소 거리●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 6번 발의됐다가 폐기

업소에 대한 단속은 대부분 사후적으로 이뤄집니다. 경찰과 지자체에서 실적이 필요할 때 들이닥치는 식인데, 그럴 경우 이런 외국인 여성은 피해사실이 있어도 성매매 의혹이 있으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되고, 강제추방 대상이 됩니다. 업소로 오게 된 과정에 국제사회가 마련한 기준에 따른 '인신매매' 위험성이 있는지 등을 따지는 국내법이 전무해 수사 과정에서 여성들의 처지는 중히 다뤄지지 않습니다.

논란이 많더라도, '준 연예인 비자' 제도 자체의 폐지를 논하려면 이익단체의 반발 등 적잖은 고려 요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인신매매의 정의와 조건을 규정하고, 성매매 외국인 여성이 인신매매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다면 수사 과정에서 이 부분을 조사하도록 하고, 또 국가가 법적인 조력과 피해 회복을 위한 여러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 높아지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따라 18, 19대 국회 때 6차례나 발의됐지만, 무관심 속에 변변한 논의 없이 모두 기한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호주, 대만 등 국가는 여성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과정에 있어 '기만적 모집행위'가 있었는지, '중요한 정보의 의도적 은폐'가 있었는지를 따져 업주를 형법으로 다스립니다. 호주에서는 피해자가 심리적, 구조적으로 업주에게 예속된 상태였을 가능성까지 감안해, 피해자가 실제 탈출을 시도했는지, 실질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를 인신매매 범죄 성립 여부와 무관하게 볼 정도로 피해자의 관점에서 법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사실은, 국가가 '준 연예인 비자'를 만들면서 이 비자를 신청하는 외국인에게 에이즈 음성 판정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들이 성산업에 편입될 거라는 걸 국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국가는 1961년 윤락행위 방지법을 통해 성매매를 금지하면서도 기지촌 '몽키 하우스'의 성매매는 묵인하고 방조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국가는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에게 성병 검사와 애국 교육을 시켰고, 성병에 걸린 여성을 '낙검자 수용소'에 가둬 페니실린 주사까지 놓고는 했습니다.

인권단체의 비판에 정부는 2010년 제출 서류 항목에서 에이즈 음성 결과서를 삭제했다고 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양공주'라 불리며 편견과 혐오 속에서 착취적 성 노동을 해오던 한국인 여성들이 이제 대부분 기지촌 밖으로 나왔는데 국가는 여전히 대상만 달리해 경제적으로 취약한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성적인 착취와 인권 유린을 방조하고 또 묵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문헌
신윤진, 2017, 예술흥행비자제도를 통한 이주여성 고용의 인권 문제와 법적 과제 – 인신매매에 대한 국제기준과 외국사례에 비추어 – 동국대학교 법학논총 제41권 제1호
이병렬 김희자, 2017, 예술흥행비자(E-6) 소지 이주여성에 대한 인신매매행위 대응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동북아문화연구 50
국가인권위원회, 2014, 예술흥행비자 소지 이주민 인권상황 실태조사
어진이 최민영, 2012, 인신매매 방지 및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제화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 [기지촌의 사회학①] 필리핀 기지촌 여성의 싸움을 한 번 더 기록하는 이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