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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빈곤도, 스모그도 민주적이지 않다!

취약 계층,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

[취재파일] 빈곤도, 스모그도 민주적이지 않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poverty is hierarchic, while smog is democratic.)"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그의 유명 저서 <위험 사회>에서 쓴 표현이다. 현대 사회에 빈부 격차나 계층은 있지만 현대 사회의 위험은 빈부나 계층, 지역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울리히 벡의 표현 그대로 스모그 같은 환경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모든 사람이 환경 위험에 똑 같은 수준으로 노출되고 똑 같은 영향을 받고 있을까? 울리히 벡의 표현은 환경 위험에 대해서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결과는 인종이나 소득 수준, 교육 정도 등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환경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도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부정의(環境不正義, Environmental Injustice)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계명대학교 박정일 교수와 환경과교육연구소 권혜선 박사팀은 경기도를 대상으로 개인과 지역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수준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환경정의 차원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경기도는 면적이 국토의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5%가 거주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구 밀집지역이다.

연구팀은 우선 2000년부터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PRTR, Pollutant Release and Transfer Register) 제도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 산업시설의 화학물질 배출과 화학물질 이동량 자료, 그리고 경기연구원이 도민들의 삶의 질을 측정하고 그 변화를 추적할 목적으로 2만 명을 대상으로 가족과 주거, 고용,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 실시한 '경기도민 삶의 질 조사' 결과 자료를 이용했다. 연구팀은 두 자료와 지리정보시스템(GIS) 분석을 통해 발암물질 배출시설의 지역별 분포를 파악하고 다층모형을 이용해 발암물질에 많이 노출되는 개인과 지역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분석했다. 연구결과는 환경 분야 저명 국제학술지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최근호에 실렸다(Park and Kwon, 2019).

논문에 따르면 우선 경기도 내 전체 553개 읍면동 가운데 반경 2km 이내에 발암물질 배출시설이 하나 이상 있는 지역은 전체의 17.5%인 97개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발암물질 배출 시설은 주로 경기도 남서부에 많이 분포하고 경기 동부와 경기 북부 지역은 시설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반경을 5km로 확대할 경우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지역이 크게 늘어났는데 반경 5km 이내에 최소 1개 이상의 배출시설이 위치한 읍면동은 총 250개로 전체의 45.2%에 달했다. 발암물질 노출지역은 경기 남서부지역뿐만 아니라 북부와 남동부 지역으로 크게 확대됐다. 특히 남서부 일부 지역에는 발암물질 배출 시설이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아래 그림 참조).
경기도 발암물질 배출시설 분포(자료: Park and Kwon, 2019)
다층모형을 이용한 분석에서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계층이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수준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일자리가 있는 사람보다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자영업자보다는 월급 받는 사람이, 그리고 자택에 사는 사람보다는 전세나 월세로 사는 사람 등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별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자체가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면적 중 공업용지 비율이 높은 지역, 특히 경기도 남서부지역처럼 대규모 공단이 형성된 지역이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전체 인구 중 외국인 거주자 비율이 높은 지역이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경기도 외국인의 다수가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열악한 근로 여건과 발암물질 노출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암물질과 같은 환경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개인의 삶의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환경위험에 대한 방어 능력과 회복력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환경 위험에 더더욱 취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같은 악순환이 이어질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PRTR)와 같은 제도를 통해 유해물질 배출과 이동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야 배출시설에 대해 개선을 촉구하고 개인과 지역사회 또한 환경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 연구와 달리 산업시설에서 배출된 발암물질이라는 환경 위험이 사회경제적 약자를 중심으로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이 실증적으로 밝혀졌다면서 환경부정의를 예방할 수 있는 교육과 정책을 시급히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문헌>

* Jeong-Il Park and Hye-Seon Kwon, Examining the Association between Socioeconomic Status and Exposure to Carcinogenic Emissions in Gyeonggi of South Korea: A Multi-Level Analysis. Sustainability, 2019, 11, 1777; doi:10.3390/su1106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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